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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소풍’.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뇌졸중 후유증으로 고통받다가 안락사를 선택하는 아버지(‘다 잘된 거야’), 정신을 통제할 힘마저 잃어가는 아버지를 보는 자식의 참담함(‘어느 멋진 아침’) 등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다룬 영화가 늘어나고 있다. 7일 나란히 개봉하는 ‘소풍’과 ‘플랜 75’는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한국과 일본에서 이 주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보여준다.

노인 버전의 ‘델마와 루이스’라고 부를 만한 강렬한 엔딩이 인상적인 ‘소풍’은 노년을 다룬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팔순을 바라보는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사돈 사이다. 은심이 일찍 남편을 여의고 애지중지 키운 외아들(류승수)은 잇단 사업 실패 끝에 하나 남은 집문서마저 달라며 매달린다. 은심은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금순을 따라 고향에 내려가 동창 태호(박근형)도 만나고 평온을 되찾는 듯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허들을 만난다.

 

은심과 금순, 태호는 사정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마음속 돌덩이 같은 자식 문제를 안고 있다. 어려움을 겪는 자식에게 자신의 병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처지다. 자식에 대한 책임감과 짐이 되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을 그리면서도 ‘소풍’은 모성애나 부성애로 미화하지 않는다. 또 노년의 작은 위안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육체의 쇠락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소풍’은 통제를 벗어난 육체와 의지하기 힘든 가족, 요양원에서 맞이하는 생의 마지막 등 한국 사회에서 노년 앞에 겹겹이 쌓인 벽과 막막한 심정을 풀어낸다. 영화 속 차가운 현실의 온도를 끌어올리는 건 연기 경력 도합 200년에 이르는 김영옥, 나문희, 박근형 등 명배우들의 애틋한 연기다.

 

                                                                             영화 ‘플랜 75’. 찬란 제공

 

 

2022년 칸영화제에 초청돼 신인 감독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 특별언급’을 받은 일본 영화 ‘플랜 75’의 질문은 ‘소풍’보다 더 도발적이다. 65살 이상 인구가 전체의 30%에 다다른 초고령사회인 일본. 근미래에 75살 이상의 노인이 죽음을 선택하면 국가가 안락사를 지원하는 ‘플랜 75’가 실행된다. 플랜 75 정책이 실시되면 국가 재정이 회복된다는 뉴스가 연일 나오고, 함께 호텔 메이드로 일하던 동료가 다치자 나이 든 직원들이 한꺼번에 잘리며 생계가 막막해진 미치(바이쇼 지에코)는 플랜 75 상담 신청을 한다.

 

‘플랜 75’의 설정은 황당하면서도 현실적이다. 한국에서도 초고령사회를 예측하며 언급되는 내용은 건강보험 등 재정 부담이 대부분이다. 제목에 75가 들어간 건 일본에서 75살은 후기 고령의 기준이 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한겨레와 만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20년 전 일본 정부가 75살 이상을 후기 고령자로 명명하기 시작했을 때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는다. 플랜 75라는 황당한 정책이 만약 현실이 된다면 처음엔 반대의 목소리가 있겠지만 이 역시 금방 수용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야카와 감독은 작품을 준비하며 고령 여성을 10여명 심층 인터뷰했는데 이들 모두 영화 속 정책을 현실에서도 찬성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일본은 타인이나 사회에 폐를 끼치는 걸 극도로 혐오하는 사회다. 또 자기희생을 사회에 대한 기여처럼 생각하기도 한다”며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건 사회의 폭력”이라고 말했다. 안락사 여론조사에서 찬성 이유로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어떻게 생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두 영화의 결말은, 선택의 문제와 관련해 사회가 더 많은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남긴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
Posted by sukji

 

 

 

 

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 김인정

302.5 김69ㄱ  사회과학열람실(3층)

 

 

책 소개

 

수전 손택 이후 20년,
‘지금 이 시대의 고통’을 다루는 저널리스트, 김인정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뼈아픈 질문
“우리는 너무 손쉽게, 너무 많은 죽음을 본다”

 
 

2023년 8월, ‘칼부림’, ‘살인 예고’, ‘무차별 범죄’와 같은 키워드가 뉴스를 뒤덮었고, 충격적인 현장을 담은 영상과 이미지가 끝없이 유포되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의 이미지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목격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와 범죄를 실시간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출퇴근길 지하철도 두렵다고 호소하고, 작은 소동을 흉기 난동으로 오인하여 대피하다 부상을 입기도 했다.


뉴스와 소셜미디어가 합세해 지금 전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생중계하는 시대, 전 세계를 연결하는 저널리스트 김인정은 수전 손택 이후 20년 ‘타인의 고통’을 다시 시대적 화두로 가져온다. 이제 타인의 고통은 단순히 연민과 대상화를 넘어 더 많은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을 위해 경쟁하는 ‘고자극 콘텐츠’가 되었다. 너무 많은 죽음을 지켜보는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 죄책감과 무력감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스마트폰이 희생자가 심폐소생술을 받는 모습을 담을 때, CCTV 화면이 범죄자가 흉기를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드론 카메라가 지하차도에 시내버스가 잠겨 있는 모습을 비출 때. 이러한 장면들의 효용은 무엇일까? 고통을 보는 일은 그저 사회적으로 불안감과 공포심을 가중하며, 전 국민을 트라우마에 빠지게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고통을 구경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아닌, 목격한 뒤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저자는 국내 재해 현장과 홍콩 시위 한복판, 광주 평화광장과 캘리포니아주의 마약 거리를 종횡무진하며 고통을 변화의 시작점으로 만드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함께 뒷이야기를 씀으로써 변화를 만들어내는 ‘공적 애도’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의 ‘응시’는 어떻게 변화의 동력이 되는가. 이 책과 함께, 연민과 공감, 대상화라는 한계를 끌어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차근차근 모색할 수 있다.

 

 

 출판사 서평

 
 

“우리는 이색적인 죽음에만 즉각 반응한다”
‘고통의 포르노’를 넘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고통의 균형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통 중 뉴스의 거름망을 통과하여 우리가 보게 되는 고통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극적이며, 이색적인 고통이라는 것이다.
2022년 SPC 제빵 노동자 끼임 사고는 산업재해로서는 이례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다. 많은 기사가, 노동자가 소스를 배합하는 과정에서 기계에 어떻게 끼었는지, 죽음의 순간을 생생히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했다. 자극적인 묘사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훼손된 신체로 충격을 주고 나서야 대중이 반응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보이는 고통’만 주목받는 사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보여줄 수 없는 고통’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끼임 사고로 신체가 절단되는 일뿐만 아니라, 고압 전류를 다루는 전기원들이 연달아 백혈병에 걸리는 일에도 관심을 둔다. 꼭 ‘스펙터클한’ 고통만 보여줄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흔한 고통이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 패러독스 속에서, 저자는 잘 보이지 않는 고통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이는 위계를 부여하여 기우뚱해진 고통의 저울에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홀로 고치다 숨진 김 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석탄 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하루에 6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_p.100

“고통은 어떻게 드라마가 되는가”
뉴스는 하지 못하고, 넷플릭스는 해낸 것

2023년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나는 신이다〉가 불러일으킨 반향은 엄청났다. 대중의 이례적인 공분에 검찰총장까지 나섰고, 대규모 로펌의 변호인단이 전원 사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11년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는 자칫 묻힐 뻔한 인화학교 성폭력 사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딱딱한 뉴스를 생생한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했다는 것, 그럼으로써 뉴스가 만들어내지 못한 변화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뉴스에 등을 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한 콘텐츠가 현란한 화면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지금, 건조하게 사실을 전달하는 뉴스에 마음을 포개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뉴스의 위기를 직면하며, 저자는 “뉴스는 세상의 수수께끼들을 보여주지만, 모든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 불완전한 매체”임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뉴스는 보는 것에서 끝나는 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기자와 시청자가 함께 뉴스를 완성해 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 책을 읽은 김지수 기자는 “단죄하거나 단정하지 않는 저널리스트가 있는 사회는 희망이 있다”고 했다. 1장에서 고통을 소비하는 세태를 진단한 저자는, 2장에서는 사회가 납작하게 대상화하는 고통의 맥락을 복원한다. 3장에서는 나의 타임라인에서 소외된 낯선 고통의 모습을 발견하고, 마지막 4장에서는 모든 이야기를 변화로 꿰어낼 공적 애도의 자세를 제안한다. 공동체가 뉴스의 뒷이야기를 써 내려가도록 독려하는 이 구성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선연한 지도가 된다.

‘나일 수 있었다’는 무책임한 말들,
알고리즘과 구독에 갇힌 타임라인을 빠져나와 세계와 접속하는 법

“그들은 우리와 너무나도 닮았다”. 2022년 다니엘 해넌 전 영국 보수당 의원이 우크라이나인들을 일컬어 한 발언은 국제적인 논란을 즉시 불러일으켰다. 선의에서 비롯되었을지언정, 순식간에 유럽 바깥에서는 생명이 위협받는 것을 당연한 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떳떳한가. 홍콩 시위 때 많은 매체가 우리가 자주 가는 관광지이며 좋아하는 영화의 촬영지였다는 등의 수식을 더했다. 참사와 재해를 전하는 뉴스에서 “나일 수 있었다”는 경구는 클리셰처럼 등장한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고통을 마주했던 저자는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 뉴스의 소비가 극도로 개인화된 시대, 우리가 다른 집단과 사회, 지구 공동체를 감각하는 능력을 상실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극도로 편향된 필터 버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공감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나와 연관되지 않은 일 역시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의 테두리를 빠져나와 더 큰 ‘우리’의 세계를 생각하는 길을 알려준다. 이는 나의 가시권 안에 한정된 연민으로 흐트러진 고통의 질서를 복원하고, 좁은 타임라인에서 빠져나와 더 넓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죽음은 애도할 만한가”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에 빚지고 있다

“슬픔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노력을 무력화하는 익숙한 경구는 늘 애도를 사적인 영역으로 밀어넣는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 우리에게는 ‘공적 애도’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최악의 고통과 끔찍한 상실을 겪어낸 뒤, 사건을 공론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중 앞에 고통을 꺼내든 사람은 취약해진다. 그들을 ‘감정적’이며 ‘비이성적’이라고 비난하고,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며 힐난하기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부정과 분노를 이겨내고, 트라우마를 반복 재생하면서까지 고통을 들고 일어선 이들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이름의 다른 고통을 막을 수 있는 길을 가리킨다. 상실과 슬픔, 우울과 기억의 혼돈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자 하는 그들을 위해, 우리는 성실하게 슬퍼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무엇을 잃었는지 사유하고 고쳐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파편으로 남겨진 외로운 사적 애도를 위해, ‘왜’, ‘무엇을’, ‘어떻게’를 이야기 속에 채워주어야 한다. 이때 애도가 정치로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에 빚지고 있다. 어떠한 죽음과 상실은 사회의 결핍을 가시화된 기호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공동체가 슬퍼하기로 한 죽음은, 그들이 욕망하는 사회의 모습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타인의 고통뿐만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미래를 향해 있다. 무엇을 애도하는 사회인가. 이 죽음은 애도할 만한가.

 

 

목차

 

추천의 글

들어가며: 고통을 보여주는 일

1장. 새롭고 특별한 고통이 여기 있습니다

좋아요와 리트윗, 그 이상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뉴스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것

2장.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날씨는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거짓말
재해는 어떻게 문화가 되었는가
아픔이 혐오가 될 때
빈곤 포르노를 넘어, 개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의 책임
어떤 이야기는 이름을 갖지 못한다

3장. 나와 닮지 않은 이들의 아픔

우리가 알고리즘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
트리거 워닝: 눈길을 사로잡거나 돌리게 하거나
고통의 현지화가 필요할 때
지역에서 유독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
만들어진 전쟁, 젠더 갈등

4장. 세계의 뒷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그저 뉴스거리로 끝나는 많은 일들
연민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해도
언어, 계급, 인종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언어
사적 애도를 위한 공적 애도

나가며: 영원히 움직이는 텍스트
참고한 책들

 

 

< 내용 출처 : 교보문고 > 

:
Posted by sukji

 

 

 

각자도사 사회 : 존엄한 죽음을 가로막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성찰하다 / 송병기

306.9 송44ㄱ  사회과학열람실(3층)

 

책 소개

 

“존엄한 돌봄과 임종을 희망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운이 좋아야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도생, 각자도사한다”
의료인류학자 송병기가 한국 사회
생애 말기와 죽음의 현실에 대해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

의료인류학자 송병기가 터부와 혐오를 넘어 우리의 일상과 공동체를 ‘죽음’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본다. 노화·돌봄·죽음을 연구하는 의료인류학자로 생애 말기 현장 연구를 해온 저자는 『각자도사 사회』에서 집, 노인 돌봄, 호스피스, 콧줄, 말기 의료결정에 이르기까지 생애 말기와 죽음의 경로를 추적한다. 나아가 무연고자, 현충원, 웰다잉 등의 키워드에 질문하며 죽음을 둘러싼 국가와 개인의 관계, 관련 정책, 불평등 문제를 보여준다.

저자는 집부터 호스피스에 이르기까지, 생애 말기 우리가 거치게 되는 장소와 의료 과정을 보여주고 죽어가고, 돌봄을 받고 돌봄을 행하고, 고통받고 고립되기도 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열악한 주거 환경 속 사회적 자본이 빈약한 노인에게는 집에서 죽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모든 인간은 의존적인데 왜 노인만 의존적인 존재처럼 딱지를 붙이는지, 정부의 정책은 노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보다 취약한 삶에 ‘적응’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환자의 상태와 삶의 질을 ‘충분하게’ 향상시키지 않고 수명만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연명의료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아니라, ‘언제까지’ 살다 죽게 할 것인지 합의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생애말기와 안락사 논쟁의 장까지 이끈다.

 

출판사 서평

 

“존엄한 돌봄과 임종을 희망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운이 좋아야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도생, 각자도사한다”

의료인류학자 송병기가 한국 사회
생애 말기와 죽음의 현실에 대해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

- 집은 좋은 죽음을 보장하는 장소인가?
- 노인은 국가의 짐인가?
- 왜 호스피스는 ‘임종 처리’ 기관이 되었나?
- 콧줄 단 채 생의 마지막을 맞아야 할까?
- 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 할까?

의료인류학자 송병기가 터부와 혐오를 넘어 우리의 일상과 공동체를 ‘죽음’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본다. 노화·돌봄·죽음을 연구하는 의료인류학자로 생애 말기 현장 연구를 해온 저자는 《각자도사 사회》에서 집, 노인 돌봄, 호스피스, 콧줄, 말기 의료결정에 이르기까지 생애 말기와 죽음의 경로를 추적한다. 나아가 무연고자, 현충원, 웰다잉 등의 키워드에 질문하며 죽음을 둘러싼 국가와 개인의 관계, 관련 정책, 불평등 문제를 보여준다.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는 주사위 놀이 같다
인류학은 다른 사회과학과 달리, 연구자가 연구의 대상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사는 ‘현장’에 들어가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해석하는 방법론을 사용한다. 프랑스·모로코·일본에서 의료 현장 연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저자는 한국 요양시설과 병원, 노인 현실을 마주하며 죽음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과 관점들을 만나게 되었다. 모두 죽음에 관심이 많았지만, 모두 각자 알아서 죽음에 맞서고 있었다.
예컨대 생애 말기 돌봄 경험은 보호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들은 노부모를 돌볼 때 무엇을 참고하고 믿고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문제를 ‘알아서’ 했다. 친족 자원을 동원하고 사보험의 도움을 받고 소문과 인터넷 정보를 참고하면서 노부모를 집에서, 응급실에서, 대학병원에서,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에는 요양원에서 돌보고 있었다.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집이 아닌 요양원에 모셨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 요양원 노인은 “더러운 꼴 안 보고 깔끔하게 죽고 싶다”며 눈물을 보였다. 어떤 요양보호사는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도 모르게 노인을 학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요양병원에서 수년째 어머니의 간병을 하던 아들 내외는 “고령화 시대에 안락사 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책을 쓰게 된 저자의 문제 의식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는 책 서두에서 한국 사회에서 존엄한 노년과 죽음은 돈이 많거나 운이 좋은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는 마치 주사위 놀이 같다. 먼저 ‘보이지 않는 손’이 노화, 질병, 돌봄, 죽음을 새긴 주사위를 던진다. 그 결과는 ‘우연히’ 누군가의 일상에 들이닥친다. 각자 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또 다른 주사위를 던진다. ‘행운’을 기대하면서 던지는 주사위다.”

언제부터 죽음이 개인 능력과 운에 달린 문제가 되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최대한 천천히 늙기를, 덜 아프기를, 깔끔하게 죽기를, 착하고 경제력 갖춘 가족이 나를 돌보기를, 다정하고 친절한 의료진을 만날 수 있기를, 말 잘 통하고 헌신적인 간병인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주사위 던지기의 결과가 나쁘거나, 더 이상 던질 주사위가 없다면 어떻게 할까? 언제부터 죽음은 개인 능력과 운에 달린 문제가 되었을까? 우리의 삶과 죽음이 주사위 던지기와 다름없다면 그건 좋은 사회일까? 얼핏 보기에 이 주사위 놀이는 평등한 것 같지만 사실은 불평등한 전제를 깔고 있다. 불평등한 삶이다.

 

저자는 집부터 호스피스에 이르기까지, 생애 말기 우리가 거치게 되는 장소와 의료 과정을 보여주고 죽어가고, 돌봄을 받고 돌봄을 행하고, 고통받고 고립되기도 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열악한 주거 환경 속 사회적 자본이 빈약한 노인에게는 집에서 죽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모든 인간은 의존적인데 왜 노인만 의존적인 존재처럼 딱지를 붙이는지, 정부의 정책은 노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보다 취약한 삶에 ‘적응’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환자의 상태와 삶의 질을 ‘충분하게’ 향상시키지 않고 수명만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연명의료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아니라, ‘언제까지’ 살다 죽게 할 것인지 합의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생애말기와 안락사 논쟁의 장까지 이끈다.

죽음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전환하는 상상력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죽음은 의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죽음은 개인적인 일인 동시에 내가 사는 일상,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며,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이야기로 국한할 문제도 아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누구에게나 충분한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과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언론 보도에 등장하는 명의, 신약, 의료 기술, 자기계발 담론에 귀 기울이는 만큼 왜 사람들이 일하다가 죽고, 가난해서 죽고, 학대로 죽고, 고립으로 죽고, 차별로 죽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사건 사고’가 어떻게 나의 노화, 질병, 돌봄, 죽음과 연결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전환해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보편적이고 존엄한 죽음을 상상하다
책 전반부에서 생애 말기 각자도생하고 각자도사하는 현실을 분석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밝힌다면 후반부에서 저자는 우리 곁에 있지만 의식하지 않았던 ‘죽음’의 키워드들을 하나씩 꺼내 죽음에 대한 당연하지 않은 질문들을 던진다.
일상의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의례가 될 수는 없을까 제사에 관해 묻고, 생전 갈 데 없는 삶과 사후에도 갈 곳 없는 사람들인 무연고자의 죽음을 추적하고 애도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국가가 나서서 기억하려는 ‘공적인’ 죽음은 무엇인지, 그게 아닌 죽음은 어떻게 지워지는지 현충원의 사례를 들어 질문하고,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빚어진 죽음에 대한 관심과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에 대한 무관심을 대비해 보여주기도 한다.

“정부의 방역은 ‘평등한’ 생명과 죽음을 선험적으로 전제하고 있지만, 오히려 현존하는 ‘불평등’한 생명과 죽음을 가리고 더 악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죽음에 호들갑을 떨고, 다른 쪽에서는 죽음에 침묵하는 이 양극적 현실이 불평등한 삶의 조건과 사회의 생산방식, 그 해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죽음을 이해하는 일은 삶을 이해하는 일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일부다. 죽음을 이해하는 일은 삶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죽음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지금,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죽음과 삶, 질병과 노화, 돌봄의 윤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존엄한 죽음은 어느 장소에만 있는 것도,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존엄한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는 과정에, 그리고 두툼한 생각으로 채워진 해답지를 만드는 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목차

 

들어가며


1부 각자 알아서 살고, 각자 알아서 죽는 사회
1 집 - 집은 좋은 죽음을 보장하는 장소인가
2 노인 돌봄 - 노인은 국가의 짐인가
3 커뮤니티 케어 -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정책
4 호스피스 - 왜 호스피스는 ‘임종 처리’ 기관이 되었나
5 콧줄 - 콧줄 단 채 생의 마지막을 맞아야 하는가
6 말기 의료결정 -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까
7 안락사 - 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 할까

2부 보편적이고 존엄한 죽음을 상상하다
8 제사 - 죽은 이를 기억하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을까
9 무연고자 - 갈 데 없는 삶과 법으로 처리되는 죽음
10 현충원 - 그곳에 ‘보통 사람들’은 없다
11 코로나19 -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말은 무엇일까
12 웰다잉 -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 감추는 것들
13 냉동 인간 - 초인간적인 미래, 비인간적인 현실
14 영화관 - 함께 죽음을 보면서 삶을 실감하는 곳

 

< 내용 출처 : 교보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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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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