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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 경계에 구멍을 뚫고 틈을 벌리는 공동공간

 

장소와 공간에 대해 지금보다 더 예민해진다면, 더 많은 공동공간이 있다면 우리는 더 좋은 사회에 살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며 공간을 간절히 욕망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10여 년 동안 살던 시골을 떠나 다시 도시로 돌아온 8년 전이다. 다시 도시에 살게 된 그때 나를 압도하는 느낌은 불행하게도 답답함과 무력감이었다. 생계를 위해 할 일이나 직장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내 나를 사로잡는 답답함과 무력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도시는 공간이 부족했고, 관계는 단절되어 있었고 시간은 부서져 있었다. 도시에서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자유롭게 할 야외 공간도 실내 공간도 부족했다. 작은 공간을 임대하는 데도 감당하기에 너무 큰 비용이 필요했다. 도시에서 맺기 시작한 관계는 깊은 연결을 느낄 수 없는 업무 관계가 전부였다.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도 몇 년간 이웃이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몇몇 이웃들이 생겼다. 그러나 공간 부족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과제였다. 도시에서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위해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공간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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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공간: 커먼즈로서의 도시 / 스타브로스 스타브리데스 / 빨간소금 / 구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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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시대 : 시대를 빛낸 집합주택 / 손세관 / 집 / 728.31 손53ㅈ   자연과학열람실(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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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발견, 교실의 발명 : 학습 공간 모델과 학교 유형 / 김성원 / 소동 / 371.6 김53ㅎ

사회과학열람실(3층)

 

사이 공간으로서의 공동공간

 

공간에 대해 탐구할 때 접하게 된 책들 가운데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 한 권은 스타브로스 스타브리데스(Stavros Stavrides)가 지은 『공동공간: 커먼즈로서의 도시』(Common Space: The City as Commons) 이다. 당시는 영문 서적만 구해 읽을 수 있었는데 올해 번역본이 출간되어 다시 읽게 되었다. 책의 저자는 그리스의 건축가, 사회 활동가, 아테네 국립기술대학교 건축학부 준교수로, 사회주택 설계 과정과 대도시 경험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공동공간 : 커먼즈로서의 도시』는 도시 공간을 연구한 다양한 학자와 연구자들의 주장과 세계 곳곳 공동공간의 사례를 소개하며 공동공간이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공간을 사적공간, 공적공간, 공동공간으로 구분한다. 사적공간은 말 그대로 개인 또는 사적 기업이 소유한 공간이며 타인의 이용을 배제하는 폐쇄적 영토이다. 공적공간은 정부가 소유하고 관리하며 시민들이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는 공공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시민의 활동은 주권자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허용된다. 반면 공동공간(Common space)은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적이며 내부 규율과 질서를 유연하게 지속해서 민주적으로 재정립하며, 권력 집중을 방지하고, 끊임없이 창조적인 관계와 활동이 만들어지는 상시적이거나 임시로 조성되는 공간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도시를 공동체의 터전으로 보고, 집합주택, 공원, 광장, 가로에서 시민들이 함께 공동공간을 자율적으로 만들어 갔던 사례들을 소개하며, 공적공간을 시민들이 개입하여 각자 주체적으로 창조적인 활동을 제약받지 않는 공동공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공간을 저자는 도시 속의 틈새 공간이자 경계가 있지만 개방된 문턱 공간이자 경계에 구멍을 내는 다공성의 공간이자 사이 공간, 즉흥적 열정이 넘치는 공간으로 묘사한다.

 

이 책은 나의 인식을 확장하고, 새로운 지식과 실천을 소개하는 지도였다. 이 책에서 발견한 공공장소(Public Space)와 공동장소(Common Space)란 키워드를 붙들고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때 세계 도시 공공장소에서 시민의 사회적 관계와 예술과 문화 활동을 확장하는 활동을 소개하는 PPS(Project for Public Space)를 알게 되었다. 이 사이트는 내가 도시 공공장소를 좀 더 생생하고 의미 있게 이해하고 공공장소 활동에 대해 풍부한 다양한 사례와 아이디어를 알게 한 정보의 보고이다. 한편, 소토노바(ソトノバ)는 일본에서 마을과 지역의 야외공간인 소토노바를 공공장소로 만들기 위한 가이드와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이곳에서 발견한 사례들을 안내자 삼아 서울혁신파크 옥상에 옥상 공유지 실험을 전개했고, 혁신파크가 폐쇄된 이후에는 살고 있던 마을 인근 공공텃밭 일부를 주민들과 함께 살래공동텃밭으로 만들었다. 올해 초 마을 서점 ‘소동’에서 두 달에 걸친 연속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며 마을의 공공장소를 어떻게 공동공간으로 바꿀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최근에는 마을 앞에 텅 빈 채 남아 있는 1만여 평 LH 소유 부지에 어떻게 주민들이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는 공공시설을 유치하고 공동공간으로 만들지 몇몇 이웃과 모여 작당을 하기 시작했다. 말로 끝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잠깐 벌이는 해프닝만 일어날 수 있지만, 도무지 이 답답한 도시에서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에 대한 욕망과 불쑥 일어나는 상상을 멈출 수는 없다.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사례 중에는 튀르키예서 살다 그리스로 강제 이주한 그리스계 난민들의 정착촌 이야기가 나온다. 이 슬럼가의 난민들을 위해 정부는 10년 만에 아테네 인근에 알렉산드라 주택단지를 지었다. 1934-35년에 지어진 알렉산드라 주택단지의 각 세대는 대부분 방 2개, 주방과 작은 욕실만 있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주민들은 아무것도 없던 야외 공간을 자율적으로 작은 안뜰, 보도, 나무 그늘, 즉흥 놀이터, 회의 장소로 변형했다. 여성들은 공용 세탁실을 사교장처럼 사용했다. 겨울철 외부 계단은 시끄러운 놀이터로 변했다. 이처럼 튀르키예 공동체 문화를 공유하고 있던 그리스계 난민들은 주택단지를 사적 경계와 공적 경계를 흐리게 하는 다공(多孔)의 도시 환경으로 만들었다.

 

함께 살고 교류하는 집합주택

 

알렉산드라 주택단지는 손세관의 『집의 시대 : 시대를 빛낸 집합주택』을 떠올리게 했다. 손세관은 중앙대학교 건축과 명예교수이자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세계의 주거 문화를 탐색한 연구자이다. 이 책은 20세기 등장한 세계의 집합주택, 우리가 부르는 아파트 단지와 연립주택, 주상복합주택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30개 주택단지를 소개한다. 그중에는 로테르담의 주택국에서 일하던 야코부스 오우트(J.J.P.Oud)가 설계한 튀센디켄(Tusschendijken) 블럭형 주택단지가 있다. 이 주택단지 중앙에 거대한 중정이 있는데 가장자리는 개인 정원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중앙은 주민 공동의 여가 공간으로 사용케 했다. 입주자들의 교류를 위한 기획이었다. 미힐 브링크만(Michiel Brinkman)이 설계한 로테르담 스팡언 지구의 집합주택(Spangen Quarter Housing)역시 블럭형이고 중정을 개인정원과 공용정원으로 구성한 것은 같지만 3층에 골목길 같은 공중 가로를 만들었다. 주민들은 이곳을 통행, 교류 공간, 개인 정원처럼 이용했다.

책 속에는 그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설계한 마르세유의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도 있다. 이 집합주택은 17층 높이에 350가구를 수용하는 데 상점 거리와 26종류의 공공시설을 포함하고 있으며, 옥상에는 체육관, 수영장, 유아원, 노천극장까지 두었다. 이런 시설들은 모두 사회적 교류와 관계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였다. 비행기 위에서 보면 온통 삐죽삐죽 솟은 아파트 단지만이 보이는 아파트의 나라 한국에서 주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다양한 아파트의 유형과 혁신적인 시도들, 그리고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적 교류를 촉진하고자 공공공간을 포함하려 했던 건축가들의 노력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아파트는 비록 이웃 소통이 단절된 주거 형태로 여겨지고 있음에도 크고 작은 커뮤니티 시설들을 포함하고 있다. 집합주택을 사회적 관계가 일어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20세기 건축가들의 영향이다. 한국의 커뮤니티 공간은 아파트 거주민 이외 사용을 허락지 않고 일방적 이용규칙이 작동하는 폐쇄적 공간이거나 주민 간의 사회적 교류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이 공간들을 어떻게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적 교류와 창의적 시도들이 만들어지는 유연한 공동공간으로 바꿀 수 있을까? 문화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공통 분모 없이 지나칠 정도로 개별화되고 폐쇄적이고, 아파트 공동의 관리 문제에도 크게 관심이 없는 아파트 주민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가속하면서 10년 내 아파트의 상황은 바뀌게 될 것이다. 아파트가 거주지의 위기가 되지 않도록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아파트의 조경과 정원을 어떻게 그리스 알렉산드라 주택단지의 주민들처럼 창조적이고 자율적으로 경계를 허물며 야외 공간을 다공의 공공장소로 만들 수 있을까?

 

교육을 넘어, 공동체를 생각하는 학교

 

공동공간을 향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나를 도시의 공공장소들에 대한 연구와 실천으로 이끌고 있다. 세계의 도서관과 미술관, 문화센터, 놀이터, 체육관, 공공텃밭, 도시공원과 수변 공원의 변화와 시민 참여 사례를 연구하게 되었고, 결국 교육기관 그 이상인 주요 공공공간으로서 학교까지 연구하게 되었다. 여러 학교의 공간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최근 『학교의 발견, 교실의 발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세계의 다채로운 교실 모델과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다양한 학교 건축과 미래 교육 방식을 소개한다. 특히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을 우려하는 지역에서 문화, 복지, 평생교육, 스포츠, 위생 건강 시설까지 복합한 공동체학교(community school)에 대해 소개한다. 시설 복합화한 학교는 이제 단지 교육을 위한 섬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도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공공시설의 효율적 관리와 운영을 위해 학교의 시설 복합화를 추진하고 있다. 비단 학교뿐 아니라 앞서 열거한 도서관, 미술관 등 공공시설들 역시 단지 정부의 재원만으로 운영하던 시대는 지나고 있고, 시민들의 참여와 개입, 지원을 요청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베이비부머의 등장과 함께 급성장했던 세계의 도시들처럼 6.25 전쟁 후 급격히 확대한 한국의 도시들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도시의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낡아졌다.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던 시대, 사회적 교류를 지향하며 풍요로운 거주 환경을 추구했던 건축가들의 시도를 따르기 보다는 유난히도 개발 논리에 따라 조성되어 온 한국의 도시와 그 도시의 주요 거주 형태인 아파트는 도시민들의 삶과 일상을 파편화하며 답답하게 고착해왔다. 시민들을 일터와 거주 공간에 가두고 직업 활동 외 다양한 사적 창의 활동이나 취미활동, 사회적 활동과 사회적 연결을 촉진할 공동공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한편, 이제 인구가 감소하면서 공공시설들의 유지와 관리보수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공공시설의 총량을 줄이고 조절하려는 정책을 펴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고, 시민들의 지원과 개입 없이는 공공공간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은 시민들이 다양한 공간과 시설에 개입하고 공간의 용도를 바꾸고 자신들의 공동공간을 만들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보다 도시의 공간에 대해 예민해지고 공동공간을 확장하기 위한 상상과 도전을 해야 한다.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인 복합 위기 상황이 다가온다 해도 자유롭게 이용하고 타인들과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와 다양성은 한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가 위축되지 않고 시민 문화와 예술이 성장할 가능성의 척도이자 일상의 풍요로움을 확장할 근거이기 때문이다.

 

 

김성원파주에서 적정기술, 공예, 다양한 공공장소와 공간에 대해 연구하며 저술과 실천 활동, 그리고 공간기획가로 살고 있다. 저서로는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 『점화본능을 일깨우는 화덕의 귀환』 『화목난로의 시대』 『시골 돈 보다 기술』0 『마을이 함께 만드는 모험 놀이터』 『근질거리는 나의 손』 『자연 미장』 『학교의 발견 교실의 발명』 『독일의 학교 시설 복합화 및 개방 정책 사례와 시사점』이 있다. 공저로 『2019 한국의 논점』 『기술비평들』 『사물에 수작부리기』 『똥의 인문학』 『지구별 생태사상가』 등이 있다.
coffeetal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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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

 

 

 

우리 삶에 더 깊숙이, 확장과 변화를 이끌기 위하여 :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효과 측정

 

 

문화예술교육이 점점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학교 안’을 나와 ‘사회 안’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면서 시민들의 일상적 활동 중 하나로 자리매김 중이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문화예술교육이 이끄는 사회적 효과(social impact)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효과(impact)와 가치(value)는 종종 혼용되어 사용되나, 이 둘은 분명 구분되는 개념이다. ‘가치’가 거시적인 차원에서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변화를 의미하는 데 반해 ‘효과’는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측정 가능한 성과(performance) 혹은 결과(outcome)를 뜻한다. 과거의 연구들이 상상력, 창의력, 자존감, 행복감 등 문화예술교육이 가져오는 정서적·심리적 효과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사회적 참여 및 교류의 기회 제공,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 증진, 지역사회 정체성과 자부심 고취, 공동체 의식 함양 등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되어 나타나는 효과들에 주목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효과는 ‘문화예술교육이 이끄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삶의 변화와 이를 바탕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차원의 변화’를 포괄한다. 문화예술교육이 갖는 내재적 가치를 넘어 문화예술교육으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변화를 객관적으로 지표화하고 측정하는 작업은 문화예술교육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의 공급자로서 공공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공공 재정 투입의 효율 및 효과 분석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예술교육의 효과 측정이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적 가치보다 그것이 산출하는 경제적, 사회적 성과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비판적 성찰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의 개인적·집합적 성과를 객관화하는 작업은 문화예술교육의 존재 이유를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규범적 지지를 넘어 실질적인 투자와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단기적 성과에서 점진적‧누적적 효과로

 

최근 문화예술교육이 창출하는 사회적 효과의 내용, 범위, 측정 지표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문화예술교육 현장과의 괴리는 여전한 듯하다. 먼저 문화예술교육의 효과를 ‘정책 성과’로 이해하면서 단기적으로 관찰 가능하고 직접적으로 관리 가능한 지표 위주로 측정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참여자 수, 프로그램 참여자 만족도, 예술강사 파견 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정책 성과 중심 지표들은 문화예술교육 효과의 시간성을 간과하기 쉽다. 문화예술교육 효과는 즉각적이기보다는 점진적이고 누적적이며 단계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개인의 심리 상태와 가치관의 변화 등 개인적 차원의 효과는 물론이고 사회자본 형성, 공동체의 의식 제고, 포용과 관용의 증대 등 사회적 차원의 효과는 더더욱 그러하다. 단기 성과 중심의 지표들은 참여자가 교육의 전 과정과 교육 종료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장기적·누적적 효과들을 누락하거나 평가절하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의 경우, 유경험자가재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업 단위의 평가가 아니라 개인 단위 변화를 종단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설문 중심의 경험적 방법론이 갖는 한계도 명확하다. 문화예술교육의 효과 측정은 주로 설문 등 경험적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양적 방법론에 의존하고 있다. 교육 참여자와 비참여자 그룹으로 나눠 설문하거나 참여자 그룹을 참여 전후로 나눠 설문하고 비교 분석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준화된 정량적 지표 체계는 교육 사업이나 프로그램 간 효과를 비교하는데 용이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은 상황과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고 사업 목적, 유형, 방법 등 조건에 따라 그 효과가 상이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일반화된 해석을 적용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따라서 정량적 변수 중심의 양적 방법과 맥락과 의미를 토대로 통찰하는 질적 연구 방법을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여 참여자의 변화를 다층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와 기관, 참여자를 넘어서

 

문화예술교육이 매개하는 사회적 효과의 공간적 범위에 대한 고민도 요구된다. 오늘날 문화예술교육은 학교 교육에서 사회 교육으로 확대되면서 그 파급력 또한 지역(도시)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문화도시 사업 등 지역사회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증가하면서 그 성과 또한 지역사회와 결부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춘천의 경우, 문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저출생, 고령화, 사회적 고립 등 지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의제들과 문화예술교육을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지역사회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현재의 보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교육 성과 평가는 지역 현안이나 특수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없다. 전국적 수준의 성과와 지역적 수준의 성과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면서 지역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효과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지역 특화 모델 및 관련 지표 개발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교육의 주체로서 교육자(예술가)가 교육 과정을 통해 겪는 변화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예술교육가(Teaching Artist)는 교육학적 역량을 겸비한 예술가로서 참여자의 예술 창작 과정과 활동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현장에서 만난 예술교육가들은 예술교육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예술적 역량도 키워나갈 뿐 아니라 참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태도, 활동, 작업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재확인하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예술교육가에게 나타나는 변화 또한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성과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참여자(시민)에게 초점이 맞춰진 사회적 효과 측정을 장기적으로 교육자(예술가)까지 확대해야 할 것이다.

 

막연한 추측에서 객관적‧입체적인 근거로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는 암묵적으로 인정되고 막연하게 추측되어 왔다. 문화예술교육이 사람과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이를 객관적인 수치로 제시하기 어려워 여러 선택의 상황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보류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되었다.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효과를 정량화하는 것은 참여자에게는 학습의 객관적 성취 및 성과를 제공하고, 매개자(행정가, 예술교육가)에게는 교육의 실천 능력을 높이며, 정책 및 행정가에게는 예산 집행 근거 자료로써 유용하다. 무엇보다 문화예술교육의 목적과 지향을 점검하고 공론화하는데 초석이 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놓치거나 도구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의 성과를 입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측정 지표와 방법론을 지속적으로 정교화해 가야 할 것이다.

 

김미영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주 연구분야는 도시문화, 공간문화이다.
myk@hallym.ac.kr

 

< 출처 : 아르테 365 >

:
Posted by sukji

 

 

 

국가가 아이들의 미래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

 

경제학으로 보는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아동 학대 및 방임 사건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정인이 사건이나 경남 창녕에서 학대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4층 빌라의 지붕을 넘어 탈출한 10살 소녀나, 모텔을 전전하며 두 아이를 키우다 아이를 던져 뇌출혈을 일으킨 인천 모텔 영아 학대 사건도 모두 지난 3-4년 안에 벌어진 일이다.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많은 아이가 학대 및 방임에 준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이런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크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의 환경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 사건 속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사회가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한다면 이들의 삶에 작은 볕이 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많은 경제학자가 노력했다. 최근 20년 동안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 무엇인지 내게 묻는다면, “(임신 기간을 포함한) 5세 미만 어린 시절 환경의 지대한 중요성”을 밝힌 것이라고 답하겠다. 경제학이 이런 것도 연구하냐며 놀랄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환경의 장기 효과’는 최근 경제학 연구의 주요 주제이다. 그리고 이는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가장 중요한 경로라는 것도 밝혀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은 ‘불평등의 씨앗’인 셈이다.

 

경제학은 2000년대 들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양질의 데이터와 연구 방법론의 발전은 실증 경제학 연구의 신뢰성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를 소위 경제학의 ‘신뢰성 혁명(Credibility Revolution)’이라 부른다. 신뢰성 혁명은 우선 양질의 데이터가 확보될 수 있기에 가능했다.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도 우수한 데이터가 급격히 증가했다. 또 ‘자연 실험(Natural Experiment)’이나 ‘사회 실험(Field Experiment)’과 같은 기법을 이용하여, 정책 혹은 프로그램의 인과성을 입증하는 연구가 발전을 거듭했다. 하버드대학교 교수이자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즈 체티(Raj Chetty)는 「경제학은 과학이다」라는 기고문([뉴욕타임스])에서 가용한 데이터가 늘어남에 따라, 경제학은 더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분야가 되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 환경이 주는 장기적 영향

 

먼저 편의상 ‘어린 시절(영유아기)’을 출생 이후 만 5세까지로 정의하겠다. 그 이후에는 초등학교에 진학하므로 매우 다른 환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환경이 어른이 된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다.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고 일류대학에 진학한 성공담을 가뭄에 콩 나듯 듣지만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대부분은 고등 교육의 기회와 좋은 직장을 갖지 못한다. 즉 영유아기와 성인기의 삶은 ‘연관성’이 있다. 그런데 성인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반드시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만은 아니다. 유전적 요인, 물리적 환경, 친구, 학교 등 수많은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경제학자들은 영유아기의 환경이 성인기에 미치는 영향, 즉 ‘인과성’을 증명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요인은 다 비슷한데 영유아기 환경만 다른 사람들을 찾아서 비교하는 일이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상황이 실마리를 제공했다. 예컨대, 지난 수십 년 동안 아동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환경은 지속해서 개선되었다. 공중보건, 공기질, 의료 서비스 등 많은 부분에 진보가 있었다. 그런데 개선이 한 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지역과 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아동기 건강 환경의 영향을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개선이 먼저 이루어진 지역과 나중에 이루어진 지역을 비교하는, 소위 이중차분법(Difference-in-Defferences)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건강한 환경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공중보건 사업을 살펴보자. 1920년대 미국, 1950년대 브라질, 콜롬비아, 멕시코 등의 남미 국가에서 대대적인 말라리아 박멸사업을 시행했다. ‘DDT’라는 대단한 살충제가 새로 개발된 덕분이다. 어린 시절 말라리아 박멸사업의 혜택을 본 지역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 임금이 크게 올라, 미국은 약 12%, 남미 국가는 평균 25% 증가했다(Bleakley, 2010). 남미가 미국보다 말라리아 박멸사업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이유는, 박멸사업 전 말라리아로 인한 피해가 더 컸기 때문이다. 이 수치를 환산하면, 어린 시절 말라리아에 감염된 경우 임금이 무려 50%가량 줄어드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말라리아 박멸사업 지역 학생의 성적이 크게 상승(0.2 표준편차)한 것으로 나타났다(Venkataramani, 2012). 즉, 말라리아는 뇌에 영향을 주어 인지 및 운동 기능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중증 질환이기 때문에 학업성취와 임금에도 영향을 준다.

 

유해 물질에 노출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주유소에서 ‘무연’ 휘발유라는 문구를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원래 휘발유에는 기술적인 이유로 납을 첨가했었다. ‘유연’ 휘발유다. 많은 과학자가 납의 유해성에 대해 지적했다. 이에 스웨덴은 1970년대에 점차 유연휘발유를 퇴출했다. 우리나라는 무려 20년이 늦은 1993년이었다. 최근 스웨덴의 한 연구에서 유연휘발유 퇴출로 공기 중 납의 농도가 줄고, 이것이 학업성취와 임금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을 밝혔다(Grönqvist, Nilsson, Robling, 2020). 가정환경도 중요하다. 어린 시절 부모의 소득이 늘면 교육과 건강에 더 투자할 여력이 생긴다. 코코아의 국제 가격이 오르면 가나의 코코아 재배 지역 자녀들이 혜택을 입는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어른이 되어서 스트레스가 적은 삶을 산다(Adhvaryu, Fenske, Nyshadham, 2019). 노르웨이가 생산하는 북해 브렌트유 가격이 오르면, 노르웨이 어린이들의 인지 능력과 학업성취가 올라간다. 그리고 혜택은 저소득층에서 훨씬 크게 나타난다(Løken, Mogstad, and Wiswall, 2012). 학대 및 방임의 영향은 어떨까? 미국 자료를 분석해 보면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은 지능(IQ 점수)이 5% 정도 낮고, 직장을 가질 확률도 50%나 감소한다. 취업해도 임금이 평균 24% 정도 낮다(Currie and Widom, 2010). 그렇지만 유년기의 학대가 성인기 불우한 삶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이 불운한 아이들은 학대 이외에도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불리한 환경(가난, 폭력, 나쁜 친구)을 함께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과성’을 밝혀내기가 어렵다.

 

어린 시절 환경을 개선한 영유아 조기교육의 효과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양질의 영유아 교육(Early Childhood Education) 프로그램의 효과를 살펴보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제임스 헤크만(James Heckman) 시카고대학교 교수이다. 헤크만 교수는 다양한 정책 평가에 사용되는 계량경제학의 방법을 발전시킨 공로로 2000년, 56세의 나이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구직자의 직업교육 프로그램 효과와 같은 노동시장 정책을 주로 분석하던 그는 노벨상 수상 이후 연구 분야를 바꾸었다. 남들은 은퇴를 준비할 나이에 영유아 및 아동 환경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지난 20년의 성과는 조만간 헤크만 교수가 두 번째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다. 그가 연구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1964년 존슨 정부의 복지정책인 <빈곤과의 전쟁>에서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헤드스타트(Head Start)’ 프로그램이다. 저소득 가정의 유아를 위해 무료 혹은 저렴한 교육비로 조기 유아교육(3~5세)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도 이를 본떠 2007년부터 드림스타트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하였다. 헤드스타트는 영유아기에 저소득층, 대부분 만 3-4세의 저소득층 흑인 가정을 대상으로 영양/보건/보육의 문제를 다루며, 부모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가정방문도 자주 한다. 연구 결과 헤드스타트가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범죄에 가담할 확률을 낮추었고(Garces, Currie, and Thomas, 2002), 비만 및 우울증 등의 건강 문제를 크게 줄였다(Carneiro and Ginja, 2014).

 

또 다른 사례로는 1960년대 미시간주에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실시된 페리 프리스쿨 프로그램(Perry Preschool Program)과 이와 유사한 노스캐롤라이나주의 ABC/CARE 프로그램(The Carolina Abecedarian Project (ABC) and the Carolina Approach to Responsive Education (CARE))이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효과를 평가할 수 있도록 ‘무작위 통제실험’을 실시했다. 즉 지원한 사람 중에 프로그램에 참여할 사람을 제비뽑아서 결정한 후, 이들을 40년 이상 추적 조사했다. 페리 스쿨 프로그램의 효과는 상당했다. 수혜자는 학업성취, 취업 여부, 소득, 결혼 여부, 건강, 범죄 등 모든 영역에서 훨씬 나은 삶을 살았다(Heckman et al., 2010; Conti et al., 2013). 그런데 이는 놀랍게도 IQ와 같은 인지 능력보다는 자존감, 참을성, 정서적 안정과 같은 비인지 능력(Non-cognitive skill)에서 기인한 것이었다(Heckman et al., 2013). ABC/CARE 프로그램도 큰 효과를 보여주었다(표). 초등학교 1학년쯤에 실시한 PIAT(Peabody Individual Achievement Test, 학업성취검사)에서 여학생은 95.6점에서 4.9점 상승했고, 남학생은 93.5점에서 7.7점 상승했으며, 고등학교 및 대학을 졸업할 확률도 크게 늘었다. 30세의 소득은 특히 남자에게서 많이 증가했다. 대조군의 평균소득은 2014년 기준 29,340달러(약 3,000만 원)인데 반하여 처치군의 평균소득은 49,149달러로 임금이 무려 68%(19,800달러)나 증가한 것이다(García et al, 2020). 건강도 좋아져서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이 될 확률이 크게 낮아졌다.

 

[ABC/CARE 프로그램 효과]

 

여성남성대조군 평균참여자 평균 효과대조군 평균참여자 평균 효과

 

PIAT 점수 95.63 +4.92 93.46 +7.7
고등학교 졸업률 0.51 +0.25 0.16 +0.07
대학교 졸업률 0.08 +0.13 0.12 +0.17
30세 기준 소득 (달러) 23,443.42 +2.547.50 29.340.31 +19.809.47
자료: Garcia et al.(2020)
 
 
 

 

비인지 기능의 중요성

 

영유아 조기교육 프로그램은 성적 개선 효과가 비교적 제한적이다. 유일하게 성적 향상이 있었던 것은 ABC/CARE 프로그램인데, 이마저도 단기에만 나타나는 비교적 작은 효과다. 그러면 임금과 건강에 미치는 상당한 효과는 어디서 왔을까? 사람을 성공적인 삶으로 이끄는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헤크만 교수의 연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Heckman, Stixrud, and Urzua, 2006). 성공적인 삶을 몇 개의 변수로 간단히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임금 수준, 교육 연한, 건강, 안정적 가정생활 등을 그 척도로 잡았다. 실제로 부모들은 자녀가 우수한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 갖기를 바란다. 자녀에 대한 투자는 학원이나 과외 같이 아이들의 인지 능력(Cognitive skill)을 높이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그의 연구 결과는 인지 능력과 더불어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여겼던 자존감, 자기효능감, 참을성(끈기), 성실성, 개방성, 정서적 안정, 개인이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과 같은 비인지 능력(Non-cognitive skill)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그림1]은 인지 능력 및 비인지 능력이 임금에 미치는 효과를 보여준다. 미국의 사례로, 첫 번째는 남성, 두 번째는 여성의 경우다. 그림이 조금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먼저 X축은 인지·비인지 능력을 보여준다. Y축은 (로그를 취한)임금 수준을 보여준다. 인지 및 비인지 능력이 모두 최하위인 사람들의 임금에 비해 인지 및 비인지 능력 모두 최상위인 사람들의 차이가 엄청난 것을 볼 수 있다. 여성의 경우는 인지 및 비인지 능력에 따른 차이가 남성보다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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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인지 기능과 비인지 기능에 따른 임금 수준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인지 능력 못지않게 비인지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가령, 끈기 있는 학생은 교육에 더 투자할 수 있다. 그 결과 임금도 증가한다. 성격이 좋은 사람은 회사 생활을 더 잘하고. 인지 및 비인지 기능은 상보적이다. 이를 모두 갖춘 사람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 이러한 패턴은 교육, 건강 등 우리 삶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이렇듯 영유아 조기교육 프로그램의 효과는 상당 부분 비인지 능력의 향상에서 왔다. 모든 영유아 프로그램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비인지 능력 개선이 장기 효과의 비결이다. 미국에서는 학교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고 영유아 프로그램을 비판하고, 때로는 없애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자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투자는 학원과 과외 수업 등 인지 기능을 높이는 데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난의 대물림에서 구하려면 성적 향상보다는 자존감과 참을성(끈기) 등 비인지 기능을 개선하는 노력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이야말로 바로 비인지 기능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의 사례에서 보듯 베네수엘라의 아동·청소년 관현악단이 청소년의 자존감과 성취동기를 향상시키고, 나아가 범죄예방 효과도 있다는 사례가 있다. 남수단 의료 선교사였던 이태석 신부도 분쟁지역에서 학교과 병원과 함께 청소년 밴드를 운영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교육이 비인지 기능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에 대한 분석은 별로 많지 않다. 이는 문화예술인들과 경제학자들이 협업해서 진행해볼 수 있다.

 

왜 국가는 아이들의 미래에 투자해야 할까

 

영유아 프로그램부터 직업교육까지 평생 인적자본을 연구한 헤크만 교수는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집대성하여, 삶의 주기에 따라 인적자본 투자의 비용효과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가 유명한 ‘헤크만 곡선 (Heckman Curve)’이다(그림2). 헤크만 곡선은 임신기 및 아동에 대한 초기 투자가 직업교육과 같은 성인기 투자에 비해 더 비용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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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헤크만 곡선(Heckman Curve)

 

 

저소득층의 아이들은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가난의 대물림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양질의 영유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아이들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투자에는 정치적 견해 차이가 적은 편으로, 우리 사회가 비교적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가치 있는 투자다. 국가는 아이들의 미래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참고문헌]

· Adhvaryu, Achyuta, James Fenske, and Anant Nyshadham. “Early life circumstance and adult mental health.”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27.4 (2019): 1516-1549.

· Bleakley, Hoyt. “Malaria eradication in the Americas: A retrospective analysis of childhood exposure.” American Economic Journal: Applied Economics 2.2 (2010): 1-45.

· Carneiro, Pedro, and Rita Ginja. “Long-term impacts of compensatory preschool on health and behavior: Evidence from Head Start.” American Economic Journal: Economic Policy 6.4 (2014): 135-73.

· Currie, Janet, and Cathy Spatz Widom. “Long-term consequences of child abuse and neglect on adult economic well-being.” Child maltreatment 15.2 (2010): 111-120.

· Garces, Eliana, Duncan Thomas, and Janet Currie. “Longer-term effects of Head Start.” American economic review 92.4 (2002): 999-1012.

· García, Jorge Luis, et al. “Quantifying the life-cycle benefits of an influential early-childhood program.”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28.7 (2020): 2502-2541.

· Garces, Eliana, Duncan Thomas, and Janet Currie. “Longer-term effects of Head Start.” American economic review 92.4 (2002): 999-1012.

· Grönqvist, Hans, J. Peter Nilsson, and Per-Olof Robling. “Understanding How Low Levels of Early Lead Exposure Affect Children’s Life Trajectorie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28.9 (2020): 3376-3433.

· Heckman, James, Rodrigo Pinto, and Peter Savelyev. “Understanding the mechanisms through which an influential early childhood program boosted adult outcomes.” American Economic Review 103.6 (2013): 2052-86.

· Heckman, James J., Jora Stixrud, and Sergio Urzua. “The effects of cognitive and noncognitive abilities on labor market outcomes and social behavior.” Journal of Labor economics 24.3 (2006): 411-482.

· Heckman, James, et al. “Analyzing social experiments as implemented: A reexamination of the evidence from the HighScope Perry Preschool Program.” Quantitative economics 1.1 (2010): 1-46.

· Løken, Katrine V, Magne Mogstad, and Matthew Wiswall. “What linear estimators miss: The effects of family income on child outcomes.” American Economic Journal: Applied Economics 4.2 (2012): 1-35.

 

* 이 칼럼은 필자의 『경제학이 필요한순간』, 〈제4회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에서 발표한 ‘국가가 아동 돌봄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한다.

 

김현철

의사이자 경제학자.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의사로 활동하다가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및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코넬대학교 정책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의사 시절 사회의 약자들이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죽어가는 현실을 목도하고 건강 불평등의 문제가 사회·경제적인 문제임을 깨닫고는 진료실을 나와 현장에서 실험하고 공공 정책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로 변신했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말라위, 에티오피아, 가나, 그리고 인도, 필리핀, 부탄, 홍콩 등지를 누비며 다양한 정책을 분석했다. 최근에 경제학을 통해 세상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지 기술한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2023, 김영사)를 저술하였다. 그의 연구는 [Science]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 [Journal of Public Economics]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Journal of Health Economics] 등 선도적인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 출처 : 아르테 36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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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로 디지털 시대 문화예술 교육을”

 

[인터뷰] 대인 올슨 전미미디어예술교육협회 대표

 

대인 올슨 전미미디어예술교육협회 대표는 “미디어아트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의 상상력, 창의력, 사고력, 리더십, 책임감이 증대된다”고 말했다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음악, 연극, 미술, 영화, 사진 등 서로 다른 기초 문화예술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융합하는 미디어아트 교육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즉 학생들이 미디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갖춰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해 매우 중요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이 5월 넷째주 ‘세계 문화예술교육 주간’을 맞아 지난 21~22일 개최한 ‘2024 문화예술교육 국제포럼’에 참석한 대인 올슨(Dain Olsen) 전미미디어예술교육협회 대표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의 창조적 역량 배양을 위해 문화예술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는데, 그중에서도 미디어아트 교육은 학생들의 잠재력을 키워준다”며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미국에서 미디어아트를 정규 과목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추세를 반영해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미래세대 역량으로 디지털 소양을 꼽았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위해 2025년부터 디지털 교과서를 교육과정에 도입하려고 준비 중이다. 교육진흥원은 ‘꿈다락 문화예술학교’ ‘예술로 탐구생활’ 워크숍, 문화예술교육 전문가 연수 등을 통해 미디어아트 분야를 포함한 디지털, AI 융복합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학생·학부모에게 미디어아트 교육은 여전히 생소하다. 대인 올슨 대표에게 미디어아트 교육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미디어아트 교육의 개념을 자세히 소개해달라. 

 

“과거 문화예술교육은 음악, 연극, 미술, 영화, 사진 등의 기초 문화예술 분야를 각각의 과목으로 분리해 수업했다. 반면 미디어아트 교육은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등을 포함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문화예술 분야를 융합하여 한 과목으로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음악·미술·영화가 결합된 뮤직비디오, 문학·사진·댄스를 합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교과과정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기존의 수업과 다른 점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미디어아트’를 만드는 과정의 주체가 되어 의견을 교환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주도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더욱 즐겁고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디어아트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며,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운다.”

 

- 미디어아트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현재와 같은 디지털 시대는 미디어(아트)를 통해 세상을 경험한다. 아이들은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채널이나 증강현실 기반 게임을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다. 미래세대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미디어아트 관련 소양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력·부모의 학습 수준 등과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균등한 미디어아트 교육을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학교를 기반으로 한 공교육이 미디어아트를 다뤄야 한다.”

 

- 미디어아트 교육의 장점은?

“다중 감각, 쉽게 말해 오감을 활용하는 미디어아트는 인간의 인지 과정과 일치해 전인적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생들이 수업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참여해 결과물을 만들어내거나, 문제 해결 방법을 도출해내기 때문에 학생중심적 수업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과거 수학 수업이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푸는 수준에 그쳤다면 미디어아트 교육에서는 비디오게임과 노래를 하면서, 연극과 영화를 보면서 수학적 개념을 익힌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상상력, 창의력, 사고력, 리더십, 책임감이 증대된다. 미디어아트 교육이야말로 아이들 관점에서 접근한 교육법이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줌으로써 역량을 극대화시킨다.

 

- 기존 기초 문화예술교육과 미디어아트 교육의 가장 큰 차이를 꼽는다면?

 

“현재의 미술 교육은 연필을 사용할 것이냐, 크레파스를 쓸 것이냐만 가르치고 있다. 반면, 미디어아트는 다중 감각적인 학습이다. 미술, 애니메이션 같은 움직임 형태의 예술을 통합하고, 소리(사운드)를 가미해 통합적으로 만들어낸다. 쉽게 말해 시를 단순히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를 매개로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법을 교육한다. 역사, 수학, 과학 수업이라고 해서 외워야 할 개념만 무조건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픽디자인, 다큐멘터리 같은 문화예술 작품을 만들게 하고, 그 안에서 개념을 상상해 끄집어내고 이해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통합적 사고도 키울 수 있다.”

 

- 미국 내 미디어아트 교육 현황이 궁금하다.

“2000년대 초반 미디어아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문화예술교육과 미디어아트 교육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점점 지위와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나 역시 미디어아트 교육에 대한 기준과 표준을 만들어달라는 엘에이(LA)주정부의 요청에 따라 지난 4년간 2백만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고 150명의 교육가들을 고용해 미디어아트 교육을 실행했다. 현재 30여개 주정부에서 미디어아트 교육의 기준을 도입했고, 파일럿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올해 안에 미디어아트 교육과 관련한 법안이 상정되고 주의회에서 통과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인 올슨 전미미디어예술교육협회 대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 미디어아트 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교육 현장의 반응이 궁금하다.

“미디어아트 교육 이후 학생들의 수업 참여가 적극적일 뿐 아니라 긍정적인 자아 형성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반응이 좋다. 수업만으로 학생들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성취감을 주기 때문인지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다. 연극, 영화, 음악 등을 통해 사회적 이슈에도 동등하게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역량을 배양한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한국의 미디어아트 교육과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제언을 한다면?

 

“한국에서는 2014년부터 학교문화예술교육에서 미디어아트 분야 시범사업을 진행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교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기술에 대한 부담감이다. 디지털 기술과 지식을 겸비한 전문인력의 양성이 급선무다. 무엇이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아이가 걸음마하듯 단계를 밟아 차근차근 나아갔으면 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의 교육은 인간의 무궁무진한 사고와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각각의 세부 과목으로 분리해 가르쳤다. 미디어아트는 이것을 하나의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다. 완전하고 통합적인 것에 대한 잠재력을 키우는 역할을 미디어아트가 실현할 수 있다. 즉, 통합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교육이 미디어아트 교육이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도 극대화될 수 있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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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