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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겨레 선정 올해의 책-번역서] 성찰하는 말들, 회복해야 할 가치 

 

전염병 탓에 통째로 소거된 듯한 2020년. 그래도 우리는 살아갔고 사랑했고 슬퍼했고 분노했다. 사회 부조리와 모순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며, 굳어 움직이지 않는 현실에 끊임없이 작은 돌멩이를 던졌다. 그렇게 우리는 가까스로 한 걸음을 나아갔다. <한겨레> ‘책&생각’은 2020년과 작별하며 ‘올해의 책’을 국내서와 번역서 각 10권씩 꼽았다. ‘책&생각’ 필진와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책지성팀이 선정했다. 추천작 전체는 <한겨레> 누리집 ‘책&생각’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책 순서는 가나다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 함규진 역 / 와이즈베리 / 306.0973 S214tKㅎ  사회과학열람실(3층)

 

‘정의’에 대해 묻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질문을 더 뾰족하게 가다듬었다.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이 질문이 한국 사회의 폐부를 찔렀는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샌델은 능력주의가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절망을 주는 방식으로 쌍방향 폭정을 저지르며 공동체를 황폐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또 능력주의의 이상은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다며,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체제라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간다. 샌델은 트럼프가 아니라 민주당을 비판한다. 트럼프의 당선은 패자의 절망과 모욕감을 정확히 읽어낸 “합당한 결과”이며, 민주당은 이 점을 놓쳤다는 것이다. 교육·정치·종교·철학을 넘나드는 유려한 논증이 여러 생각 거리를 건넨다.

 

민족이 근대에 탄생했다고?

민족 / 아자 가트·알렉산더 야콥슨 , 유나영 역  / 교유서가  / 320.54 G258nKㅇ  사회과학열람실(3층)

 

민족과 민족주의가 언제 탄생했느냐는 1980년대 이후 역사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다. 민족이 유구한 전통을 지닌 것이라는 ‘전통주의’ 시각은 민족이 정치적·경제적 근대화의 산물이었다는 ‘근대주의’ 시각의 공격을 받고 역사의 퇴물 취급을 받았다. 아자 가트와 알렉산더 야콥슨이 쓴 <민족>은 근대주의에 대한 전통주의 반격의 종합판이라고 할 만한 저작이다. 이 책은 인류사 전체를 아우르며 민족이라는 실체가 형성돼 변모해 온 과정을 거시적 관점에서 상술한다. 특히 근대주의 역사학자들이 ‘유럽중심주의’ 오류를 저질렀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민족’은 국가가 탄생하는 역사의 초기 단계에 이미 형성돼 정치적으로 커다란 힘을 발휘한 것으로 나타난다.

 

 

남성 편향적 데이터가 여성을 지운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 /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 황가한 역 / 웅진지식하우스 / 305.420721 P438iKㅎ 

사회과학열람실(3층)

 

‘젠더 데이터 공백’이라는 개념을 제시해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시화했다.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남성을 ‘기본값’(디폴트)으로 설정하면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데이터 공백’이 발생하며, 이는 여성에게 적게는 불이익, 심하면 생명의 위협까지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자동차 충돌시험에서 주로 177㎝, 76㎏인 표준 남성 체격의 인형(더미)을 사용하는데, 여성은 이보다 작고 가볍기 때문에 실제 교통사고가 났을 때 남성보다 더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 중립적으로 ‘보이는’ 매끈한 제도 속에서 차별을 느낄 때 읽으면 흐릿하던 차별의 실체가 마치 새로 맞춘 안경을 쓴 것처럼 한결 또렷하게 다가올 것이다.

 

 

‘극우 예언가’ 우엘벡의 냉소와 혐오

세로토닌 / 미셸 우엘벡, 장소미  역 / 문학동네 / 843.914 H837sKㅈ  인문과학열람실(3층)

 

‘극우의 예언가’로 불리는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의 최신작. 2018년 11월 노동자들이 벌인 유혈 시위 ‘노란 조끼 운동’을 예언했다고 해서 또 다시 화제가 되었다. 주인공인 사십대 중반 남성 플로랑은 노르망디에서 목축을 하는 농업대학 동창 에메릭을 찾아간다. 유럽연합의 우유 쿼터제 포기로 타격을 입은 에메릭은 아내마저 떠나자 유혈 시위를 벌이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은 항우울제 복용으로 성기능 장애를 겪는 플로랑이 과거에 사귀었던 여성들을 다시 만나는 과정을 통해 그려지는 그의 성생활 흥망사다. 타인과 외부 세계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냉소와 혐오로 일관하는 지극히 우엘벡적인 인물 플로랑의 독설을 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른들의 거짓, 소녀의 각성

어른들의 거짓된 삶 / 엘레나 페란테 , 김지우 역 / 한길사 / 853.92 F373vKㄱ  인문과학열람실(3층)

 

세계적 베스트셀러 ‘나폴리 4부작’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가 그로부터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로 이루어진 나폴리 4부작이 서민층 주거 지역인 ‘아랫동네’의 두 소녀 레누와 릴라의 60여 년에 걸친 우정과 갈등의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은 중산층 거주지 ‘윗동네’의 십대 소녀 조반나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책 표지에 묘사된 바, 식탁 밑에서 몰래 뒤엉킨 아빠 친구와 엄마의 다리는 조반나로 하여금 환멸과 반항을 거쳐 각성과 성장으로 나아가게 하는 촉매가 된다. ‘나폴리 4부작’의 주요 인물을 연상시키는 빅토리아 고모를 비롯해, 전작과 비교해 가며 읽을 만한 포인트들도 여럿 있다.

 

문학과 페미니즘이 선사한 새로운 언어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 에이드리언 리치, 이주혜  역 / 바다출판사 / 824.914 R498eKㅇ 

인문과학열람실(3층)                             

 

미국 시인이자 페미니스트 이론가 에이드리언 리치(1929~2012)의 산문집이다. 1951년 시집 <세상 바꾸기>를 펴내고 데뷔한 그는 <공통 언어를 향한 꿈>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등 여성 인권,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1966년부터 2006년까지 쓴 산문을 모은 이 책에는 시를 쓰면서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공간”을 만드는 과정과 주목받지 못한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 자신이 세운 레즈비언 페미니즘 이론 등을 담았다. 문학과 페미니즘을 삶의 중심에 두고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언어를, 나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 나섰던 그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다.

 

 

‘브라만 좌파―상인 우파’ 불평등체제 혁파하라

자본과 이데올로기 / 토마 피케티, 안준범 역 / 문학동네 / 332.041 P636cKㅇ  사회과학열람실(3층)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21세기 자본>으로 세계 경제학계의 총아로 떠오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최근작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시야를 경제 영역을 넘어 정치 영역으로 확대해 경제적 불평등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의 힘에 주목한다. 이와 함께 이 책은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의 정치적 연합을 불평등 구조가 공고해지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이 커지는 데 정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 정치에서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 체제가 가동됐다는 것이다. 전작에서 경제적 불평등의 지속적 심화를 실증했던 지은이는 이번 책에서 극단적 불평등 구조를 혁파하는 방안으로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라는 더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감염병과 거대 농축산업의 연결고리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 롭 월러스, 구정은·이지선 역 / 너머북스 / 614.518 W193bKㄱ 자연과학열람실(4층)

 

코로나19 팬데믹의 근본 원인은 뭘까.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감염병 추적 연구를 한 진화생물학자 롭 월러스는 “거대 농축산업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감염병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거대 농축산기업이 농장을 지으려고 숲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숨은 병원균이 세상 밖으로 나와, 농축산기업의 유통망을 따라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그는 단순히 백신 개발로 팬데믹을 잠재우는 일시적 방법이 아니라 생활양식의 근간을 바꾸는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구조적 원헬스’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인간과 동물, 생태계의 공존을 추구하는 ‘원헬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문제, 생태계를 위협하는 사회문화 인프라 등을 개혁하자는 것이다.

 

 

혐오와 차별의 뿌리 파헤치기

편견 / 고든 올포트, 석기용 역 / 교양인 / 303.385 A441nKㅅ 사회과학열람실(3층)

 

<편견>은 1954년 초판이 출간된 사회심리학의 고전이다. 한국어판으로는 올해 처음으로 완역됐다. 이 책은 인간이 가진 ‘편견’을 파헤친다. 편견의 두 가지 기본 요소는 ‘잘못된 일반화’와 ‘적개심’이다. 편견은 차별로 현실화한다.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 여성을 향한 2차 가해, 거대 권력에 맞선 이들에게 쏟아지는 비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등을 보라. 책에서 생존을 위한 피해자의 자기 방어를 설명하는 부분은 매우 비극적이다. “내가 죽을 운명의 무언가를 앞에 두고 웃는다면 그것은 내가 울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바이런의 시구가 인용된다. 해법은? “악순환을 깨는 능력”이 있는 입법을, 지은이는 강조한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다.김진철 기자

 

 

영성으로 회복해야 할, 인류 살릴 지혜

향모를 땋으며 / 로빈 월 키머러, 노승영 역 / 에이도스 / 305.897 K49bKㄴ 사회과학열람실(3층)

 

‘향모’(윙가슈크)는 아로마 허브의 일종으로 머리를 땋듯 땋아 선물이나 제의에 쓴다. 이 향모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에게 “어머니 대지님의 하늘거리는 머리카락”이다. 어머니 대지님 외에도 안개, 개울, 물고기, 곡물, 나무, 독수리, 달님 등이 부족들에겐 감사의 대상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포타와토미족 출신의 식물학자인 로빈 월 키머러는 이런 토착적 세계관에 과학적 훈련을 보태 새 지식을 창출해낸다. 이 책은 과학서이면서 신화, 역사, 문화가 등장하고 경제서이기도 하다. 아우르자면 생태·영성·철학으로 가득한 에세이다. 인류의 영성을 복원해 기후위기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세상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저자의 생각은, 오늘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김진철 기자

 

<한겨레> ‘책&생각’이 ‘올해의 책’을 선정하며, 가장 아쉬웠던 작품은 두 편이다. 고공농성 노동자에서 시작해 1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서사를 담아낸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창비), 구순의 어머니를 돌아가시기 전까지 간병하며 적어나간 박희병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엄마의 마지막 말들>(창비)이다. 올해 유독 창비에서 좋은 책이 많이 나왔지만 출판사 편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김영옥 등, 봄날의책) <죽은 자의 집 청소>(김영사)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강성현, 푸른역사) <진리의 발견>(마리아 포포바, 다른) <타인에 대한 연민>(마사 누스바움, RHK) <팬데믹 패닉>(슬라보예 지젝, 북하우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호프 자런, 김영사) <정치적 부족주의>(에이미 추아, 부키)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주디스 버틀러, 창비)도 아깝게 선정되지 못했다. ‘전태일 공동 프로젝트’로 출간된 책 10권 중 한 권만 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역사에 남을 위대한 기획이었음을 여기 기록해둔다.김진철 책지성팀장

< 출처 : 한겨레신문 >

:
Posted by sukji

 

언론사 선정, 2018 올해의 책들

 

2018년 언론사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 총정리다. 7개 매체에서 추린 것을 정리했다.

가장 많이 꼽힌 책은 아래 다섯 권이다.

 

 

전체 결과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통계에 속으면 안 된다. 작년에도 지적한 바 있다. 여러 표를 받은 책들은 훌륭한 것들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같은 추천자가 여러 매체에 중복 초빙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예컨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추천자는 절반 가까이 겹친다. [동아일보] 추천자 45명 중 21명(47%)은 [조선일보] 추천자 50명에 들어가 있다(42%). 두 신문이 각각 뽑은 10권 중에서 6권이 겹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겹치기 출연한 추천자들 대부분은 출판사 관계자다(16명).

[한겨레]의 책 선정에는 외부인 5명만이 참가했는데 그들 중 3명은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의 책 선정에 참여했고, 심지어 2명은 세 신문에 모두 추천자로 나섰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부 계층, 특히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시각이 한 해의 지적 작업을 정리하는 데 결정적인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 해 출간된 책의 성과를 정리하는 작업에 치명적이다. 의도하지 않게 몰아주기가 되기 때문이다. 책이 일으키는 넓은 반향을 담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 해 새로 나오는 책은 4만5천 권 정도다. 이 중에서 10권 남짓 뽑아내려면, 문화적 다양성을 최대한 보장할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검토해야 할 점은?

1. 언론사 자체의 안목

서점이나 도서관, 인쇄소에서 일하는 사람을 빼면, 언론사 출판 담당 기자는 아마도 한국에서 새 책을 가장 많이 접하는 이들일 것이다. 기자들이 책을 찾아가지 않아도, 책이 기자들을 찾아온다. 비록 이 책을 다 읽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출판 현장에 대한 안목을 갖게 된다. 또 책으로 표현되는 지적(知的) 흐름을 예민하게 주시하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스스로 전문가이면서 굳이 남에게 손을 벌릴 필요는 없다.

2. 전문가들의 겹치기 추천 지양

언론사로부터 책 선정에 초빙되는 사람들은 복수 매체에 책을 추천하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이유는 위에 썼다. 언론사들도 좀 더 다양한 관심과 기준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평가단 풀을 운영해야 한다.

3. 책 평가 포커스 그룹

한 해 출간된 책들을 평가할 포커스 그룹을 연초에 구성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문가와 일반인을 망라해 그룹을 구성하고, 이들에게 평가를 맡기는 것이다.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wansooko&logNo=221438604697 >

:
Posted by sukji

 

 

[올해의 책-국내서] 때로는 더디고, 때로는 아플지라도

한반도에 봄 기운이 넘쳤다. 남북의 만남은 북미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추위는 어김없이 닥쳤다.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새벽 홀로 순찰을 돌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책은 우리가 발딛고 선 곳을 진실하게 마주하도록 이끈다. <한겨레>는 올해도 국내서 10권, 번역서 10권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서영인 문학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등 5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한겨레 책지성팀 구성원들이 선정했다.

 

 

 

슬픔 공부의 첩경, 문학에 길을 묻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811.4 신94ㅅ(인문실)
신형철 지음/한겨레출판·1만6000원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소설도 1만부 판매가 쉽지 않은 세태에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불과 석 달 만에 4만부 가까이 팔렸다. 올해 작고한 선배 비평가 황현산처럼 신형철 역시 문학의 경계를 넘어 다수 독자를 열성 팬으로 확보했다는 방증이겠다.

슬픔의 수미쌍관. ‘슬픔’을 앞뒤에 거느린 책 제목은, 슬픔 공부의 절박한 필요성과 그 어려움을 요령껏 갈무리한다. 숱한 죽음과 폭력으로 사회 전체가 휘청거릴 때, 그중에서도 약한 이들과 착한 이들에게 슬픔과 아픔이 쏠릴 때, 신형철은 자주 탄식하고 때로 원망도 하지만, 주로는 책을 읽고 생각을 정돈한다. 문학이 그에게는 슬픔 공부의 첩경이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묻는 ‘두 고기 이야기’

고기로 태어나서-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636.0832 한58ㄱ(자연실)
한승태 지음/시대의창·1만6800원

고기로 태어난 건 마찬가지인데, ‘힘쓰는 고기’(노동하는 인간)와 ‘맛있는 고기’(닭·돼지·개)는 왜 다른가?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닭·돼지와 개 사이에는 구분이 없는가?

<고기로 태어나서>는 르포 작가 한승태가 4년 동안 식용 동물농장 9곳에서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고기’들의 고통을 동력으로 삼아 돌아가는 축산 산업의 한복판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에 서 있는 온갖 경계들을 의심한다. 의심하지 않으면 정당화되고, 그것은 결국 괴물이 된다. 지은이가 멱살을 쥐고 데려간 현장을 경험해본 뒤에, “당신과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혐오표현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잡다

말이 칼이 될 때-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 323.4 홍53ㅁ (사회실)
홍성수 지음/어크로스·1만4000원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 혐오표현은 우리 사회 문제의 핵심부로 진입했다. 일베 등이 사용하는 극단적인 혐오표현부터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된장녀’ ‘홍어’ ‘흑형’ 등이 끊임없이 기삿거리를 만들어냈다.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할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란 대의를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할지는 답을 쉽게 내리기 어려운 문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나라들처럼 혐오표현을 규제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는 소중하다. 그는 이 책으로 당대의 문제에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지식인의 한 모범을 보여줬다.

 

 거인의 두 발은 과연 어디를 딛고 있나

아틀라스의 발-포스트식민 상황에서 부르디외 읽기 ? /

617.522 천19ㄱ2Kㅅ(자연실) 이상길 지음/문학과지성사·2만9000원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90년대부터 한국 지식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하비투스’, ‘장(場) 이론’ 등 그의 이론과 개념들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상길 연세대 교수는 과연 우리가 부르디외를 제대로 ‘써먹고’ 있는지 묻는다.

부르디외와 그의 이론, 그리고 그를 둘러싼 우리의 수용까지 폭넓게 조명하는 <아틀라스의 발>은 무엇보다 “대상이자 방법으로서 부르디외”에 주목한다. “부르디외는 자신의 사회학까지 들어올릴 수 있는 학문적 지렛대의 받침점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포스트 식민’ 상황에서 어떻게 학문을 할 것이냐 하는 운명 같은 물음에 치열하고 성실한 ‘되물음’을 제출한, 흔치 않은 연구서다.

 

 삶과 사상, 예술에 대한 총체적 연구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1, 2
박희병 지음/돌베개·전권 20만원

18세기 조선의 선비화가 능호관 이인상(1710~1760)은 그림·글씨·시 분야에서 삼절(三絶)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태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서 단행본 한 권 없었다.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은 한문학자 박희병(62) 서울대 교수가 20여년 동안의 노력을 들여 그의 삶과 사상,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대작이다.

새 문헌을 발굴하고 금석문의 현장 탁본을 뜨고 경매에서 작품을 사서 연구하는 등 지은이가 기울인 치열한 노력은, 조선의 보수 지식인이 어떻게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열게 됐는지 새롭게 밝혀줄 뿐 아니라 기존 미술사학계의 연구 풍토에 통렬한 비판을 던진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을 말한다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페미니스트 크리틱 / 305.42 김68ㄷ (사회실)
김은실 엮음/휴머니스트·1만4000원

올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단어가 있다면 단연 ‘미투’(#metoo)가 아닐까. 미투 운동과 그 전의 문단 내 성폭력 등 젠더 문제가 발생해 사람들을 각성시키면, 페미니즘 책들은 역사와 이론과 공감으로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을 단단하게 뿌리내리게 했다.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는 김은실, 권김현영, 정희진 등 국내의 여성학자 9명이 미투 운동과 탈코르셋 운동, 여성 입대 논쟁, 저출산 담론 등 지금 가장 뜨거운 페미니즘 주제들을 논한 책이다. 사건에 대한 즉물적 반응에 멈추지 않고, 더 심층으로 들어가 벌이는 논쟁이 페미니즘을 계속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서 날리는 로빙슛, 러빙슛!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796.334 김95ㅇ (자연실)
김혼비 지음/민음사·1만4800원

“기절할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30대 직장여성 김혼비(필명)가 들려주는, 유쾌하고 박진감 넘치는 축구 사랑 에세이. 한국의 아마추어 축구에는 어쩐지 ‘아저씨 냄새’가 난다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다. 지은이는 책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첫 책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맛깔스런 글솜씨를 축구공 삼아, ‘맨스플레인’을 일삼는 남성과 세상의 편견에 맞서, 경쾌한 드리블과 페이크와 정면돌파로 짜릿한 슈팅을 날린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이 (사회적) ‘운동’이 되는 순간”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정적으로 축구를 즐기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킥킥’ 웃음과 울컥한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가 화상경험자들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화상경험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811.8 송96ㄴ (인문실)
송효정·박희정·유해정·홍세미·홍은전 지음/온다프레스·1만6000원

여러 사람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화상 경험자들이 용기를 냈다. 중증 화상을 겪은 일곱 사람과 가족이 사고의 기억과 고통, 절망 그리고 다시 ‘나’를 찾는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치료와 수술, 생활고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이들이 많다. 힘겨운 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곁에 있는 다른 환자들을 만나 위로를 받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함을 직시하고 자신을 긍정했다. “있는 그 모습.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봐줘야 해.” 화상 경험자들에게 응원을 보내야 함을 느끼고 깨닫게 하는 책이다.

 

 한 사회가 장애를 대하는 태도를 묻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362.4 김67ㅅ (사회실)
김원영 지음/사계절·1만6000원

선천성 지체장애인 김원영(37) 변호사가 자신의 경험과 국내외 사례 및 이론 연구를 토대로 장애인, 소수자, 나아가 인간 존엄성의 참뜻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아냈다. 존엄을 위한 퍼포먼스, 품격과 실격, 잘못된 삶 소송, 인위적 장애 선택 등 생소하고 불편하기까지 한 개념과 논쟁 사례들을 제시하며, 한 사회가 장애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실존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서로 존중하는 사람들의 일상적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의 결핍을 수용하는 윤리적 결단과 권리의 발명”을 강조한다. 이는 “예의바른 무관심, 섬세한 도움, 긴 시간을 들여 상대의 ‘초상화’를 그려보려는 실천”에서 가능하다.

 

 그 시대, 훌륭한 판검사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법률가들-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 340.092 김227ㅂ (사회실)
김두식 지음/창비·3만원

일제강점기와 극한의 이념 대결을 통과해온 한국 근현대사의 규정력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 법조계의 문제들을 드러내왔던 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법률가들>에서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법조계의 어두운 기원을 파헤쳤다.

3년 동안 수많은 자료를 뒤져 해방 뒤의 법률가 3000여명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인 만큼, 신선한 ‘팩트’들이 빼곡하다. ‘불멸의 신성가족’의 기원에는, 식민지의 잔재와 ‘관제 빨갱이’를 만들어내면서까지 출세를 쫓았던 이들, 시험도 보지 않고 법관이 된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어두운 기원을 직시하고 반성할 용기가 과연 있는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정면으로 묻는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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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