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1. 09:40
'공시' 그만두고 '폐교 생활'은 어때? 귀농 청년들의 ‘리틀포레스트’ 교육.기타2020. 7. 21. 09:40
'공시' 그만두고 '폐교 생활'은 어때? 귀농 청년들의 ‘리틀포레스트’
인구 150명, 주민 대부분이 70대 이상인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아천1리에 도시 청년들이 모여든 건 2017년이었다. 대학 졸업 후 서울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백아름씨(29)는 ‘공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행복한가’ 돌아보는데 행복하지 않았어요.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는 동네 친구 주슬기씨(29)와 함께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기로 했다. 마침 경상북도 사회적 기업 설명회에서 만난 아천1리 장동범 이장(59)이 “마을에 청년들이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는 폐교가 있다. 이곳에 와서 시작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백아름씨는 “며칠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보니 폐교가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폐교라는 공간을 이용해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폐교에 백씨 등 청년 3명이 터를 잡았고 이곳에 주소를 둔 사회적 기업이 2곳이나 생겼다. 하지만 1년 만에 모두 문을 닫았다. 대다수의 실패한 청년 창업가들이 그렇듯, 이제 뿔뿔이 흩어질 일만 남아 있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의 백아름씨(왼쪽)와 마민지씨가 지난 4월 9일 경북 상주 아천1리 폐교에서 인터뷰를 하며 웃고 있다.
아천1리가 특별해진 건 그때부터였다. 생면부지 청년들에게 폐교를 지원했던 마을 주민들이 이들을 품었다. 장동범 이장은 청년들에게 “그렇게 먹고살 것을 각자 준비하지 말고, 같이 모여서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하고 이곳에서 좀 더 행복하게 사는 법을 고민해보자”고 했다.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등 주민 2명과 귀농한 청년들이 10만 원씩 출자해 폐교에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장 이장은 “마을 주민들은 청년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해하셨어요. 수확한 작물을 학교에 두고 가시곤 했거든요. 돌봐주시는 거죠. 시골에서 잘 볼 수 없는 귀한 청년들이니까 어떻게든 다시 한번 잘해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제일 컸어요”라고 말했다. 청년들은 주민들이 만든 지역 농산물과 가공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장은 주변 동네를 돌아다니며 청년들이 농사 지을 밭과 논을 주선했다. 아천1리와 인근의 양범리, 무릉리 땅을 빌릴 수 있었다. 청년들은 그 흔한 고구마 농사 하나 제대로 못하는 초보였다. “고구마는 없고 줄기와 잎만 무성하게 자랐어요. 양분이 부족했던 거였어요. 다음번에는 제대로 짓겠다고 생각하고 동네 할머니에게 물어보고 다녔죠.(백아름씨)” 농사 스터디도 시작하고 이웃 농가 일을 도와주며 농사를 배웠다. 작년부터는 친환경 벼농사를 시작했다. 올해는 친환경 고추농사와, 콩, 오이 농사를 계획하고 있다. “농사를 지어보니 알겠더라고요. 농촌은 농사가 기반이 돼야 하는 환경이더라고요. 농사를 짓지 않으면 어르신들이 하는 말씀도 알아듣기 힘들고, 말 한 번 붙이기 힘들었어요. 청년들이 농사를 짓는 것에 주민들이 굉장히 우호적으로 봐주시고 자기 경험도 공유해주셨죠.(주슬기씨)” 20대 후반~30대 초반 청년 조합원은 7명으로 늘었다. 처음에는 마을 이장 등 주민들이 부담했던 폐교 임차비, 관리비 등도 이젠 협동조합의 수익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됐다.
청년들은 장 이장을 ‘비빌 언덕’이자 ‘멘토’라고 했다. 평소에는 ‘사부’라고 부른다. 그도 7년 전 도시에서 이주한 귀농인이었다. “귀농·귀촌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그 지역에 ‘멘토’나 ‘중간지원조직’이 있는가 하는 거예요. 마을 분들도 소개해주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시거든요. 사부님 같은 분들이 많이 알려주시고 밀어주다 보니까 저희도 마을에 잘 적응하고 구성원이 된 것 같아요.(백아름씨)”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4월 9일 경북 상주의 밭에 검정색 제초매트를 덮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시골 동네도 달라졌다. 폐교 1층의 교실 한 곳은 주민들의 ‘목공방’이 됐다. 학교 도서관은 할아버지·할머니를 위한 영화관이 되기도 하고, 노래자랑이 열리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비어있는 1층 다용도실에는 올해 마을 카페를 조성할 계획이다. 폐교의 청년들은 인근의 이안면과 함창읍의 초등학생들과 함께 합창단을 만들고, 지난해 10월에는 아이들과 핼러윈 파티도 열었다.
주민 조남구씨(82)는 2011년 학교가 폐교됐을 때 “속이 상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이 만든 학교였다. “우리가 여기 만들 때 부역을 얼마나 했는데요. 리어카로 운동장 닦고 돌 고르고, 밀고 평평하게 만들었죠. 우리 아들하고 딸도 다닌 학교예요. 그런 곳이 (폐교가 돼서) 전부 풀밭이 됐고 잡초가 이레 쌓여서 말도 못했어요.” 그가 말했다. “그런 곳을 청년들이 와서 바꿔놓은 거예요.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마을 일도 돕고, 비료도 실어다 주고, 농사도 짓고 젊은 사람들이 참 잘해요.” 청년들이 오면서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마을 사업도 시작됐다. 장동범 이장은 “1980년대만 해도 저수지 물을 대면 논에 새우와 붕어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친환경 농사도 짓고, 마을 경관도 가꾸면서 예전 그 모습을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의 백아름씨(왼쪽)와 마민지씨가 지난 4월 9일 경북 상주 아천1리 폐교의 교사 관사 앞에 앉아 강아지들을 돌보고 있다.
청년들에게 ‘미래가 불안하지는 않냐’고 물었다. 백아름씨는 말했다. “사실 그런 걱정은 노량진에 있을 때 되게 많이 했어요. 나는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합격하지 못하면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실패한 게 돼버리잖아요. 도시에서는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받았는데 여기 와서는 달라졌어요. ‘못하면 다시 하면 되지’ ‘어떻게 더 해야 더 화합하고, 함께 할 수 있을까’ 생각을 더 많이 해요. 농촌에선 도시와는 다르게 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어서. 주체적으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돼서 살 수 있다는 점, 더 열심히 살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아요.” 2년 전 귀농한 마민지씨(29)는 “오히려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귀농은)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특히 저희가 협동조합이라는 공동체에서 생활하다 보니 누군가 힘들어하면 받쳐주고 ‘으쌰 으쌰’해서 같이 가자는 분위기예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건 제 자신에 대해 확신이 아직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일단 이곳에는 친구(백아름)도 있고, 이 친구와 함께하면 굶어 죽을 것 같진 않아요.”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은 이제 귀농 청년들의 ‘플랫폼’이 되기를 꿈꾼다. 귀농 청년들이 생활하고, 농사법·귀농생활 등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사는 법을 궁리하는 공간이다. 서울의 청년 기업과 함께 폐교 2층을 개조해 ‘공유 오피스’로 활용하기로 했다. 폐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함께 할 청년들도 모집 중이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블로그▶ https://blog.naver.com/wnqordl2017 ) 장동범 이장은 “청년들이 와서 버텨낼 수 있는 공간, 커뮤니티를 농촌에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안심하고 마을로 와서, 실패해도 또 일어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청년 귀농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출처 : 경향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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