일일이 자료를 검색하고 정리하던 지난날과는 이별할 때가 왔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개인별 맞춤 정보를 제공하고 작업 시간을 단축해주는 플랫폼이 생활 곳곳을 파고드는 중이다.
챗봇과 대화하듯 검색하는 재미 바드(Bard)
구글에서 오픈AI의 챗GPT에 대항해 선보인 바드는 이용자 질문에 답변하거나 시·소설 같은 창작 활동도 가능한 거대 언어 모델 기반의 생성 AI 서비스다. 질문에 따라 조금씩 다른 3가지 답변을 제시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은 챗봇과 대화하듯 다시 검색을 이어가는 재미가 있다. 바드 화면에서 바로 구글 검색이 가능하며, 파이썬(Python), 자바(Java), C++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한 코딩 작업 기능도 갖췄다. 또 현재 바드에서 작성된 글을 Gmail로 바로 보내거나 표를 만들어 구글 시트로 내보내기, 문서로 내보내 구글 드라이브에 저장하기가 가능하다. 향후 다른 구글 서비스와 더 연계된다면 보다 쓰임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챗GPT와 비교하면 바드가 좀 더 최신 정보를 다루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국어를 지원하는 부분이 매력적이다. 다만 아직 시험 단계라 사실 전달이 중요한 글은 크로스체크가 필수다. 특정 데이터 세트의 패턴을 학습한 다음 새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생성 AI의 특성상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생성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드에 사용 팁을 물어보니 “질문을 명확하고 간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해달라”며 “바드는 아직 개발 중인 모델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답했다. 또 한국어보다 영어에 더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어 영어로 질문하면 답변 내용이 더 풍부해질 수 있고 영어 답변으로 이미지를 받아볼 수도 있다.
문맥을 파악한 자연스러운 번역체 딥플(DeepL)
독일 회사에서 만든 AI 번역 서비스다. 한국어를 포함한 31개 언어를 번역할 수 있는데, 영어의 경우 미국식과 영국식으로 구분해 요청한 대로 번역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번역기’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만큼 구글 번역기나 파파고보다 한글 번역체가 자연스럽다는 평가다. 구글 번역기나 파파고가 문자 그대로 직역한다면 딥플은 문맥을 이해하고 매끄럽게 다듬은 느낌이 든다. 영어 작문을 할 때도 틀린 문법을 고쳐주는 것은 물론 여러 어조의 대안을 제시한다. 이미지 인식을 통한 번역이나 PDF, 워드(docx), 파워포인트 등으로 작성된 문서 파일을 통째로 번역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무료 버전은 한 번에 번역할 수 있는 길이가 5000자로 제한된다. 긴 글을 번역하거나 사이트 전체 번역이 필요한 경우 유료 버전을 활용해야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딥플에 문의하니 조만간 출시 예정이라고 한다.
알아서 척척 텍스트와 이미지 생성까지 캔바(Canva)
‘캔버스’에서 이름을 따온 캔바는 50만 개 이상의 무료 템플릿을 기반으로 초보도 손쉽게 영상이나 파워포인트 발표 자료, 그래픽, 인쇄물, 애니메이션 등을 만들 수 있는 디자인 플랫폼이다. 이미 1억 명 이상이 사용할 만큼 편리하기로 이름난 프로그램으로 지난해부터 10가지 AI 기반 기능이 추가됐다.
특히 만들고 싶은 이미지를 텍스트로 자세히 입력하면 해당 이미지를 생성해주는 ‘Text to Image’와 5가지 이상의 단어를 사용해 요청 사항을 전달하면 순식간에 글로 완성해주는 ‘Magic Write’ 기능은 작업 시간을 줄이고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사용하려는 이미지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브러시로 칠하고 텍스트로 설명하면 알아서 이미지를 구현해주는 ‘Magic Edit’ 기능, 작업물 자체에서 바로 번역해주는 기능도 쏠쏠하다. AI 기능 중에는 아예 유료인 프로 버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거나 무료 이용 횟수에 제한을 둔 것도 있다. 프로 구독료는 월 1만4000원이며, 30일 무료 사용 후 구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AI 추천 컷으로 손쉬워진 일상 기록 픽스픽스(Pickspix)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아이의 성장사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여행 가서 남는 건 사진뿐이란 생각에 열심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지만 딱 그때뿐이다. 막상 찍고 나면 생각만큼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렇게 쌓인 사진이 휴대폰 갤러리에 수천 장이다 보니 정작 보고 싶을 때, 필요할 때는 찾기가 쉽지 않다. 픽스픽스는 이러한 귀차니스트들을 위해 탄생한 사진 정리 서비스다. 사진 정리가 필요한 대상을 정해 얼굴이 잘 보이는 정면 사진을 등록해놓으면 AI 인물 인식 기술을 통해 베스트 컷만 간추려 날짜별로 정돈해준다. 매월 AI가 1장씩 1년에 12장을 골라 모아놓은 연간 베스트 목록과 주제별 앨범 만들기 서비스도 제공한다.
직접 사용해보니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갤러리를 바로 정리해주는 게 아니라 일단 앱에 업로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무료로 업로드할 사진 개수가 한정되어 있다. 처음 가입할 때 500포인트를 제공하는데, 1포인트당 사진 1장을 업로드할 수 있다. 이후 더 많은 사진을 업로드하거나 만든 앨범을 실물로 소장하고 싶을 경우 추가 비용이 든다.
AI 도구 정보를 한자리에 퓨처피디아(Futurepedia)
퓨처피디아는 엄밀히 말하면 AI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는 아니다. 하지만 보다 편한 AI 서비스를 찾아 정보의 바다를 헤맨 경험이 있다면 일종의 ‘AI 도구 백화점’인 퓨처피디아 사이트(futurepedia.io)부터 방문해볼 것. 7월 중순 기준 약 4100여 개의 AI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으며, 내게 필요한 앱을 직접 검색하거나 최신순, 인기순으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어떤 기능을 제공하는지부터 서비스 이용료, 사용자 평가, 현재 인기 순위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퓨처피디아 안에서 바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연계해 편리성을 높였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고도 이용이 가능하나 가입한 후 사용하면 얻는 게 더 많다. 54개의 카테고리를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서비스를 즐겨찾기 해둘 수 있고, 업데이트되는 AI 앱에 대한 최신 소식을 메일로 받아볼 수도 있다. 회원 가입 비용은 무료다.
단, 퓨처피디아 자체에서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을뿐더러 소개하는 AI 도구들 역시 외국 기업에서 만든 서비스가 대부분이다. 영어 울렁증이 있다면 전체 페이지 번역기의 도움을 받기를 권한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교육과정은 변화한다. 작년 12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이 발표되었다. 이번 교육과정은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을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팬데믹과 인공지능의 발전 등 오늘날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교육과정은 한 개인으로서 갖춰야 하는 역량인 창의성과 더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지향해야 할 방향을 ‘포용성’이라는 낱말로 표현하고 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사계절출판사, 2018) 362.4 김67ㅅ 독서인증실(3층)
『입 없는 아이』 (박밤, 이집트, 2020)
존중의 관계를 맺는 최선의 방법
학교와 사회는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 정체성을 품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단적으로 16만 8,645명, 10만 3,695명이라는 2022년에 집계된 다문화 학생과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숫자만 봐도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학교 공간에 모여있는지 알 수 있다.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다양성은 더 많다. 다양성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감각이 중요한 까닭이다. 이러한 감각이 결여된 학교나 사회는 누군가를 쉽사리 괴물로 부르거나 소외시키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공동체 감각, 다양성 존중의 가치를 어떻게 가르치고 확산할 것인가에 있다. 존중은 그저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고 존중하자’라는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존중은 오히려 한 개인과의 구체적인 만남을 통해 드러나고 완성된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저자는 존중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여러 가지 교육을 통해 누구나 평등하고 존엄하며, ‘장애인이나 이주민을 차별하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이 모든 말과 구호보다 더 강력한 것은 교실이나 마을에서 장애인이나 이주민을 포함하여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본 경험이다. 처음엔 이미 갖고 있는 편견 어린 시선으로 다소 실수하기도 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부딪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개인의 고유한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서로를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하고 세심하게 존중할 수 있게 된다. 김원영은 이러한 과정을 ‘상대방의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스냅 사진처럼 순간적인 이미지에 따른 판단이 아닌, 오랜 시간을 들여 한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존중의 관계를 맺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넌 내게 다가오지 못하잖아!”
솔직한 고백 하나를 꺼내본다. 새 학년을 시작하고 담임 학급이 정해지면 학급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출석부를 받게 되는데, 이름 옆에 때때로 ‘학습 부진’ ‘특수교육 대상’ 등의 정보가 적혀있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 새로 맡게 된 학생 명단 중 한 명의 이름 옆에 ‘학교폭력 가해자’ ‘생활지도 어려움’이라는 정보가 적혀있었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학생인데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고, 그 학생은 만나기도 전에 이미 최대 요주의 학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새 학년의 첫날부터 그 학생의 행동은 사사건건 눈에 거슬렸고, 결국 한 달 만에 크게 부딪히게 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과 마주 앉아서 대화하던 중, 그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그냥 제가 싫은 거잖아요. 제가 뭘 하기만 하면 화를 내면서!”
학생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그 학생이 무엇을 하든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지 않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었다. 초반에 통제하지 않으면 또다시 학교폭력을 저지르거나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학생에게 한 방 먹고 난 뒤, 학생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편견을 걷어낸 눈으로 본 학생은 쾌활하고 명랑했으며, 재치 있고 눈치가 빠른 친구였다. 학년이 끝날 무렵에는 우리 반 최고의 개그맨으로 인정받았다. 사고뭉치라는 편견에 갇혀있었다면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매력이다. 개정 교육과정에서 말하고 있는 ‘포용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와 오랜 시간 어울려 봐야 한다. 동시에 자신의 편견을 깨뜨리고 다가가려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한 용기를 이야기 해주는 또 한 권의 책을 소개해 본다. 박밤 작가가 지은 『입 없는 아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이다.
재인이라는 이름의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재인의 짝꿍이 된 폴은 그날 결석을 했고, 친구들로부터 ‘입 없는 아이’로 불리고 있었다. 입 없는 아이에 대해 생각하던 재인은 밤에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재인은 눈이 없는 사람, 귀가 없는 사람, 코가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재인은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거나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그들은 “넌 내게 다가오지 못하잖아!”라며 눈물을 흘린다. 마침내 재인은 꿈속에서 입이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놀란 표정을 짓거나 괴물이라고 소리치지 않았으며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죽을 용기를 내서’ 입이 없는 사람의 손을 잡고 방을 빠져나온다.
짧은 글과 간단한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 그림책을 학생들에게 읽어주면 처음엔 그림체를 보고 웃다가도 이내 이야기에 빠져든다. 누군가를 향해 ‘괴물’이라 외치거나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동시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죽을 용기’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고 말한다. 교실에서 혼자 있는 친구에게 말 걸기, 누구에 대한 헛소문 퍼트리지 않기, 놀리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기 같은 행동을 하면 좋겠다는 학생들의 대답은 단순하지만 반짝반짝 빛난다.
자신의 편견을 인정하고 공존과 존중의 태도를 선택하는 것이 때로는 죽을 만큼 두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작은 용기를 내고 작은 한 걸음을 더하는 것 아닐까?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보자. 그리고 ‘죽을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어 그들의 손을 마주 잡자.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포용성을 갖춘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일 것이다.
이은진 평화로운 관계와 인권친화적인 교실을 꿈꾸는 초등교사. 다양한 어린이들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thecall1@hanmail.net 이미지제공_사계절출판사, 이집트
전염병은 외부에서 균이나 바이러스가 몸으로 침투해서 일으키는 몸의 교란이다. 건강한 사람은 그러한 적(敵)들을 잘 막아내는 면역력이 강하다. 면역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나’를 ‘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지내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 둘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우리 몸 안에는 엄청난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들이 건강하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면역력을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장내 세균만 해도 200조 개나 되고, 그 가운데 10% 정도는 유해균이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박테리아는 명백히 ‘내가 아닌 것’이고, 더구나 해로운 세균은 나를 위협하는 것이지만, 그들이 일정 비율 있어야만 면역 시스템이 지탱된다.
이런 생물학적 진리가 사회적으로도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닌 것’을 내 안에 받아들여야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자기 안의 타자성을 수용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다양성이 증진되면서 개인적으로도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그런데 코로나 방역을 오랫동안 시행하면서 나와 남 사이의 역동적인 균형이 깨져버렸다. 개체들 사이에 순환이 이뤄지는 통로가 막히고 저마다의 골방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거리두기는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역설적으로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빚었다.
연결과 순환의 힘
전염병 이외의 많은 질환에도 사회적인 맥락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어떤 병이 들었을 때 겪는 고통의 정도나 회복되는 속도에도 사회적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 똑같이 암이나 자가 면역 질환 등에 걸린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이 지지하고 격려해주면 증상이 적게 나타나고 삶의 질도 높아진다. 합창이나 자원봉사 등 공동체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수록 심폐 기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종교 생활도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된다. 신앙 자체가 마음을 안정시켜주겠지만,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여 신도들과 교류하는 것이 더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일체감을 느낄 때 생명의 힘이 배가된다.
그것을 입증하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오랫동안 인간관계를 연구해온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수십 명의 자원자에게 비디오를 보면서 디스코형의 네 가지 기본 춤동작을 배우게 한 후에 몇 그룹으로 나눠 춤을 추도록 했다. 거기에서 어떤 그룹에는 같은 음악을 듣고 정확하게 같은 동작으로 동시에 춤을 추라고 지시했고, 다른 그룹에는 각자의 멜로디에 맞춰 모두 다르게 몸을 흔들도록 했다. 디스코가 끝나고 나서 팔에 혈압 측정 장치를 두르고 장치를 팽창시켜 그 압박을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측정했다. 결과는 동시에 춤을 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단단히 조여도 견딜 수 있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때 자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통증에 대한 역치를 높여준 것이다. 무리를 지어 노를 저으면 혼자 젓는 것보다 힘이 덜 드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마르타 자라스카,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 어크로스, 2020, 246-247쪽)
연결이 이뤄지는 방식은 다양하다. 지난 4월 중순 서울 광화문아트홀에서 고립 청년 대상 즉흥 치유연극 나의 이야기 극장 이 열렸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공연이었는데, 그들이 객석에 있다가 손을 들고 무대로 나와서 심경을 털어놓으면 즉석에서 배우들이 표현하는 즉흥 연극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오랫동안 가슴에 묻혀있기만 했던 이야기들이 예술의 언어로 형상화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 해’는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작업해왔다. 탈북자와 가출 쉼터·보호관찰소 등의 청소년, 서울소년원생, 교도소 재소자, 탈성매매 여성, 평택 기지촌 할머니, 노숙자 등이 즉흥 연극의 관객이자 주인공으로 초대되었고, 모두 ‘이야기 극장’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고립 청년들, ‘치유의 연극’하며 세상 문을 연다” 한겨레. 2022.4.12.)
왜 이야기인가. 상담학자 양유성 교수는 그 핵심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삶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왜 여기에 있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새롭고 건강한 이야기 속에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로서 자기 자신을 볼 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어떤 힘을 얻게 된다.”(양유성, 『이야기 치료』, 학지사, 2004, 11쪽)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라는 점을 새삼 환기해주는 말이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집단에 대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개인도 기억을 통해서 자아를 구성한다. 경험과 기억이 파편들로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끈으로 꿰어질 때 이야기가 된다. 평범하고 진부한 경험이라 해도 어떤 맥락 속에서 의미화되면 자신의 서사(내러티브)가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사회적인 속성을 지닌다. 누군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내면의 공간이 확장되고 단단해지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상처가 깊은 사람이 그림이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것을 타인에게 드러내면서 치유를 해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시간과 정서를 공유하기
이야기의 미덕은 무엇인가. 불쾌하고 화가 나는 경험도 누군가에게 하나의 에피소드로 들려줄 때, 우리는 감정을 내려놓고 상황을 객관화하면서 자아를 성찰할 수 있다. 밤에 이불킥을 하느라 잠 못 이룰 정도로 창피하고 후회스러운 일인데, 친구를 만나 수다로 풀다 보면, ‘유체 이탈’ 화법을 구사하면서 즐거운 해프닝으로 웃어넘길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고 거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힘든 현실을 견딜 수 있다. 그러한 안전기지 또는 전환의 장치가 없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극단적인 언사로 분노를 배설하게 된다. 그런 쪽으로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정서적인 안식처를 마련해야 한다.
행복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개념 가운데 하나로 ‘관계재(relational goods)’가 있는데,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할 때 생겨나는 가족애, 우정, 사랑, 동료애 등을 가리킨다. 무형의 재화로서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재는 돈으로는 구매할 수 없고 시간과 정서를 투자해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돈을 버는 데에만 전력투구하면 일상이 삭막해질 뿐 아니라 건강도 나빠진다. 적절한 경제력을 확보하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균형 속에서 우리는 건강해질 수 있다. 이제 감염병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놓아야 하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관계재는 면역력을 담보하는 그릇이다.
김찬호사회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는 문화인류학, 사회학, 교육학 등을 강의하고 있고, 대학 바깥에서 부모 교육, 노년의 삶, 교사의 정체성, 마을 만들기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글을 쓰고 대중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로 『사회를 보는 논리』 『문화의 발견』 『교육의 상상력』 『생애의 발견』 『돈의 인문학』 『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2014년 한국출판문화상 수상) 『눌변』 『유머니즘 : 웃음과 공감의 마음사회학』 등이 있다. chan-ho7@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