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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 사이 역동적인 균형을 찾아서 : 사회적 면역력이란 무엇인가

 

 

전염병은 외부에서 균이나 바이러스가 몸으로 침투해서 일으키는 몸의 교란이다. 건강한 사람은 그러한 적(敵)들을 잘 막아내는 면역력이 강하다. 면역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나’를 ‘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지내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 둘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우리 몸 안에는 엄청난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들이 건강하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면역력을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장내 세균만 해도 200조 개나 되고, 그 가운데 10% 정도는 유해균이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박테리아는 명백히 ‘내가 아닌 것’이고, 더구나 해로운 세균은 나를 위협하는 것이지만, 그들이 일정 비율 있어야만 면역 시스템이 지탱된다.

 

이런 생물학적 진리가 사회적으로도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닌 것’을 내 안에 받아들여야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자기 안의 타자성을 수용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다양성이 증진되면서 개인적으로도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그런데 코로나 방역을 오랫동안 시행하면서 나와 남 사이의 역동적인 균형이 깨져버렸다. 개체들 사이에 순환이 이뤄지는 통로가 막히고 저마다의 골방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거리두기는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역설적으로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빚었다.

 

연결과 순환의 힘

 

전염병 이외의 많은 질환에도 사회적인 맥락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어떤 병이 들었을 때 겪는 고통의 정도나 회복되는 속도에도 사회적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 똑같이 암이나 자가 면역 질환 등에 걸린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이 지지하고 격려해주면 증상이 적게 나타나고 삶의 질도 높아진다. 합창이나 자원봉사 등 공동체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수록 심폐 기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종교 생활도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된다. 신앙 자체가 마음을 안정시켜주겠지만,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여 신도들과 교류하는 것이 더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일체감을 느낄 때 생명의 힘이 배가된다.

 

그것을 입증하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오랫동안 인간관계를 연구해온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수십 명의 자원자에게 비디오를 보면서 디스코형의 네 가지 기본 춤동작을 배우게 한 후에 몇 그룹으로 나눠 춤을 추도록 했다. 거기에서 어떤 그룹에는 같은 음악을 듣고 정확하게 같은 동작으로 동시에 춤을 추라고 지시했고, 다른 그룹에는 각자의 멜로디에 맞춰 모두 다르게 몸을 흔들도록 했다. 디스코가 끝나고 나서 팔에 혈압 측정 장치를 두르고 장치를 팽창시켜 그 압박을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측정했다. 결과는 동시에 춤을 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단단히 조여도 견딜 수 있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때 자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통증에 대한 역치를 높여준 것이다. 무리를 지어 노를 저으면 혼자 젓는 것보다 힘이 덜 드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마르타 자라스카,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 어크로스, 2020, 246-247쪽)

 

연결이 이뤄지는 방식은 다양하다. 지난 4월 중순 서울 광화문아트홀에서 고립 청년 대상 즉흥 치유연극  나의 이야기 극장 이 열렸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공연이었는데, 그들이 객석에 있다가 손을 들고 무대로 나와서 심경을 털어놓으면 즉석에서 배우들이 표현하는 즉흥 연극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오랫동안 가슴에 묻혀있기만 했던 이야기들이 예술의 언어로 형상화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 해’는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작업해왔다. 탈북자와 가출 쉼터·보호관찰소 등의 청소년, 서울소년원생, 교도소 재소자, 탈성매매 여성, 평택 기지촌 할머니, 노숙자 등이 즉흥 연극의 관객이자 주인공으로 초대되었고, 모두 ‘이야기 극장’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고립 청년들, ‘치유의 연극’하며 세상 문을 연다” 한겨레. 2022.4.12.)

 

왜 이야기인가. 상담학자 양유성 교수는 그 핵심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삶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왜 여기에 있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새롭고 건강한 이야기 속에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로서 자기 자신을 볼 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어떤 힘을 얻게 된다.”(양유성, 『이야기 치료』, 학지사, 2004, 11쪽)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라는 점을 새삼 환기해주는 말이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집단에 대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개인도 기억을 통해서 자아를 구성한다. 경험과 기억이 파편들로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끈으로 꿰어질 때 이야기가 된다. 평범하고 진부한 경험이라 해도 어떤 맥락 속에서 의미화되면 자신의 서사(내러티브)가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사회적인 속성을 지닌다. 누군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내면의 공간이 확장되고 단단해지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상처가 깊은 사람이 그림이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것을 타인에게 드러내면서 치유를 해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시간과 정서를 공유하기

 

이야기의 미덕은 무엇인가. 불쾌하고 화가 나는 경험도 누군가에게 하나의 에피소드로 들려줄 때, 우리는 감정을 내려놓고 상황을 객관화하면서 자아를 성찰할 수 있다. 밤에 이불킥을 하느라 잠 못 이룰 정도로 창피하고 후회스러운 일인데, 친구를 만나 수다로 풀다 보면, ‘유체 이탈’ 화법을 구사하면서 즐거운 해프닝으로 웃어넘길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고 거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힘든 현실을 견딜 수 있다. 그러한 안전기지 또는 전환의 장치가 없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극단적인 언사로 분노를 배설하게 된다. 그런 쪽으로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정서적인 안식처를 마련해야 한다.

 

행복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개념 가운데 하나로 ‘관계재(relational goods)’가 있는데,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할 때 생겨나는 가족애, 우정, 사랑, 동료애 등을 가리킨다. 무형의 재화로서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재는 돈으로는 구매할 수 없고 시간과 정서를 투자해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돈을 버는 데에만 전력투구하면 일상이 삭막해질 뿐 아니라 건강도 나빠진다. 적절한 경제력을 확보하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균형 속에서 우리는 건강해질 수 있다. 이제 감염병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놓아야 하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관계재는 면역력을 담보하는 그릇이다.

 

 

김찬호사회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는 문화인류학, 사회학, 교육학 등을 강의하고 있고, 대학 바깥에서 부모 교육, 노년의 삶, 교사의 정체성, 마을 만들기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글을 쓰고 대중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로 『사회를 보는 논리』 『문화의 발견』 『교육의 상상력』 『생애의 발견』 『돈의 인문학』 『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2014년 한국출판문화상 수상) 『눌변』 『유머니즘 : 웃음과 공감의 마음사회학』 등이 있다.
chan-ho7@daum.net

 

 

아르떼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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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