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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없는 질문과 성찰이 방향을 만든다

 

말과 기록은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를 항상 고민하게 한다. 문화예술 분야의 여러 작업자와 협업함에도, 기획을 했다는 이유 혹은 언어화에 좀 더 능하다는 핑계로 우리에게 쓰고 말할 권력이 자주 주어진다. 하지만 한 사람의 발화가 작업 전반을 대표할 때, 필연적으로 비약이 일어난다. 함께 한 이들의 존재, 다른 감각과 해석, 다음 방향에 대한 제안까지, 구구절절 적어도 놓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전체가 합의한 문장이 아니기에 검열이 늘어난다. 낱말 하나하나가 무거워진다. 하지만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의 기록은 29년이 쌓였음에도 여전히 꼼꼼하고 진솔하다. 표현은 대담하고 그때그때의 고민을 거침없이 적는다. 품이 위탁 운영하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이하 ‘숨’)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시 1호 마을배움터이기에 더욱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숨의 홈페이지에, 공간 곳곳에 담겨있다. 품을 통과한 언어가 투명하게 숨을 보여준다.

 

진심 어린 나의 기록으로부터

 

품은 활동 초부터 기록을 남겼다. 처음에는 ‘전달’에 집중했다. 전달은 보여주는 것이고 읽는 이의 평가를 수반한다. 기획단계에서 오류가 생기고 진행 과정에서 감정이 오르내리는 것을 그대로 적기란 쉽지 않다. 문장이 가공되는 만큼 글은 과장된다. 그러기를 20여 년. 기록이 쌓일 만큼 쌓여서일까, 질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심한기 품 대표(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센터장)는 “나의 기록이 쌓여야 진짜 공유될 수 있는 공공의 아카이빙이 나오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나의 기록이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놓쳤고, 무엇이 어렵고, 무엇을 희망하는지’ 정직하게 쓰는 글이다.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기 전에, 자신을 마주하고 풀어내는 과정이다. 품은 사업기획안 하나를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자기 글을 쓰고 나눈다. 진행하기도 전에 지치지는 않을까 싶지만, 기획에 대한 자기 의심과 상상, 두려움과 설렘을 토로하다 보면 지구력과 애정도가 되레 상승한다고 말한다. 사업 하나에 들이는 공이 상당하기에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맡을 수도 없다. 경영평가를 받으면 낙제일 것이라는 심한기 대표의 웃음 뒤로 진심과 정성이라는 단어가 지나간다.

 

자신을 적어가는 시도는 사업기획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숨의 활동가들은 아침이면 SNS로 인사와 일과를 나누고, 퇴근할 때는 ‘업무 일기’를 공유한다. 한나절의 질문과 발견, 기분 등이 담긴 일기는 서로를 살피는 터가 된다. ‘주간 나눔’ ‘달 나눔’을 하는 시간도 있다. 이따금 수다만으로 해가 저물기도 하지만, 바쁜 업무 속에서 이 시간만큼은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서로를 살뜰하게 알아가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숨에서는 활동가뿐 아니라, 참여하는 이들도 자기 기록을 남기고 나눈다. 물론 ‘말’이라는 효율적인 소통 수단이 있지만, 발화자와 수신자의 언어 사이에는 간극이 있어 이해하려는 마음은 곧잘 미끄러진다. 때론 실제보다 아름답거나 비참한 풍경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글은 말 사이에 숨은 삶의 자잘한 소리, 침묵에 담긴 생각과 마음을 담아내는 옹기가 된다. 진심 어린 기록을 마주한 활동가가 감히 무엇을 미화하거나 미워할 수 있을까. 그저 ‘나는 어떠한가?’ 되물을 뿐이다. 품의 기록이 정직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물론 심한기 대표의 말처럼, 기록 행위 자체에 집착하게 되면 본질을 놓칠 수도 있다. ‘나의 기록’이 정직하려면 ‘환대’가 필수적이다.

 

마을배움터 숨 ‘아카이빙’

[이미지출처] 마을배움터 숨 홈페이지

  • 2019 십만원프로젝트 Story telling Book1

 

[이미지출처] 마을배움터 숨 홈페이지

 

‘스스로 그러한’ 존중과 환대

 

서울시 동북권 NPO지원센터에서 발행한 기록집 「품을 품은 사람들」을 보면 여러 참여자가 환대란 무엇인지를 전한다.

 

“품은 내가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줬어.”
“판단이나 평가 없이 나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줬어.”
“그렇게 매일 가서 라면만 먹고 오는데도 선생님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질문과 응원, 지지를 받는 과정에서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환영과 환대는 다르다. 환대의 기본 단위는 오롯이 한 개인이다. 상대방의 위치나 말, 태도와 상관없이, 무기력한 대로 다혈질인 대로 회의적인 대로,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환대의 대상은 집단이 될 수 없다. 성격별로 취향별로 그룹화해서 공식처럼 대할 수도 없다. 환대가 학교나 학원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이자,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까닭이다. 품은 초창기부터 자리를 열 때 가능하면 다섯 명에서 열 명 규모를 고집한다. 개개인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다. 또한 기획하는 곳곳마다 빈자리를 꼭 남겨둔다. 머뭇거리는 이에게 한두 개의 빈자리는 초대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너무 잘 짜면 안 된다”라고 심한기 대표는 말한다.

 

가령 숨에서 진행하는 ‘십만원 프로젝트’는 청소년이 하고 싶은 작업을 스스로 찾는 프로젝트이다. 십만 원으로 시작해서 매해 십만 원씩 프로젝트 지원금이 올라가는데, 최대 5년까지 연장 지원한다. 이제 3년 차이지만, 50만 원을 지원할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가득하다. ‘십만원 프로젝트’에는 숨의 활동가 전원이 참여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는 조언자가 아닌, 질문하고 고민을 나누며 힘을 실어주는 환대자로서 말이다. 그렇기에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자신만의 사유를 놓치지 않는다. 고유의 삶과 스타일을 담아낸다. 오르내리는 감정에 대해 단편영화를 찍고, 자해를 성찰하며, 인권에 대해 사유하는 등 열 개가 넘는 프로젝트 속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동북4구 활동가들과 진행한 ‘여행학교 숨’ 또한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사업 안에서 지쳐있는 활동가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대해 심한기 대표는 “첫 모임을 수다 자리로 준비했을 뿐”이라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울까. 모인 이들이 멈출 줄 모르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다. 약속된 시간은 끝나가지만 그럴듯한 여행 계획안은 나오지 않는다. 기획자로서 아찔한 순간이지 않을까. 하지만 숨은 집요한 과정 설계를 경계한다. 촘촘한 설계 뒤에 기획자의 불안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획자의 불안은 시간과 과정에 대한 권력을 쥐게 하고, 참여자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품 역시 기획 권력을 이양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그렇기에 ‘self-so’(스스로 그러한 태도)를 좌우명처럼 입에 달게 된 것은, 어쩌면 자기 실천을 위한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기획단계에서 치열하고 처절하게 논의했던 것은, 이토록 실행 과정을 비워놓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코로나19 속에서도 ‘여행학교 숨’은 기어코 또 다른 채비를 할 수 있던 것 아닐까.

십만원 프로젝트 중간 공유회

만남의 본질은 서사다

 

작년, 코로나19는 일상을 정지시켰다. 수많은 공간이 버티다 못해 문을 닫았고, 숨 홈페이지에도 ‘배움터 운영 중단’이라는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숨의 ‘별의별짓’ 소식은 여전히 공유되었고 내용 또한 풍성했다. 유튜브 채널에는 양질의 강의와 포럼, 청소년들의 영상이 자주 업로드되었다. 팬데믹 상황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품은 어떻게 대안을 찾은 걸까?

 

마을배움터 곳곳을 소개해주던 활동가는 “온라인 만남이 기괴하고 우울했던 것은 우리도 매한가지”였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잠시 중단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여겼지만 확진자 수는 점점 늘었고, 올해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숨을 흔든 건 불현듯 돌아온 ‘판’(별명)이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 품을 만났다가 예술 공부를 하러 유학을 갔다. 한동안 방송국 피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절을 보내다가 막 프리랜서로 전향한 그는 숨의 활동가들에게 ‘뉴노멀’에 대해 전했다.

 

“디지털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할 수 있는 도구이다. 줌(Zoom)은 15년 전 할리우드 영화 속 회의 매체로 빈번하게 등장했다. 모든 만남이 온택트여야 하는 극단적 상황은 괴롭지만, 우리는 이미 하루의 절반 이상을 온라인에서 살고 있다.”

 

가 건네는 이야기는 강렬했다. 과학에 대한 터부시와 기술에 대한 불편함을 다시 사유하게 했다. 숨은 장비를 샀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판과 함께 첫 번째 비대면 포럼 <교육에 묻는다>를 진행했다. 현장에서는 아날로그 방식 그대로 진행하면서 송출만 디지털로 해봤는데, 대면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포럼 중간중간 실시간 소통이 이뤄졌다. 영등포에서, 제주도에서 질문이 건너왔다. 장소 제약은 문지방만큼 낮았고 그마저도 아카이빙이 해소해주었다. 나 역시 방송이 끝난 한참 후에 포럼을 시청했다. 디지털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한 접속이 가능하면서도 공유와 동시에 기록이 이루어졌다. 이후로 축제 ‘10개(開)판’에 이르기까지, 품의 29년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만남을 실험하고 시도하며 비대면 만남을 준비할 때 꼭 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를 발견해갔다.

 

우리 사회는 갑작스럽게 만남의 전환기를 맞았다. 예술가들은 현장성이 사라진 자리에도 감각은 살아있기를 바라며 A부터 Z, 그 이상의 품을 들여야 했다. 그럼에도 감응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음이 닿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면 사회가 될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인지,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심한기 대표는 “전환의 시대를 건너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서사”이며 “황금비율의 핵심은 스토리”라고 말한다. 비대면 이전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쌓기 위해 무엇을 했었나. 만나는 이들을 살뜰히 챙겼던가. 필요하다면 전화도 하고 메일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던가. 기획의 이유는 끊임없이 물었던가. 왜 이 시간을 꾸리고 만남을 이어가는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던가.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 않았다면, 혹 만남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던가. “기술은 도구이고 매체다. 목표가 되면 그 안에 갇히고 만다.” 비대면이라고 해서 만남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황금비율도 마찬가지이다. 때에 따라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가져오기도 하고, 반대로 디지털을 아날로그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아날로그만을 고집해야 하고, 디지털만으로도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황금비율이란 정해진 숫자가 아니다. 모인 이와 전하는 이야기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만남의 그릇이다. 서사가 쌓이고 스토리가 표현되는 방식이다. 숨은 자신들의 황금비율을 찾았다고 한다. 이제 비대면 시대가 무섭지 않다며 미소 짓는다.

새로운 시대로 이끌 현장의 담론

지금껏 문화예술인들은 정체성 인정으로, 아티스트 페이로, 계약조건과 복지 이슈로 나름의 투쟁을 해왔다. 때마다 사업 담당자에게 호소하기도, 작은 테이블로 모여 작당을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문화예술계는 와르르 무너졌다. 생존의 위기는 이어지고, 사람 잃은 예술은 시대의 동요 속에 이리저리 휩쓸린다. 표정 있는 얼굴들의 이야기를 모아낼 자리가 절실하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놓칠 것 같다. 현실을 쫓고 정책을 쫓다가 정말 중요한 건 잃을 것이다. 최대한 여럿이, 최대한 긴 호흡으로 현장의 언어를 모아가야 할 때다. 우선은 이 시기에 ‘문화’가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문화’와 ‘예술’이 왜 합쳐져서 쓰이고 있는지부터 다시 묻고 정리하려 한다.”

 

심한기 대표에게 담론이란 “경험과 이론을 근거로 이 시대에 필요한 것들을 내세우는 목소리”다. 지금껏 담론은 연구자와 교수들이 형성해왔다. 자연히 경험보다는 이론에 비중이 실렸다. 문제는 언어의 차이였다. 경험과 이론의 언어 차이는 형용사와 명사만큼이나 컸다. 자잘하고 소중한 이야기는 도표 속에 정리되면서 잘려나갔다. 지지고 볶는 세월은 현장의 것인데 마침표는 다른 이가 찍는 셈이었다. 그 목소리가 정책에 깃들 리 만무했다.

 

그래서 숨은 현장의 담론을 만들어갈 작정이다. ‘왜’를 집요하게 파고들 심산이다. 그래야 시대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기점에서 ‘우리가 지금껏 무엇을 했는지, 왜 했고, 어떻게 했는지’를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을 터다. 시대적 변화와 요구 속에서 본질을 점검해야 다음 방향을 합의하고 정책으로 내밀 수 있는 언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동북4구의 활동가들이 모여 ‘담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 전국의 ‘마을, 문화예술, 교육’ 관련 활동가를 모으고 현장과 함께 언어를 구축해갈 연구자를 물색하고 있다.

 

전환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질문해야 할까. 자기 기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환대를 지나 기획 권력과 개별성으로, 담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자기 기록으로 회귀했다. 전환이 “이전 것을 고민하며 다음을 제대로 연결하는 것”이라면, 이전 것을 고민하기 위해 자기 기록을 들여다봐야 한다. 자기 기록이 유의미하려면 스스럼없는 질문과 정직한 성찰이 담겨야 한다. 그것을 준거로 다음을 이어가야 새로움 속에서 쓸려 다니지 않을 수 있다. 취할 것과 버릴 것, 시도할 것과 타협하지 않을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작업실에 돌아와 ‘작업일기’ 파일을 만들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새 습관 들이기가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심한기 대표가 마지막까지 얘기한 ‘공공의 아카이빙’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해마다, 이슈마다 변하는 활동의 겉모습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의 서사에 가깝다. 현실과 지향 사이의 비루한 고백, 자잘하지만 절절한 자기 의심, 그럼에도 계속해가는 별것 아닌 이유들의 들쭉날쭉한 서사. “객관적이기만 하면 피곤하고 주관적이기만 하면 헛헛하다”는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보이는 기록과 보이지 않는 기록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겠다.

 

< 출처 : 아르떼 365 >

:
Posted by sukji

 

▶“선생님은 미래를 어루만지는 직업이니까요!”

내일의 교육① 영화 〈교실 안의 야크〉 : arte365.kr/?p=84805

 

어떤 미래를 향한 교육인가 : 내일의 교육② 『미래·공생교육』 

 

나는 ‘미래’라는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미래교육’이라는 말 또한 그렇다. 미래라는 말이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다. 지금, 누가 미래를 말하고 이익을 보는가를 자세히 따져보지 않으면 공허한 미래주의에 현혹될 수 있다.

2016년 알파고 충격 이후 소위 4차 산업혁명 담론이 등장했지만, 결국 자본의 이익을 위한 공포 마케팅의 일종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제4부에 묘사된 생명공학, 사이보그, 인공지능을 비롯한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류의 기술-미래 담론은 역사학이 생물학 또는 미래학으로 변형되어 현실을 압박하는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미래·공생교육』 (김환희, 살림터, 2020) /  370.1 김96ㅁ  사회과학열람실(3층)

불신사회에서 공생사회로

우리가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어떤 미래인가?’이다. 김환희의 『미래·공생교육』은 미래를 말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공생(共生)’을 위한 미래교육에 방점을 더 찍고 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공생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책은 코로나19 시대 학교 교육을 성찰하며 서로를 돌보는 돌봄의 주체가 되어 공생교육을 하는 ‘마을교육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불신사회에서 공생사회로 진화하지 않으면 각자도생의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라는 점에서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공생교육인가. 저자는 시간-공간-타자-생태, 네 가지 영역에서의 공생교육이 지금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세대 간 공생(시간), 지역성에 기반을 둔 구체적 이웃을 대상으로 한 공생(공간), 과대해진 자아(Big Me) 넘어서기와 사랑과 고통을 통해 모름을 인정하기(타자), 다른 생명-비생명 종과의 공생 및 인간중심주의 끝내기(생태)를 위한 공생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생의 가치가 기생(寄生)으로 변질되어버린 교육 현실에서 ‘미래·공생교육’을 역설하는 저자의 주장이 의미 있는 것은 ‘코로나19’라는 재난의 현실 때문이다. 서로 불신하는 사회를 넘어 ‘생태적 전환’을 위한 공생교육을 준비하지 않으면 사회의 바탕이 무너지며 공멸할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나 또한 동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관계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은 김환희가 지금의 교육 문제를 다루는 기본 태도가 아닐까 한다.

 

모두 3부 9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1부 불신사회’이다. 개인의 자기관리 능력을 강조하는 ‘역량’(competency) 개념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아마티아 센과 마사 누스바움이 제안한 ‘역량’ (capability) 개념을 교육과정에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직 교사이자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교육운동가로서 우리 안의 능력주의(Meritocracy)와 2016년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자본주의와 안보정치에 포위된 학교 현장을 신랄히 비판하는 김환희의 붓끝은 매섭다. 예를 들어 매뉴얼과 절차가 유독 강조되며, 유례없는 안전 강박증을 앓는 학교 현장의 모습은 어느 교사의 말에서 잘 알 수 있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라면 하나도 못 끓이게 해. 라면에도 기름이 들어 있잖아.”(61쪽)

 

2부에서는 인지 자본주의, 노동의 미래, 디지털 리터러시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김환희는 ‘유토피아적 디스토피아’의 관점에서 노동의 미래를 진단하는가 하면, 최근의 코딩 교육 열풍은 새로운 산업의 필요에 의해 요구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고 기술 변화에 대해 19세기 러다이트(Luddite, 기계 파괴) 식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6장에서 해커스페이스(Hackerspace)와 핵듀케이션(Hackducation)을 학교 현장에 도입해 디지털 리터러시를 강화하는 공생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최근 학교 현장에 도입된 메이커교육 열풍에 대해, 대중을 ‘소비자 주체화’하는 또 하나의 잠재적 교육과정이 아닌지 의심하는 대목이다. 나 또한 ‘생각하는 손’(리처드 세넷)의 철학을 잃어버린 메이커 교육에 대해 그런 혐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환희가 생각하는 미래교육은 ‘언러닝’(Un-learning)과 ‘역설계’(RE:design) 그리고 교육농(農) 같은 가치를 통해 ‘자립의 주체’로 만들기 위한 핵듀케이션에 있다. 핵듀케이션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변형하며, 이를 위해 다른 사람과 자원과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하는 활동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학교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어린이·청소년 대상의 문화예술교육과 접목되는 것이 아닐까.

 

3부에서는 2부에서 제안한 미래교육이 학교 안과 밖 ‘마을교육공동체’에서 가능할 것임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김환희가 말하는 마을교육공동체의 의미는 한나 아렌트가 역설한 바 있는 작업(work)-노동(labor)-행위(action)의 연결망이 선순환하는 마을학습공동체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지나치게 학교 중심의 거버넌스에서 벗어나 탈학교 거버넌스 또는 상호융합적 관계가 요청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과 사회는 더욱더 분리될 것이다. 견고한 관료주의를 넘어서는 교육행정혁신 또한 강력히 요구된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최근 코로나19 이후 부상한 마을(문화예술)학교 담론을 비롯해 ‘돌봄전환사회’ 논의와도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나는 특히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마을교육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역설한 ‘예시적 정치’의 한 모습을 보게 된다.

 

자기와 타자를 배려하는 인간

문제는 누구나 예측하듯이 교육행정의 혁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교육부가 2020년 10월 5일 <코로나19 이후 미래교육 전환을 위한 10대 정책과제(안)>를 발표했지만, 공허한 미래주의 담론에 포획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10번 항목으로 ‘협력적 교육 거버넌스 구축’을 제시했지만, 실제 학교 현장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나 역시 “자원은 행정에서 지원하되, 그 결과는 교사, 학생, 주민 주도적인 성과를 내는 접근이 필요하다”(151쪽)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현실의 교육행정은 ‘하던 대로’의 덫에 빠져 특정한 경로의존성을 보여주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저자가 언급한 핀란드의 ‘참여실험실’, 영국과 호주 등의 ‘사회성과연계채권’처럼 정부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문제를 민간 주체와 함께 해결하려는 ‘공동생산’(co-product) 패러다임(156쪽)의 탑재가 교육행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미래·공생교육』은 9장 제목처럼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을까’를 진단하고 처방하려는 책이다. 학교 현장의 문제를 진단하고 성찰하는 김환희의 붓끝은 예리하며, 학교 안과 밖을 연결하며 마을교육공동체를 제안하려는 문제의식은 최근의 돌봄 찬(carefull) 전환사회의 문제의식과 깊이 잇닿아 있다.

 

돌봄이라는 개념을 일방향적 서비스가 아니라 모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역능(力能)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점은 결국 코로나19 이후 교육을 생각할 때 ‘어떤 인간’을 기르는 교육이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교육에도 해당할 것이다.

우리는 교사의 질은 ‘관계의 질’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하던 대로’의 관행에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책을 덮고 나니 ‘자기 배려’와 ‘타자 배려’라는 단어가 강하게 남는다.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고, 나는 타자를 어떻게 대하는가. 푸코가 개념화한 ‘자기 배려’에서 중요한 것은 위험을 감수하며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의미하는 ‘파르헤지아’(parresia)이다.

 

『미래·공생교육』은 코로나 이후 미래교육이 공생교육이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는 일종의 파르헤지아로 읽혀야 한다. 아쉬운 대목은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교육 현장을 탐방한 ‘부록’이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우리 문제를 잘 몰라서 교육 현장과 행정이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코로나19 시대 공허한 미래주의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를 생각하자. 나는 차라리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언자는 과거”라고 한 시인 바이런의 말을 더 신뢰한다.

 

『미래·공생교육』은 그러므로 ‘질문의 책’으로 읽혀야 한다. ‘전 국민 학습연구년제’를 비롯해 생태적 전환을 촉구하는 김환희의 질문 앞에서 나는,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하고 더불어 실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은 끝내 남는다. “돌봄과 생태라는 언어는 경제성장이라는 명령어를 대신할 수 있을까.”(175쪽)

 

< 출처 : 아르떼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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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진 주연 KBS드라마 (2018년) “당신의 하우스헬퍼” 원작자"승정연 웹툰 작가" 초청 강연 및 전시 안내

하석진 주연, KBS드라마 (2018년) “당신의 하우스헬퍼” 원작자 "승정연 웹툰 작가" 초청 강연이

대전 한밭도서관에서 있네요. 

2019년 우리 학교에서 강연을 하셨는데요.

제한된 좌석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던 학우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음주 수요일(14일) 이네요. 웹툰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꼭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19로 좌석이 제한되어 있으니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특강]

▶ 일시 : 2021년 04월 14일(수) 10:00~12:00

▶ 장소 : 한밭도서관 다목적홀

▶ 대상 : 대전시민

▶ 접수 : 2021년 4.6(화) 09:00부터 온라인 접수 (OK예약시스템)

    예약 URL : bit.ly/2PHDiR2

 

 

[전시]

이번 전시는 드라마에 방영된 ‘당신의 하우스 헬퍼’ 승정연 웹툰작가 작품 전시회를 준비했습니다.

따뜻한 감성을 지닌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나의 만능 하우스헬퍼는 누구일까?

한 번쯤 상상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전시명 : 「당신의 하우스 헬퍼」웹툰展

󰋯 내 용 : 당신의 하우스 헬퍼 원작 만화 50여점

󰋯 기 간 : 2021. 4. 1.(목) ~ 4. 28.(수) / 10:00-17:00

󰋯 장 소 : 1층 전시실

󰋯 협 조 : 웹툰작가 승정연

 

 

 

< 출처 : 대전 한밭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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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공간에서 홀로그램 회의를?'... 스페이셜로 보는 '메타버스'의 현주소

 

# 메타버스 관련 추천도서 : jisanlib2.tistory.com/952

 

전세계 10대들이 열광하는 ‘메타버스’, 너는 누구니?

전세계 10대들이 열광하는 ‘메타버스’, 너는 누구니? ​ # 방탄소년단은 작년 9월 26일 신곡 '다이너마이트'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포트나이트' 파티로얄 모드에서 최초 공개했다. ​# 조 바

jisanlib2.tistory.com

한국은행이 조사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택근무 확산: 쟁점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19 이전까지 유럽연합 28개국에서 조사한 재택근무 참여율은 전체 16.1%에 불과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대규모로 확산하기 시작한 시점에는 미국과 유럽의 근로자 약 절반 정도가 재택근무에 돌입하면서 경직된 업무 환경에 과감한 변화가 나타났다. 재택근무는 개인 입장에서는 건강과 유연 근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의 복원력과 유연성을 갖출 수 있다. BBC 조사에 따르면, 12%의 응답자만이 기존 사무실 근무로 복귀하길 희망했고, 72%는 기업 환경에 맞게 탄력적으로 근무하는 복합적인 근무 형태를 선호했다고 한다.

문제는 인프라와 의사소통이다. 기존에 재택근무가 정착하기 어려웠던 주된 이유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네트워크나 인프라가 사무실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19라는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사무실 근무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위한 솔루션을 도입함으로써 이 부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사소통은 얘기가 다르다. 지금까지는 사무실에서 마주 보고 대화하며, 회의를 통해 소통하는 것을 전제로 일을 해왔다. 하지만 재택근무는 대화 과정이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옮겨가면서 누락되고, 여기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술을 활용해 이 부분까지 극복하려는 조짐이 관측되고 있다.

스페이셜, ‘메타버스’로 업무 환경을 구성하다

 

스페이셜을 통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예시. 제공=페이스북

 

현재 시점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업무상 소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협업툴이다. 협업툴은 1:1 방식의 대화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플랫폼이므로 의사소통이 보다 쉽게 이뤄진다. 하지만 협업툴 역시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효율적으로 개선한 형태이므로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다. 개인의 제스처나 행동, 목소리 톤 등 일상 대화가 주는 미묘한 느낌까지 파악할 수는 없다.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 AR(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기반의 소프트웨어 기업, 스페이셜(Spatial)이 집중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스페이셜에 로그인 한 메인 화면. 출처=IT동아

 

스페이셜은 미국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이자 VR 애플리케이션의 이름이다. 스페이셜은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퀘스트나 MS 홀로렌즈를 비롯해 매직 리프, 엔리얼, PC용 VR기기를 폭넓게 지원하며, VR기기가 없더라도 웹, 안드로이드, iOS를 통해 이용할 수 있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처음 서비스를 실행하고 나면, 셀카 한 장을 머신러닝으로 처리해 본인의 얼굴을 본뜬 3D 아바타를 생성한다. 가상 현실이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상대방을 식별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다음 VR기기를 연동하거나, 컴퓨터를 통해 회의를 개설하고 참여할 수 있다.

 

3D 렌더링을 허공에서 공유하거나, 작업 내역 등을 홀로그램으로 주고받는다. 출처=IT동아

 

스페이셜을 통해 제공되는 공간에서는 기존에 재택·원격 근무에 필요했던 의사소통이나 작업 공유는 기본이고, 웹브라우저나 검색, 그림 및 메모, 스크린 공유와 함께 슬랙, 피그마, 구글 드라이브, 마이크로소프트 365 등 외부 앱도 연동된다. 또한, 3D 렌더링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2D, 3D 디자인 공유 등 일반적인 대면 작업으로도 어려운 일들을 화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단순한 아바타 기반 VR 채팅보다는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3D 홀로그램 회의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스페이셜로 진행된 페이스북 기자간담회, 페이스북이 VR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것은 이번 간담회가 최초다. 제공=페이스북

 

직접 회의에 참여해본 느낌은 화상 회의를 넘어서, 대면 회의에 조금 더 다가선 느낌이다. 기존 메신저나 화상회의에서는 전달되지 않았던 손짓이나 행동까지 반영되므로 몰입감이 상당하고, 영상 녹화나 저장도 손쉽게 이뤄진다. 사진이나 영상, 문서 등은 원하는 크기에 원하는 위치로 공유할 수 있어 시청각 자료에 한해서는 대면 회의보다 효율이 뛰어나다. 스페이셜은 현재 마텔, 네슬레, 포드, 화이자 등 유명 기업들을 중심으로 화상회의나 재택근무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네트워크만 연결돼있다면 국경과 시간을 뛰어넘어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영향을 미친다.

VR은 과도기, AR 등에 업고 메타버스 온다

지난해 스페이셜은 코로나 19로 협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용자들을 위해 한시적으로 서비스를 무료화했다. 이때 스페이셜의 이용량은 10배 이상 증가했고, VR 기기를 활용한 협업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탄생하게 됐다. 그런데 스페이셜의 사용자 확대는 코로나 19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VR·AR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메타버스’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란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으로 구성된 가상의 현실을 뜻한다. 메타버스는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종래보다 한 차원 높은 경험을 제공하는데, 스페이셜의 가상 회의가 바로 메타버스를 화상회의, 재택 근무와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다.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퀘스트 2. 출처=IT동아

 

아울러 VR 기기를 넘어선 AR기기의 등장은 더 큰 전환점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는 작년 11월에 AR 컴퓨터인 홀로렌즈 2를 공개했고, 구글도 1억 8천만 달러에 스마트 글래스 기업 노스(North)를 인수해 구글 글래스에 재도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페이스북 역시 선글라스 제조사인 레이밴(Ray-Ban)과 손을 잡고 올 하반기 AR 글래스를 선보이며, 삼성전자와 애플 역시 AR 글래스를 출시할 가능성이 있다. AR 기기가 지금의 VR기기처럼 등장하게 된다면, VR 기기의 한계인 현실에서의 작업이 보완되기 때문에 지금의 VR 시장보다 훨씬 더 성장할 잠재력이 크다.

초창기의 VR 기기는 엔터테인먼트, 게임쪽 분야에 집중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시작된 비대면, 비접촉 사회는 VR·AR을 보다 일상적이면서도 가보지 않은 길로 이끌고 있다. VR·AR 시장이 확장할수록,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 출처 : 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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