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

« 2024/12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 김승섭

306.461 김58ㅇ

사회과학열람실(3층)

 

 

책소개

 

데이터를 활용해 몸과 질병의 사회사를 이야기하다!

 

2017년 《아픔이 길이 되려면》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의 신작 『우리 몸이 세계라면』. 데이터를 통해 인구집단의 건강을 말하는 사회역학 연구자인 저자가 지난 20년 동안 의학과 보건학을 통해 공부해온 몸과 질병에 관한 주제들을 ‘지식’에 방점을 찍고 새로 집필한 책이다. 집필 기간은 1년이었지만 20년간의 고민과 공부가 담겨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몸은 다양한 관점이 각축하는 전장이라고 이야기하며 지식의 전쟁터가 된 우리 몸에 대해 다룬다. 병원 진단 과정이나 의학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몸만을 표준으로 삼아 생긴 문제들을 지적하고, 신약 개발에 있어서 고소득국가에서 소비되는 약만 개발되면서 저소득국가에서는 필요한 약이 개발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등 몸을 둘러싼 지식의 생산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과 역사의 사례, 현대의 여러 연구를 망라하며 사회역학자의 글답게 데이터를 근거 삼아 몸을 둘러싸고 어떤 지식이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지, 누가 왜 특정 지식을 생산하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에 질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지식의 전쟁터가 된 몸에 대하여
지식의 최전선에서 몸을 둘러싼 지식을 질문하다
1,120편의 논문 검토, 300여 편의 문헌 인용,
20년의 공부를 전작으로 집필하다!

1,120편의 논문을 검토하고, 300여 편의 문헌을 구체적 근거로 삼았다. 1348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의 지시로, 파리 의과대학 교수가 쓴 흑사병 원인에 대한 보고서부터 유방암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세포 단위의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사회제도의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을 밝힌 최신의 논문까지. 시대와 공간을 횡단하며 지식의 최전선에서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경합과 지식인들의 분투를 담아냈다. 신간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2017년 『아픔이 길이 되려면』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의 신작이다. “인간의 몸은 다양한 관점이 각축하는 전장”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지식의 전쟁터가 된 우리 몸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몸을 둘러싼 지식의 생산 과정에 대해 말하면서, 어떤 지식이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지, 누가 왜 특정 지식을 생산하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에 질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전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10년간 김승섭 교수가 언론 매체를 통해 소통한 글들을 엮은 것이라면, 신간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지난 20년 동안 의학과 보건학을 통해 공부해온 몸과 질병에 관한 주제들을 ‘지식’에 방점을 찍고 새로 집필한 책이다. 집필 기간은 1년이었지만 20년간의 고민과 공부가 담겼다. 방대한 자료를 검토했고, 그것들을 저자 특유의 정갈한 언어로 담아냈다. 과학과 역사의 사례, 현대의 여러 연구를 망라하며, 사회역학자의 글답게 데이터를 근거 삼아 이야기한다.

왜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드는 일에 관하여 묻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2018년인 지금도 심심치 않게 매스컴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이다. 그 뿌리를 따라가면, 제국주의 시기의 혈액형 인류학을 찾을 수 있다. 루드빅 히르쉬펠트는 혈액형을 ‘과학’의 도구로 이용해 민족과 인종을 처음 설명한 사람이다. 그는 마케도니아 전장에서 16개 국가의 군인 8,500명의 피를 뽑아 분석한 후 ‘생화학적 인종계수(AB형+A형/AB형+B형)’라는 지수를 만든다. A형 인자를 가진 사람이 B형 인자를 가진 사람보다 더 진화했다는, 인종주의적 전제를 담은 지표다. 이 지표는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드러낼 도구를 찾던 일본에게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일본은 조선에서 인종계수를 측정하면서, 일본과 가까울수록 인종계수가 높다는 계산을 도출해낸다. 김승섭 교수는 이러한 일제강점기의 인종주의 과학을 소개하면서, 어떤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 왜 그 시기에 그 질문을 던졌는지, 그 질문을 답하기 위한 연구들은 어디에 발표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은 이후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를 말하면서는 당시에 경제성장이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을 보건학자로서의 관점을 담아 다른 방향에서 질문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건강해졌는가를 물은 것이다. 김승섭 교수는 데이터를 통해 이를 입증해 보인다. 병원을 이용한 외래환자 수를 비교해봤을 때,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조선인에 비해 병원에서 치료받은 비율이 10배 이상 높았다. 한편 법정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조선인이 일본인의 10%에도 미치지 않았는데, 이 데이터를 해석하며 저자는 당시 조선인 전염병 사망자에 대해서는 그 규모조차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한다. 또한 당시 조선인의 평균키 변화를 검토하면서 식민통치가 조선인의 건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건학자로서의 질문에 답한다.

이 책에서는 병원 진단 과정이나 의학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몸만을 표준으로 삼아 생긴 문제들을 지적하고, 신약 개발에 있어서 고소득국가에서 소비되는 약만 개발되면서 저소득국가에서는 필요한 약이 개발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김승섭 교수가 이 책 전반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지식’ 그 자체에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지식이건 그 생산에는 누군가의 관점이 담기기 마련이고, 어떤 지식은 특정한 누군가의 이익을 반영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과학과 역사의 사례에서부터 현대의 연구까지 다루며 이러한 지식의 배경들을 드러내고 질문한다.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의 연구가 한국 사회를 연구하지 않는 이유


2016년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4년간 1억원의 장학금을 제안한다. 흡연자가 고객인 담배회사가 건강을 연구하는 보건대학원에 장학금을 제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립 모리스는 “기존의 담배가 중독성이 있고 사망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담배의 종류는 다양하며, 그 독성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오히려 흡연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말하며, 장학금을 제안했다. ‘덜 해로운 담배 선택권’ 즉, 전자 담배에 대한 연구 제안을 한 셈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교수회의를 거쳐 이 제안을 거절한다. 이 책에서는 지식에 질문함과 동시에 이러한 지식 생산의 주체인 지식인들의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본이 지식 생산 과정에 관여한 사례로서, 담배회사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을 어떻게 매수하는지 여러 사례와 연구를 통해 보여준다. 2018년 연구에서 국제구호단체인 유니세프(UNICEF, 유엔아동기금)가 담배회사의 후원을 받으며 어린이 흡연 예방 활동을 축소한 문제를 다루고, 미국에서 공개된 담배회사 내부문건에서 한국의 학자들이 등장한 내용을 다루기도 한다. 또한 최근 담배회사들이 주력하는 전자담배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다. 2018년 스탠턴 글랜츠 교수는 필립모리스가 전자담배 ‘아이코스’의 미국식품농약청 승인을 받기 위해 제출한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그 내용을 소개한다. 필립 모리스는 미국과 일본에서, 90일간 아이코스를 사용한 사람의 폐활량, 백혈구 수치, 콜레스테롤 수치를 포함한 24개 생체지표의 변화량을 제시했다. 분석 결과 24개 지표 중 23개에서 기존의 궐련 담배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담배 회사는 과거 스트레스의 대가인 셀리에를 섭외해 폐암의 주요원인이 스트레스인 것처럼 지식을 생산한 바 있다. 이 책에서는 담배회사의 사례를 통해 지식 생산 과정에서 지식인들의 책무에 대해 질문한다.
여기에 더해 한국에서 학계 평가 시스템에 따라 미국 중심의 학술 주제를 선정하게 되는 상황이나 논문 발표 시에 한국에 필요한 지식이어도 국외 저널 즉, 영어논문으로 발표하게 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도 제기한다.

데이터를 통해 읽는 몸과 질병의 사회사

저자인 고려대 김승섭 교수는 데이터를 통해 인구집단의 건강을 말하는 ‘사회역학’ 연구자이다. 전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그러한 사회역학의 연구방법으로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드러냈다면, 이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는 데이터를 활용해 몸과 질병의 사회사를 이야기한다. 조선시대를 말하면서는 중종 시기 티푸스로 추정되는 전염병의 실제 사망자 수 데이터를 제시하고, 일제강점기를 말하면서는 병원을 이용한 외래환자 수, 법정 전염병 사망자 수, 평균키 데이터를 보여준다. 중세 흑사병을 말하면서는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사망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흑사병 유행 시기와 유행하지 않은 시기의 남녀 사망비를 분석한 2017년 네덜란드의 연구를 소개한다. 데이터를 보여주며 동시에 질문한다. “대규모 재난 앞에서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죽음의 불평등을 묻는다. 대규모 재난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오늘날 그 함의를 떠올리게 한다.

 

 

목차

 

 

들어가며 _4

1. 권력 - 어떤 지식이 생산되는가
이름을 알 수 없는 지식에 대하여
: 여성의 몸이 사라진 과학
죽음을 파는 회사의 마케팅 전략
: 담배회사의 지식 생산 1
자본은 지식을 어떻게 섭외하는가
: 담배회사의 지식 생산 2
[왜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가]

2. 시선 -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
누가 전시하고, 누가 전시되는가
: 조선인의 몸에 제국주의를 묻다 1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인은 더 건강해졌는가
: 조선인의 몸에 제국주의를 묻다 2
이 땅에 필요한 지식을 묻다
: 조선, 당대의 한계에서 최선의 과학을 한다는 것

3. 기록 - 우리 몸이 세계라면
불평등이 기록된 몸
: 건강불평등은 어떻게 사회에 반영되나
차별이 투영된 몸
: 과학적으로 불투명한 인종이라는 개념

4. 끝 - 죽음의 한가운데 있는 삶
가장 많은 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 암으로 읽는 질병의 원인과 죽음의 원인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과학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 흑사병, 죽음이 일상이 된 중세의 풍경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5. 시작 - 질문되어야 하는 것들
‘쓸모없는’ 질문에서 시작된 과학
: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질문하지 않은 과학이 남긴 것
: 비윤리적 지식 생산 과정을 말하다

6. 상식 - 지식인들의 전쟁터
자신의 경험을 믿지 않는 일
: 데이터 근거 중심 의학에 관하여
‘상식’과 싸우는 과학
: 당위에 질문하는 과학의 역사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드는 일]

참고문헌

 

< 내용 출처 : 교보문고 > 

:
Posted by sukji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 :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 브룩 노엘

155.937 B635iKㅂ

인문과학열람실(3층)

 

 

책소개

 

애도의 슬픔을 제대로 겪고 나오도록 일러주는 안내서!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자아와 세계를 완전히 뒤흔들어놓기에, 한번 끔찍한 상실을 겪고 나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삶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애도 중인 사람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재난 상황에 처해 심장을 틀어쥔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애도하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물론 애도를 직접 겪는 사람들조차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더 힘든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에서 저자들은 애도의 한가운데를 통과해서 나온 수많은 사람이 슬픔은 어떻게 위로하면 되는지 일러준다.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의 애도를 가능한 한 여러 각도에서 세밀하게 직조하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은 사람과 애도 중에 있는 그를 지켜보는 이들 모두 저마다의 속도로 슬퍼하는 게 필요하며, 일상을 되찾는 것은 한발 한발 천천히 해도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애도자가 불편하거나 비정상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분노와 두려움 같은 감정에도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표출되지 않은 분노는 내면의 우울 혹은 외부로의 공격성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서, 안전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할 실질적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통해 애도엔 지름길이 없고, 회복탄력성 같은 그럴듯한 말을 되새기며 눈물을 닦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갑작스럽게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애도의 시기와 단계에 따라,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출판사 서평

 

 

모든 사람은

오직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

사랑하는 이를 갑작스레 잃고 애도 중인 모든 이,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모든 이에게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는 우리가 애도의 슬픔을 제대로 겪고 나오도록 일러주는 안내서다. 이 책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은 사람과 애도 중에 있는 그를 지켜보는 이들 모두 저마다의 속도로 슬퍼하는 게 필요하며, 일상을 되찾는 것은 한발 한발 천천히 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애도엔 지름길이 없고, 우리는 ‘회복탄력성’ 같은 그럴듯한 말을 되새기며 눈물을 닦지 않아도 된다. “애도의 형태와 깊이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우리 사회는 애도하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다. 그래서 이것마저 배워야 하는 일이 되었고, 이 책은 애도의 한가운데를 통과해서 나온 수많은 사람이 슬픔은 어떻게 위로하면 되는지 일러준다.

오로지 애도에만 집중할 것

죽음에는 망인亡人 외에 또 다른 당사자가 있다. 바로 그를 알고 살아온, 그를 기억하며 살아갈 우리다. 누구든 어느 순간 부모를 잃으며, 형제자매도 우리 곁을 떠나간다. 자식을 앞세우는 부모는 자기 목숨이 붙어 있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커다란 사회재해로 친구를 잃은 또래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다. 애도하는 자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죄책감이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는 또 다른 이들은 위로를 제대로 할 줄 몰라 자책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자책의 연쇄고리를 낳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는 우리가 애도의 슬픔을 제대로 겪고 나오도록 일러주는 안내서다. 이 책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은 사람과 애도 중에 있는 그를 지켜보는 이들 모두 저마다의 속도로 슬퍼하는 게 필요하며, 일상을 되찾는 것은 한발 한발 천천히 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애도엔 지름길이 없고, 우리는 ‘회복탄력성’ 같은 그럴듯한 말을 되새기며 눈물을 닦지 않아도 된다. “애도의 형태와 깊이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우리 사회는 애도하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다. 그래서 이것마저 배워야 하는 일이 되었고, 이 책은 애도의 한가운데를 통과해서 나온 수많은 사람이 슬픔은 어떻게 위로하면 되는지 일러준다. “일상으로 돌아가요” “1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많이 나아졌을 거야”라는 말은 금물이다. 상실을 겪은 이와 겪어보지 않은 이는 커다란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전혀 다른 존재다. 그 간극은 어쩌면 좁혀지기 어렵지만 우리는 그들 곁에 있어주고, 그들의 일상사 처리를 도우면서 애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이 책은 알려준다. 때론 유가족의 아이를 보살펴주고, 그들의 공과금 납부를 대신 해주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게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줄 것이다.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너무 비탄에 빠져 있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라는 태도를 취한다면 그와 당신의 관계는 영원히 깨져버릴 수도 있다.
가까운 친구가 죽었다면, “친구 삶의 일부를 가져와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라”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당신 속에 남아 있게 된다. 남편이나 아내를 급작스레 잃었다면 우리는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정의하고 또 정의하는 일에 직면하게 된다. 배우자끼리 너무 친밀한 삶을 살아왔다면 애도를 깊숙이 통과한 후 “그에 대한 의존성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이 책은 현실적으로 조언한다.
동일본 대지진 때 일본인들이 애도를 표한 방식이나, 베트남 전쟁 이후 베트남 국민이 전쟁의 혼을 위로한 방식에 비하면 한국은 애도 행위에 있어 취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것은 개인의 짐으로 떠넘겨져 어느덧 사회적 대사고가 발생하면 모두들 낮은 우울증의 늪을 알아서 건너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회에 대한 의무를 지닌 존재다. 그러니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의무에서 너무 빨리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건 그 존재의 의미를 의도적(비의도적)으로 삭제하는 일이다.
이 책은 상실을 대하는 우리가 언젠가 황폐화된 죽음의 경험에서 삶으로 건너올 수 있다고 위로하는 일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은 ‘재건’ 작업에 집중되어 있고,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이제 다시 ‘죽음’이 아닌 ‘삶’에 초점을 맞추도록 부드럽게 촉구한다.

저는 울고 소리를 질러요. 저는 상처를 입었어요

“저는 그것을 통과해나가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저는 넘어져요. 울어요. 저는 소리를 질러요.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요. 그리고 저는 서성이고 서성이고 서성거려요. 그러나 저는 그것을 통과해나가려는 중이에요.”

“슬픔은 끈적거리는 것이고 마음에 끔찍한 짓을 해요. 그 일 이후 결코 예전 같을 수 없어요. 모든 것이 바뀌고 인생의 현실은 잔혹해요. 제가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은 상처를 핥는 동물뿐이에요. 저는 상처를 입었고, 제 자신의 시간과 제 자신의 방법으로 치유할 시간이 필요해요.”(열일곱 살의 딸을 자살로 잃은 엄마 다이애나)

애도가 검은 날개를 펼쳐 감싸면 우린 종종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처럼 된다. 한번 끔찍한 상실을 겪고 나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삶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취약함의 느낌은 내 앞날조차 단축시키는 것 같고, 다른 가족이나 연인, 친구도 어쩌면 죽을지 모른다는 강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세상의 철학은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할 수 없다. 많은 애도자가 상실을 처음 겪을 때 “미칠 것 같았다”고 말한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이처럼 자아와 세계를 완전히 뒤흔들어놓는다. 애도 중인 사람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재난 상황”에 처해 “심장을 틀어쥔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애도하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물론 애도를 직접 겪는 사람들조차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더 힘든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먼저 애도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애도라는 여행을 다시 이해해야만 한다.
브룩 노엘과 패멀라 블레어는 자신들의 경험과 그들이 만난 수많은 내담자의 사례를 통해 애도자에게 일어나는 일을 현실적인 차원에서 제시하고 설명한다. 동시에 어떤 애도도 객관화하거나, 일반화하지 않으며 그것의 고유함을 잊지 않는다. 애도를 단계별로 설명하면서도 어느 순간 애도가 그런 단계와 전혀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상정하고, 애도를 부모·자식·배우자·친구 등 관계에 따라 세분화하면서도 그것들이 서로 뒤엉키고 교차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들의 조언은 그래서 더 현실적인 것이 된다. 다 아문 줄 알았던 상처가 갑자기 치명적인 고통으로 되살아나는 순간, 혹은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던 배우자를 잃었을 때 겪게 되는 이중의 고통…… 이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가 입을 모아 “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처럼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의 애도를 가능한 한 여러 각도에서 세밀하게 직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도의 신체적·감정적·정신적 증상들

애도 과정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특히 충격과 혼란이 극심한 시점에는 신체적인 증상 또한 명백하게 나타난다. 가슴 부위의 불편감, 수면 장애, 무기력, 식욕 저하/과식, 입 마름, 떨림, 마비감, 두근거림, 어지러움, 방향감각의 상실, 두통/편두통, 탈진, 숨 참 등은 일반적인 증상이다. 또한 많은 애도자가 정신 산만, 현실 부정, 분노, 약물 의존 경향, 우울감과 불안감, 두려움, 충동적인 생각, 강박적인 생각, 목적 상실 등과 같은 정신적·감정적 증상을 호소한다.
매복해 있던 감정이 평온하던 시기에 갑자기 덮쳐오기도 한다. 저자들은 애도자가 불편하거나 비정상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분노와 두려움 같은 감정에도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분노는 자연스럽고 타당한 감정이며, 표출됨으로써 치유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책은 표출되지 않은 분노는 내면의 우울 혹은 외부로의 공격성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서, 안전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할 실질적 방법들을 제시한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애도 초기의 두려움은 애도자로 하여금 죽음에 관한 생각에 매몰되지 않도록 정신을 분산시켜주고, 잠재적인 통제감을 준다. 모든 것이 통제 밖에 있다고 여기는 애도자들에게 이러한 감각은 안도감을 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편 신체적 증상도 중요한 고려 요인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극단적인 회피 행동, 자기 관리의 포기, 장기간 지속되는 우울·불안·부정, 전치된 분노, 자기파괴적인 생각들, 약물 중독 등으로 나타날 때는, 몸과 마음의 엄중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이고 즉시 전문가를 찾아가야 한다고 저자들은 조언한다.

애도에 관한 오해,
상실을 직접 겪은 이들이 말하는 애도

갑작스러운 상실은 애도자들을 이방인으로 만든다. 거기에는 애도에 관한 잘못된 믿음들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저자들은 10년간 수많은 유족과 긴밀히 접촉하며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스물여덟 가지 애도에 관한 오해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바쁘게 살면 벗어날 수 있다, 너무 오래 끌지 말아야 한다, 분노는 부적절하다, 검은 옷을 입어야 한다, 약이나 술로 잊을 수 있다, 상실을 입에 올리면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강해야 한다, 고인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 다행이다,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울어야만 한다…… 이 모든 오해와 편견은 자기만의 애도를 통과 중인 많은 애도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상태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자기의심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두 저자는 일찍이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로서, 또 전문가로서 애도 과정에서 흔히 갖는 사회적 편견과 오해로부터 애도자들을 변호하고 보호한다. 애도에는 매뉴얼도 시간표도 없고, 삶이 제각각이듯 애도 또한 고유한 과정임을 상기시켜준다. 술과 약물로 애도를 회피할 수 없음을 알려주고, 마음 깊이 아끼던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현실을 직면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준다. 미쳐도 괜찮다고 말해주며, 전문가와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태를 일러준다. 분노와 고통을 표현하라고 이야기하며,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라고 주문한다. 상실감의 깊이가 근거 없는 기준에 의해 함부로 평가받지 않도록 애도자의 편에서 그들을 지지해준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임을 인지키시면서도, 홀로 있고 싶을 때는 그렇게 해도 좋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 책에는 애도를 경험한 수많은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 등장한다. 생명줄과도 같았던 오빠를 잃은 브룩 노엘, 파트너이자 친구였던 전남편을 잃은 패멀라 블레어뿐 아니라 형제자매를 잃은 사람, 남편을 잃은 아내, 둘도 없던 친구를 잃은 이, 연인을 잃은 사람 등 수많은 애도자가 등장한다. 또 이들은 벌알레르기, 교통사고, 군軍 사고, 범죄 피해, 자살, 9·11 테러 같은 대형 참사 등 각기 다른 사망의 원인과 그로부터 오는 저마다의 곤란을 털어놓는다. 책에 등장하는 애도자들은 자신이 애도 과정에서 몸소 깨달은 바를 독자와 공유함으로써, 애도가 단지 상실의 고통을 통과하는 과정을 차원이 아닌 성장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모이고 쌓여 사회적 차원에서 더 성숙한 애도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애도 여정의 안내서

이 책은 무엇보다 애도자들이 실제 애도 과정에서 유용한 조언을 얻고, 그것을 자기만의 애도에 적용시키며 삶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쓰였다.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애도의 시기와 단계에 따라,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특징적인 점은 부모를 잃었을 때와 자녀를 잃었을 때, 배우자를 잃었을 때와 친구를 잃었을 때, 자살로 누군가를 잃었을 때와 사회적 재난으로 잃었을 때 애도의 속도와 방식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저마다의 사례로 세밀한 경험들을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2부는 매우 실용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데, 애도 중에 있을 때 직장 사람들이나 이웃과 어느 정도로 거리를 두어도 되는지, 아이들에겐 아빠나 엄마가 세상을 떴다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 설명해주면 되는지, 남성과 여성은 슬픔에 대하는 자세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일러준다. 이것은 다른 이들과의 연결 속에서 애도하는 당신 자신에게 오로지 집중하도록 하는 조언들이다.
애도는 거대한 행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배우자의 사망 후 새로운 삶의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보통 3~5년이 걸리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의 애도는 10~20년 또는 평생 계속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에도 애도자들은 결국 삶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다. 애도하면서 토대를 하나씩 쌓아올려가는 것이다. 애도를 통과해 나온 이들은 말한다. “우울증은 여전히 따라다니지만, 산산조각 났던 그 끔찍한 날로부터 나는 먼 길을 왔다”고.
그렇기에 이 책은 수많은 고통을 남김없이 나누면서도 결국엔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재건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목차

 

서문

1부 낯선 세계: 애도로 향하는 여행
1장 출발 장소: 저자의 메시지
2장 첫 몇 주간을 위한 메모
3장 애도의 감정적·신체적 영향을 이해하기
4장 애도 과정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오해

2부 뒤집힌 세계: 산산이 흩어진 자신을 모으기
5장 뒤집힌 세계
6장 다른 이와의 연결
7장 힘겨운 시기들: 명절, 기념일, 기타
8장 따로 또 함께 애도하기: 남성과 여성의 애도에 대한 이해
9장 아이들의 애도 돕기

3부 우리 이야기
10장 친구를 잃었을 때
11장 부모를 잃었을 때
12장 자녀를 잃었을 때
13장 연인·배우자를 잃었을 때
14장 형제자매를 잃었을 때
15장 전사한 영웅들
16장 자살
17장 대형 참사
18장 그 외의 특정 상황들

4부 애도를 지나는 길
19장 앞으로 나아갈 길: 애도의 여정을 이해하기
20장 믿음
21장 자조와 치료
22장 애도 회복 과정과 안내용 연습 자료
23장 여행은 계속됩니다: 저자들이 남기는 메모

부록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 출처 : 교보문고 >

:
Posted by sukji

 

 

냉정한 이타주의자 : 세상을 바꾸는 건 열정이 아닌 냉정이다  / 윌리엄 맥어스킬

171.8 M116dKㅈ

인문과학열람실(3층)

 

 

책소개

 

냉정한 당신이 세상을 바꾼다, 경솔한 이타주의의 불편한 진실!

선의와 열정에만 이끌려 실천하는 이타적 행위가 실제로 세상에 득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물부족 국가에 식수 펌프를 보급하려 했던 ‘플레이펌프스인터내셔널’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며 폐업했다. 『냉정한 이타주의자』는 이러한 이타적 행위의 사례를 제시하며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냉정한 판단이 앞서야 선행이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공정무역 제품 구매도, 노동착취 제품 불매도,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소용이 없다는 수치가 넘쳐난다.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이타적 행위가 실제로 세상에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하는 이유다. ‘이타주의’는 희생을 뜻하지 않는다. ‘타인의 삶을 개선시킨다’는 단순한 의미를 나타낸다. ‘효율’은 주어진 자원으로 최대한 효과를 거둔다는 의미다. ‘효율적 이타주의’는 가장 효율적인 선행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 보고 그것부터 실천하지는 말로 따뜻한 가슴에 차가운 머리를 결합시켜야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선의와 열정에만 이끌려 무턱대고 실천하는

경솔한 이타주의의 불편한 진실

무분별한 선행은 오히려 무익할 때가 많다. 실효가 전혀 없거나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선행 사례는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아프리카 물부족 국가에 식수 펌프를 보급하려 했던 ‘플레이펌프스인터내셔널’은 선의와 열정만 앞세운 사업 운영으로 결국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며 폐업했다. 광범위한 사업을 전개하는 월드비전, 옥스팜, 유니세프 등 거대 자선단체도 효율성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보건사업에 비해 비용은 더 많이 들고 효율은 더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에도 재해구호에 전력을 기울이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개인 차원의 선행도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공정무역 제품 구매도, 노동착취 제품 불매도,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소용이 없다는 수치가 넘쳐난다.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이타적 행위가 실제로 세상에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냉정한 판단이 앞설 때라야 비로소 우리의 선행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기생충 치료는 어떻게
케냐 학생들의 출석률을 높일 수 있었을까?


트레버 필드는 회전 놀이기구인 일명 ‘뺑뺑이’와 펌프 기능을 결합시킨 ‘플레이펌프’를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 보급해 식수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아이들이 기구를 돌리며 놀 때 발생하는 회전력으로 지하수를 끌어 올린다는 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유력 기업인과 정치인, 유명인 들이 열광했고 대대적인 마케팅 캠페인에 가세했다. 이들의 후원에 힘입어 그가 설립한 자선단체 ‘플레레이펌프인터내셔널’은 날개 단 듯 급성장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제동이 걸렸다. 플레이펌프의 효과 검증에 나선 연구단체들의 보고서가 발단이 됐다. 우선 수동펌프를 더 선호한 마을에 일방적으로 설치된 사례가 많았다. 펌프 동력 공급에 아이들의 ‘노동’이 동원되면서 사고도 속출했다. 관리 체계가 허술해 자체적인 유지보수도 불가능했다. 플레이펌프는 마을의 흉물로 전락했고 그마저도 아쉬웠던 성인 여성들이 뺑뺑이를 돌려야 하는 ‘모욕적인’ 일거리를 담당하게 됐다. 각종 폐해가 드러나자 언론이 등을 돌렸고 플레이펌프 미국 지부는 결국 폐업했다._본문 14~19쪽
필드는 극빈층도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플레이펌프 사례가 보여주듯 선의와 열정에만 의존한 경솔한 이타주의는 오히려 해악을 끼치기 쉽다. 비슷한 시기에 기생충구제 자선단체를 설립한 마이클 크레머의 사례는 이와 반대로 따뜻한 가슴(이타심)에 차가운 머리(데이터와 이성)를 결합시켜야 비로소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방증한다.
크레머는 아프리카 학교의 출석률 높이기 프로그램 시행하는 단체에 무작위 대조시험을 권했다. 프로그램을 시행할 학교 7곳과 그렇지 않은 학교 7곳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성과를 비교해 각각 실효성을 따져 보자는 의도였다. 전례 없던 새로운 시도였다. 교과서 및 수업교구 제공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사 1인당 담당 학생 수를 줄이는 것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동료의 권유로 기생충 감염 치료를 시행하게 됐다. 놀랍게도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뛰어났다. 결석률이 25퍼센트나 줄어든 것이다. 완치된 아이들의 출석일수가 2주 늘었고 전교생의 추가 출석일이 기생충 구제에 투입된 지원금 100달러당 총 10년 늘어났다. 올라도 ‘그만저만’ 오른 게 아니라 ‘엄청나게’ 오른 것이다. 학생 1명을 하루 더 출석시키는 비용으로 단 5센트가 든 셈이라 저렴한 편이기도 했다.
기생충 구제는 보건, 경제 등 교육 외적인 부분에서도 연쇄 효과를 가져왔다. 빈혈, 장폐색증, 말라리아 등 다른 질병의 발병 위험도 줄었다. 10년 뒤 추적 조사한 결과 감염 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주당 3.4시간 더 일했고 소득도 20퍼센트 높았다. 구충제 복용이 세수 확대로 이어져 실행 비용을 자체 충당할 정도였으니 실로 효과적인 사업이었다._본문 20~23쪽

당신은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2011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현지 관측 이래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1년 전인 2010년에는 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해 약 28만 채의 건물이 붕괴되는 등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두 지진 소식은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구호단체들도 일제히 모금에 나서 각각 약 50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원조금을 지원받았다._본문 89쪽
두 재해 모두 지진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은 유사했다. 하지만 사상자 수(일본은 사후 사망자 포함 1만5000명, 아이티는 15만 명)와 대응자원 보유량(세계 4위 경제대국인 일본은 GDP가 1000배 더 많다)에는 극적인 차이가 있었다. 규모가 더 큰 재해와 빈국에서 발생한 재해에 더 많은 구호금이 전달되는 게 합리적인 대응일 테지만, 규모와 심각성이 아니라 정서적 호소력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지에 따라 돈이 분배되는 게 현실이다. 가령 2008년 중국 쓰촨성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일본 지진의 5배, 아이티 지진의 절반에 맞먹는 8만7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무슨 까닭인지 대서특필되지 못했고 지원금도 일본이나 아이티에 몰려든 지원금의 10분의 1에 불과한 5억 달러에 그쳤다._본문 89~90쪽
사실 시야를 넓혀 보면 매일 도호쿠 지진 사망자 수보다 많은 1만8000명의 아이들이 결핵 등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규모로 보면 아이티, 도호쿠, 쓰촨 지진보다 심각한 재난이지만 일본 지진 당시 기부금이 사망자 1명 당 33만 달러였던 데 비하면 빈곤으로 인한 사망자 1명당 구제비용으로 투입된 금액은 평균 1만5000달러로 보잘것없다. 효율을 따져 보면 재해구호에 기부하는 것보다 빈곤단체에 기부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개발 전문가들이 “긴급 재난구조 활동은 오랜 기간에 걸쳐 검증된 보건사업들에 비해 비용은 더 많이 들고 효율은 더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_본문 91쪽
우리가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듯 사람들은 남을 도울 때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하고 기존 문제보다 새로운 사건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재해가 발생하면 우리 뇌의 감정 중추는 이를 ‘긴급 상황’으로 인식한다. 새롭고 극적인 사건인 만큼 한층 더 강력하고 즉각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 보니 긴급 상황이 늘 발생하고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다. 질병, 가난, 독재 등 일상적인 긴급 상황에는 오히려 감정이 무뎌져 있기 때문이다._본문 91쪽

윤리적 소비는 왜 효과가 없는가?

노동착취 공장 제품이나 공정무역 상품, 육가공품을 불매하는 윤리적 소비도 세상을 바꾸는 데는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윤리적 소비는 소비자가 구매력을 무기 삼아 세상을 바꾸려는 운동이다. 빈국의 노동자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상품에 웃돈을 지불하고 구입한다는 선의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로 의도한 결과를 낳을지는 의문이다._본문 182쪽
선진국 사람들은 노동착취 공장의 비인간적 노동 환경에 분노해 불매운동을 확산하는 데 앞장서지만 사실 절대빈곤층에게는 그만한 일자리도 없다. ‘공정한 대우’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떠밀려 공장 밖으로 쫓겨난 이들을 기다리는 일자리는 기껏해야 공장일보다 더 고된 농장일이거나 넝마주이다. 좌우 진영의 경제학자들이 초당적 입장을 취해 노동착취 공장 제품 불매운동을 한 목소리로 반대하는 이유도 노동착취 공장이 빈국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논리 때문이다._본문 184~185쪽
가장 널리 확산된 운동인 공정무역 커피 구매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에 수익이 돌아가는 건 아니다. 우선 공정무역 인증 기준은 상당히 까다로워 가난한 나라의 농부들이 기준을 충족시키기가 어렵다. 공정무역 커피 산지는 에티오피아 같은 최빈국보다 상대적으로 10배나 부유한 나라들인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이 대다수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최빈국의 비非공정무역 상품을 사는 게 빈곤퇴치에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소비자가 지불하는 웃돈 중 실제로 노동자의 수중에 떨어지는 건 극히 일부다. 독립적으로 진행한 외부 연구에 따르면 빈국의 커피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1퍼센트 미만이다(공정무역재단은 커피 생산자에게 웃돈에서 얼마를 되돌려주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더욱이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그 적은 몫마저 더 많은 임금으로 바뀐다는 보장이 없다. 공정무역이 큰 성과로 내세우는 지역공동체 사업에서도 정작 극빈층이 소외되는 경우도 많다. 공정무역재단의 연구용역 보고서조차 “참여 노동자들에게 공정무역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 주는 증거는 부족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쯤 되면 공정무역 제품을 살 이유가 없다. 차라리 더 저렴한 상품을 사고 그렇게 절약한 돈을 비용효율성이 높은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게 낫다._본문 186~189쪽

냉정한 당신이 세상을 바꾼다

청년층의 70퍼센트가 직장을 선택할 때 윤리적인 면을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는 조사결과에서 나타나듯, 높은 연봉보다 사회적 기여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젊은층 사이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이 같은 학생들을 겨냥한 비영리단체들 비약적으로 성장한 배경도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오프라 윈프리도 자신의 웹사이트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직업’을 소개할 정도다._본문 85~86쪽
세상을 바꾸는 데 즉각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다면 공익 분야로 뛰어들라는 게 흔한 조언이다. 하지만 이처럼 ‘열정이 이끄는 대로’ 공익 단체에 곧바로 투신하거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이타적 열정을 좇다 보면 오히려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십상이다. 특히 이제 막 사회생활에 첫발을 뗀 초년병이라면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면서 역량, 인맥, 자격 등 경력자본을 쌓아 두는 게 더 낫다. 효율적인 단체로 꼽히는 말라리아퇴치재단의 창립자 롭 매더도 공익 분야로 뛰어들기 전 수년간 전략 컨설팅 분야에서 일하며 역량을 쌓으며 조직운영 기법을 두루 익혔다. 게다가 재단 설립 후 무보수로 일해도 될 만큼 많은 돈도 벌어 두었다._본문 217~218쪽
공익단체에서 일하지 않고도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많다. 대표적인 방법이 ‘기부를 위한 돈벌이’다. 고소득 직장을 버리고 남을 돕는 일에 직접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면 계속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면서 기부를 많이 하는 편이 낫다. 브라운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학계를 떠난 프레더릭 물더가 그 예다. 미술상으로 명성을 쌓으면서도 자신의 경력을 활용해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은 변치 않았던 그는 미술상이라는 직업이 도덕적으로 가치중립적인 일이라 마음에 차진 않았지만 미술계를 떠나 비영리 단체로 전직하는 건 자기 재능을 제대로 쓰는 방법이 아니라는 결론에 닿았다. 그는 여전히 미술상으로 활동하며 해마다 소득의 10~80퍼센트를 기부하고 있다._본문 204~241쪽
크레머와 글레너스터는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기존의 확신을 버리고 실행 방안을 미리 시험해 증거가 말하는 대로 방향을 선회했다. 착한 일을 할 때도 이처럼 증거와 신중한 추론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 나가는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들이 실천한 선행은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선행을 판단하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효율적 이타주의’의 대표적 사례다._본문 25~26쪽
흔히 넘겨짚듯 ‘이타주의’는 희생을 뜻하지 않는다. ‘타인의 삶을 개선시킨다’는 단순한 의미를 나타낸다. ‘효율’은 주어진 자원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둔다는 의미다. 어떤 선행이 최대 다수에게 최대의 혜택을 제공하는지를 판단하려면 착한 일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남을 돕는 ‘특정’ 방식이 ‘소용없다’거나 비판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선행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 보고 그것부터 먼저 실천하자는 말이다._본문 26쪽
숫자와 이성이 선행의 본질을 흐린다는 선입견을 깨지 못하면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무수한 기회들을 놓치고 만다. 이 책은 우리의 선행이 선의에만 의존하면 오히려 해악을 끼칠 수 있으며,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냉정한 판단이 앞설 때라야 비로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_본문 24쪽

 

 

 

목차

 

 

머리말 식수 공급과 해충구제
빈곤층의 삶을 개선시키는 선행은 무엇일까?
Chapter 1 당신은 상위 1퍼센트다
얼마를 더 벌어야 행복할까?
PART 1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정한 이타주의자
효율적 이타주의의 5가지 사고법
Chapter 2 선택의 득과 실
첫 번째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
Chapter 3 당신은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두 번째 이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가?
Chapter 4 재해구호에 기부하면 안 되는 이유
세 번째 방치되고 있는 분야는 없는가?
Chapter 5 1억2000만 명을 구한 사람
네 번째 우리가 돕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Chapter 6 투표는 수십만 원 기부나 다름없다
다섯 번째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PART 2 착한 일을 할 때도 성과를 따지는 냉정한 이타주의자
효율적 이타주의의 실천적 해법
Chapter 7 CEO 연봉과 기부금
가장 효율적으로 남을 돕는 곳은 어디일까?
Chapter 8 차라리 노동착취 공장 제품을 사라
착한 소비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Chapter 9 열정을 따르지 마라
세상을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직업은 무엇일까?
Chapter 10 빈곤 대 기후변화
어떤 문제가 더 중요할까?
결론 효율적으로 남을 돕고 싶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부록 착한 일을 하기 전에 물어야 할 4가지 질문

 

 

< 출처 : 교보문고 >

:
Posted by sukji

 

 

 

초협력사회 : 전쟁은 어떻게 협력과 평등을 가능하게 했는가 / 피터 터친

303.4 T932uKㅇ

사회과학열람실(3층)

 

 

책소개

 

인간은 어떻게 협력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왔을까?

작은 마을에서부터 도시나 국가에 이르기까지, 큰 무리를 지어 낯선 사람들과 협력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인 ‘초사회성(ultrasociality)’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그 이유를 밝혀냄으로써 인간사회의 역사를 설명하는 『초협력사회』. 사람들이 대부분 완전히 남남인, 수백만 명으로 구성된 거대한 사회에 살아가며 큰 집단으로 협력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간의 협력 규모는 자꾸 작아져 작은 수렵채집 무리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작은 무리에서 거대한 국민국가로 바뀌게 만든 동력은 무엇일까?

저자는 문화진화론적 분석을 통해 이것의 답을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쟁과 갈등,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전쟁이라고 이야기한다.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고대국가를 만든 것도, 그것을 무너뜨려 더 좋고 더 평등한 사회로 대치한 것도 전쟁이었다. 한마디로 전쟁은 파괴하면서 동시에 창조하는 힘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초사회성의 진화를 추진하는 것이 폭력, 즉 서로 전쟁을 하는 사회이고 궁극적으로 폭력을 줄이는 것 역시 초사회성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어떤 집단이 등장해서 융성, 쇠락, 소멸하는 과정은 개체들 간의 경쟁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그 간극을 집단 간의 경쟁에 대한 분석이 메워줄 수 있다고 보는데,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이라고 강조한다. 국가는 전쟁의 압력에 대한 반응으로 진화했고, 협력의 규모가 커진 국가를 결속하는 힘은 제도와 문화 양쪽에서 ‘공진화’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에 빗대어 전쟁을 ‘파괴적 창조’의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협력의 진화, 전쟁의 파괴적인 면과 창조적인 면, 평등이 진화해온 궤적 등을 풀어내고자 한다.

 

 

출판사 서평

 

협력은 강력하다!

인간사회의 역사에 관한 일반이론의 탄생

인간사회의 진화를 추적하는 시간여행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7만~3만 년 전의 인지혁명과 함께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했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이 아니라 역사적 서사가 호모 사피엔스의 발달을 설명하는 일차적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지혁명 이후에도 사피엔스의 진화는 지속되었다. 특히 협력하는 인간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진화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인류는 위대한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진보를 이루어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은 15개국이 합작하여 이뤄낸 프로젝트로, 인류가 협력에 놀라울 정도로 소질이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인간은 어떻게 이처럼 협력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왔을까? 인간의 행위를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유한 인간 개체들의 이해타산과 경쟁 그리고 갈등의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일반적인 진화론에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이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수십 명 정도의 사람들로 구성된 수렵채집사회로부터 거의 완전히 남남인 수백만,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현대사회까지, 인간은 어떤 진화의 과정을 겪어왔을까? 이 책은 초사회성(ultrasociality), 즉 큰 무리를 지어 낯선 사람들과 협력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그 이유를 밝혀냄으로써 인간사회의 역사를 설명하고자 한다.

‘파괴적 창조’로서의 전쟁, 인간의 협력을 이끌다

침팬지나 고릴라 무리가 우두머리 중심의 위계적인 사회구조를 갖고 있는 데 반해, 약 20만 년 전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진 현생 인류는 진화 여정의 초기에 알파 메일(지배자 수컷)을 제거했다. 침팬지나 고릴라 집단에서는 싸우는 능력만으로 지배 위계가 결정되었지만, 인간 남자는 힘이 세고 공격적이라고 해서 멋대로 약한 사람들을 지배하지 못했다. 무리 속의 다른 이들이 돌이나 활과 같은 발사식 무기로 횡포를 부리려는 신흥강자를 추방하거나 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소년 다윗이 정확한 돌팔매질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 결과 수렵채집사회의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협력적이고 평등한 사회에서 살 수 있었고, 완력보다는 연합이나 제휴를 위한 사회적 지능, 즉 협력하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그러나 농업이 도입된 이후 불과 수천 년 사이에 인간은 과거의 평등주의를 포기하고 전제주의를 받아들였다. 정착지를 기반으로 부족 간의 전쟁은 더욱 격렬해졌고, 전쟁에서 지면 살육당하거나 살아남더라도 정착지를 떠나 생존하기가 어려웠다. 참담한 패배를 면하기 위해 부족과 마을은 더 큰 규모의 사회로 결합해야 했다. 이런 결합은 동맹 관계나 좀 더 중앙집권적인 군장사회로, 나아가 대규모 국가로 발전했다. 고대국가에서 통치자는 신격화된 반면, 노예제는 예사였고 인신공양도 일상적이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학자는 『총, 균, 쇠』에서 최초로 농사를 지을 지역을 결정한 것은 지형이었고 그것이 이후 인간 역사를 엮어갔다고 주장한다. 즉, 농업의 시작이야말로 문명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터친은 농업이 복잡사회로 진화하는 데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역사적 실례를 들어 반박한다. 국가를 기능하게 하는 관료제나 조직화된 종교 같은 제도가 만들어지려면 커다란 비용이 든다. 그런 비용에도 불구하고 제도들이 생겨난 것은 올바른 제도를 갖추지 못한 사회는 경쟁력이 떨어졌고 소멸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쟁이란 전쟁의 형태로 나타났다. 만연한 전쟁은 더 큰 사회를 선택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흥미롭게도 이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군주를 가능하게 한 것도 전쟁, 또 이 전제군주를 몰아내고 더 평등한 사회로 다시 한 번 방향을 전환하게 한 것 또한 전쟁이었다. 이것이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1200년 사이 차축시대에 나타난 획기적인 전환이다. 조로아스터교, 불교, 유교와 도교 등 보편적 평등윤리를 주장하는 차축종교가 발생하고 이를 통치 이념으로 삼는 거대 제국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거대 제국은 기원전 1000년경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나타난 혁신적인 군사기술, 즉 기마술이 추동력이 되어 발생했다. 이로써 기원전 500년을 전후로 몇 백 년 동안 군사혁명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전쟁이 급증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또 전쟁의 결과로 출현한 이처럼 전례 없는 규모의 제국이 붕괴하지 않으려면 이 복합집단을 묶어주는 접착제가 필요했다. 이제 국가는 생존하기 위해 백성을 탄압할 여유가 없었다. 국가의 생존이 평민을 무장시켜 대군을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접착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차축종교로, 이들 종교의 등장과 함께 평등주의 윤리 또한 출현한다.

인간사회의 평등은 Z형으로 진화했다

위에서 간략히 살펴본 대로 인간사회의 폭력과 불평등은 선형적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평등한 사회를 이루며 살던 인간들은 극도의 불평등한 시기를 거쳤고, 이는 또 한 번의 대전환을 겪어 노예제는 불법화되고 귀족들은 특권을 박탈당하는 등 다시 평등한 시대를 열게 되었다. 즉, 평등은 Z자 형태로, 지그재그로 진화해왔다.
흔히들 ‘이성의 시대’로 알려진 17~18세기부터 인권의 개념이 대두되었고 그 이전의 인간 역사는 ‘전제주의의 시대’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극심한 형태의 불평등과 전제주의는 이미 차축시대부터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증거는 그리스 철학자부터 구약의 선지자나 인도의 포기자와 중국의 현인에 이르기까지 차축시대 여러 사상가들의 저술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고대국가를 만든 것도, 그것을 무너뜨려 더 좋고 더 평등한 사회로 대치한 것도 전쟁이었다. 한마디로 전쟁은 파괴하면서 동시에 창조하는 힘이다. 터친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에 빗대어 전쟁을 ‘파괴적 창조’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초사회성의 진화를 추진하는 것이 폭력, 즉 서로 전쟁을 하는 사회이고 궁극적으로 폭력을 줄이는 것 역시 초사회성이라는 것이다.
터친은 흔히 집단선택론이라고 알려진 다수준 선택론과 문화진화론에 의거해 전쟁이 협력의 진화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설명한다. 1970년대부터 진화론은 하나의 유기체만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 연구에 접목되어 변이와 무작이적 부동, 선택 같은 생물학적 진화의 핵심 개념이 사회 분석에도 적용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 과정에 대한 수학이론인 문화진화론으로 발전했다. 문화진화론은 제각각인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하부조직의 집합체가 아니라 서로 연접된 통합체로서 사회를 분석하는 도구다. 터친은 이 책에서 이런 문화진화론적 분석을 통해 협력과 전쟁이 소규모 사회에서 대규모 사회로 이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설파한다.

조직 내의 경쟁이 중요한가 협력이 중요한가 ? 엔론 사태의 교훈

2001년 12월, 세상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했다. 흔히 회계 부정으로 몰락한 것으로 알려진 엔론이 파산한 것이다. <비즈니스위크>는 엔론의 파산에 대해 “누구의 책임인지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문도 없었다. 그것은 제프 스킬링”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제프 스킬링은 1997년에 엔론의 사장 겸 CFO가 되고, 2001년에 CEO가 된 사람이다.
스킬링은 엔론에 ‘실적평가위원회’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엔론 직원들은 이를 ‘등수 매겨 내쫓기’라고 불렀다. 실적 중심으로 내부 경쟁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직원들 간의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화장실에 갈 때도 컴퓨터를 끄거나 암호를 걸었고, 옆자리 동료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이런 치열한 경쟁의 분위기는 비윤리적인 행위와 재정적 부정으로 이어졌고, 결국 엔론의 붕괴를 초래했다.
공동의 목표를 이루려는 집단이나 사회가 능력을 갖추려 할 때 그 토대가 되는 것은 협력이다. 이것은 국가 같은 정치조직뿐 아니라 기업에도 해당된다. 그러나 스킬링이 엔론에서 한 일은 집단 내의 경쟁을 극대화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동료의 뒤통수를 치고 상호불신을 조장하는 행위였다. 다른 말로, 스킬링은 직원들끼리 협력하고 상사에 협조하고 회사에 도움을 주려는 분위기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그런 그들에게 어찌 보면 붕괴는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역사에 관한 일반이론의 탄생

터친의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인간사회의 역학을 문화진화라는 틀로서 바라보고 그것을 수학적 모형으로 분석하며 데이터로 검증해낸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터친은 스티븐 핑커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개진한 주장을 비판한다. 핑커는 『선한 천사』에서 역사적으로 인간사회에서 폭력이 엄청난 폭으로, 선형적으로 줄어들었다고 쓴다. 그리고 이 폭력의 감소는 인간 역사에서 거의 우연적인, 핑커 자신의 표현을 따르면 ‘외인성’의 발전이 수없이 누적되어 이뤄진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화를 설명해주는 단 하나의 통합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통합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터친이 하고 있는 작업이다. 특정한 하나의 제국이 무엇 때문에 생성, 쇠퇴, 소멸되었는가가 아니라 제국 일반은 무엇 때문에 생성되고 쇠퇴하며 멸망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핑커는 방대한 자료를 제시하며 역사상 폭력의 행위들을 실증하지만 정작 폭력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을 뿐이며, 폭력이 감소한 이유를 결국 인간 개인의 심리 상태에서 찾는다. 그에게 문화적, 물질적 환경 변화는 이런 환경이 개인의 심리 상태에 미치는 영향의 측면에서만 중요할 뿐이다. 반면 터친은 어떤 집단이 등장해서 융성, 쇠락, 소멸하는 과정은 개체들 간의 경쟁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그 간극을 집단 간의 경쟁에 대한 분석이 메워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국가는 전쟁의 압력에 대한 반응으로 진화했고, 협력의 규모가 커진 국가를 결속하는 힘은 제도와 문화 양쪽에서 ‘공진화’했다.
역사에 관한 일반이론을 세우기에는 수학이 제격이다. 역사에서 ‘그냥 그렇게 된 것’이라고 눙치고 넘어가는 부분을 양적으로 입증 가능한 설명, 즉 과학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터친을 위시한 학자들의 노력은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열고 있다. 역사의 여신 클리오(Clio)와 변화를 다루는 학문인 동역학(dynamics)의 조어인 역사동역학은 역사거시사회학과 경제사와 문화진화론 같은 다양한 분야의 성과를 종합해 역사적 동역학의 모형을 만들고 실험한다. 그리고 이런 모형을 체계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들 학자들이 구축하고 있는 세샤트-지구사 데이터뱅크(http://seshatdatabank.info/)다. 고대 이집트의 필사와 기록의 여신에서 이름을 따온 세샤트는 수많은 역사가들과 고고학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과거 인간사회에 관한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을 모으고 체계적으로 조직화한 문화진화론의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베이스로, 이를 통해 인간사회의 진화에 관한 여러 경쟁 이론들이 엄밀하게 실증적으로 검토될 전망이다.

협력의 진화, 전쟁의 종말

터친이 전쟁으로 인간사회의 진화를 분석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지지하거나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사회의 진화가 흘러온 방향에서 전쟁의 역할을 엄밀하게 지적하고 분석할 뿐이다. 사실 전쟁과 협력은 언뜻 매우 배치되는 단어 같지만 서로 뗄 수 없는 역동적 관계를 맺고 있어서, 전쟁이 협력의 규모를 키웠고 그렇게 커진 사회의 규모로 인해 폭력이 줄어들었다. 결국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도 전 세계적인 규모의 협력이 필요하다. 터친은 평화가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며 능동적인 수완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현대사회는 경쟁에 있어서도 질적인 변화를 겪은 듯하다. 경쟁의 수단이 전쟁보다 오히려 경제로 옮겨갔다고도 볼 수 있다. 여전히 세계는 전쟁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부를 기반으로 한 경쟁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에서 터친의 주장을 간략하고 거칠게 요약해보자면, 인간의 탁월한 협력 능력은 전쟁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것이다. 터친은 농업시대부터 차축시대까지 인간사회의 궤적을 추적하여 전쟁이 협력하는 인간사회의 진화를 이끌어냈고 그렇게 규모가 커진 인간사회가 궁극적으로 전쟁을 줄일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까지 내놓는다. 협력의 진화, 전쟁의 파괴적인 면과 창조적인 면, 평등이 진화해온 궤적 등을 풀어냄으로써 ‘협력의 과학’을 이용해 효과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수단까지 개발하는 것이 터친의 야심찬 포부다.

 

 

목차

 

추천의 글

1장 초사회성의 퍼즐
- 괴베클리 테페부터 국제우주정거장까지

2장 파괴적 창조
- 문화진화는 어떻게 크고 평화롭고 부유한 초협력사회를 만들어냈을까

3장 협력자의 딜레마
- 이기적인 유전자, ‘탐욕은 좋은 것’ 그리고 엔론 사태

4장 경쟁하려면 협력하라
- 팀 스포츠에서 배우는 협력의 비밀

5장 신은 인간을 만들었지만 샘 콜트는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 초기 인간은 어떻게 알파 메일을 제압했는가

6장 인간의 전쟁 방식
- 파괴적 창조의 힘으로서의 전쟁

7장 신격화된 왕의 탄생
- 알파 메일의 반격

8장 과두제의 철칙
- 왜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는가

9장 역사의 축
- 차축시대의 영적 각성

10장 인간 진화의 지그재그
- 그리고 역사의 과학

감사의 말

참고문헌

 

< 내용 출처 : 교보문고 >

:
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