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창조성은 어디서 비롯될까? 꾸준히 작업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22 후기청소년 문화예술교육 상상만개+ ‘친구가 예술가’에 참여한 5인의 문화예술교육가가 밝히는 소소하고도 개인적인 일상 속 루틴을 들어보고, 우리 자신의 예술적 회복이자 창조성의 근원이 되어줄 ‘창조적 습관’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여정을 준비하는 일상여행자
김원익_연극연출가·작가
눈을 뜬다. 익숙하고 편안한 내 방에 빛이 가득하다. 하루가 시작됐다. 하지만 왜 난 시작하지 못하고 있지? 침대에 누워 엄지손가락이 폰 위에서 춤추는 걸 보느라 시작이 계속 미뤄진다. 때때로 시작을 미루고 미루다 멀어지는 하루와 작별하고, 또 다른 하루와 만나기도 한다. 익숙한 일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나는 여행을 떠난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일상여행을.
– 일상여행 가이드 –
[안 내] 일상여행은 집 밖에 나가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익숙한 집을 벗어난 모든 공간이 여행지다. 그러므로 작업할 공간을 찾는 것 역시 여행지를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순서1] 공간을 찾으면 여행에 가져갈 짐을 챙긴다.
[순서2] 여행 준비가 끝나면 문을 열고, 문밖을 나선다.
[순서3] 오늘은 왼발부터, 매번 똑같은 길보다는 다른 길로, 목적지를 생각하며 걷기보다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을 바라본다.
[순서4] 여행을 즐긴다.
어떤 여행은 충만함을 가지고 돌아온다. 어떤 여행은 아무것도 없이 허무하게, 어떤 여행은 시기와 질투만을, 어떨 땐 계절과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온다. 하지만 어찌 되든 상관없다. 평범한 외출을 여행자의 여정으로 바꿔보는 것, 그 생각의 시작 자체가 창조적 습관이 아닐까.
달콤한 새벽, 힘찬 명상
김준수(몬구)_뮤지션·문화예술교육가
새벽 5시에 다크초콜릿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찾았다. 새벽 5시. 고요한 시간은 숨소리와 음악을 투명하게 담는다. 처음 이 시간에 일어날 땐 잠에서 깨는 데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 루틴을 6년 정도 가진 지금은 금세 깬다. 언젠가 동료 뮤지션들에게 이 시간에 작업한다고 말하니 ‘미라클 모닝’을 하냐고 물었다. 하지만 난 그게 뭔지 모른다. 밤을 새우고 맞이한 새벽과 일찍 일어난 새벽은 작업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밤샘 새벽은 몽롱한 안개의 사운드를, 이른 새벽은 투명한 사운드를 선사한다. 새벽의 두세 시간이 작업하기엔 짧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시간을 쌓아 앨범 두 장과 에세이 한 권을 거뜬히 완성할 수 있었다. 음악가는 시간을 다루는 직업이라 믿는다. 나무 의자에 앉으면 다크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어 녹인다. 쓴맛에 숨어있는 달콤함을 느끼며 헤드폰을 쓰고 작업을 시작한다. 최근에는 아몬드도 곁들인다. 캘리포니아산이다. 이 아몬드에 주어진 햇살을 상상하니 겨울인데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늘 새벽에는 또 어떤 이야기와 사운드가 내게 주어질까.
일주일에 한 번 오래달리기
불안을 가라앉히는 게 창작을 오래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확신한다(무엇을 더 배우고, 구매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대개는 일요일 아침에 10~15km 정도를 뛴다. 4년 정도 지켜오고 있는 루틴인데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생각이 너무 많은 내가 욕심과 불안을 비울 수 있는 시간이다. 호흡에 집중해 뛰다 보면 흡사 힘찬 명상처럼 느껴진다. 집에서 나갈 때는 일기예보를 보고, 달리기 시작할 땐 하늘과 구름, 주변 환경을 살핀다. 가끔은 추위와 더위, 꾀병과 게으름 같은 변명이 피어나지만 5분 정도 지나면 ‘역시 나오길 잘했어’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가서도 이 루틴을 지키려 한다. 한번은 강릉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며 뛴 적이 있다. 황홀했다. 무엇보다 파도 소리는 매우 음악적이었다. 일상에서는 거의 비슷한 코스를 뛴다. 그런데도 항상 무엇인가 새롭다. 그런 느낌은 내게 변함없는 일상과 새로운 발견에 대한 희망을 선사한다.
하루를 움직이게 하는 해와 달
문해주(월광)_설치예술가·문화예술교육가
땀, 몸과 외부와의 마주침
아침의 시작은 달리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의 해와 하늘을 본다. 하늘의 색감으로 오늘의 날씨를 상상한다. 하늘을 향해 ‘세 번의 외침’을 한다. 비밀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꾸준히 하는 나만의 루틴이다. 달리기를 위한 그날의 옷을 입고, 그냥 나간다. 여기서 ‘그냥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가지 않을 핑곗거리를 찾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나간다. 50분의 달리기가 끝날 때쯤 몸이 재부팅되어 집으로 들어간다. 온몸에 땀이 흐르는 그 순간 몸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을 좋아한다. 나의 몸이 컴퓨터 로딩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커피, 코와 입 사이의 연기
아침을 꼭 챙겨 먹고, 커피를 마신다. 코와 입 사이에 닿는 커피의 뜨거운 연기를 좋아한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리서치한다. 가끔은 멍을 때리기도 한다. 명상하기에 제일 좋은 시간. 이 시간은 ‘나만의 꿀잼’이다. 멍을 때리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책을 보다 좋은 문장을 만나고, 다양한 장르의 강연 영상을 보며 좋은 말들을 노트에 잘 기록한다. 그것을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기를 좋아한다. 나에게는 하루 중 이 시간이 삶의 중심이며, 오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준비시간이다. 이 시간에 나온 끄적거림이나 생각들, 드로잉들이 작업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작업은 주로 이동하는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즐기면서 시작된다. 다른 지역에 나만의 공간을 정해 작업을 한다. 가는 도중에 길가에 놓여진 사물과 버려지거나 방치된 의자 사진도 찍고, 음악을 들으며 가끔 길에서 춤도 춘다.
목소리, 일상의 기록과 끄적거림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을 사진, 영상, 작업노트의 끄적거림 등으로 기록해둔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수많은 이미지와 다른 이들의 목소리, 경험들이 나의 몸으로 기억된다. 그것을 다시 들여다보고 하루를 정리한다. 그때는 주로 혼자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과가 끝나고 나의 친구는 맥주, 침묵, 달, 기록된 사진과 그들의 목소리와 그날의 끄적거림들이다. 이것의 작업의 원동력이 되고, 내일 다시 뜨는 해를 보기 위해 오늘의 달을 보며 잠을 자고 다시 눈을 뜬다. 내일의 시작은 역시 또 ‘달리기’다.
출렁거리는 일상에서 파도타기
송한얼_뮤지션·바디퍼커셔니스트
공연예술가로 살며 일상의 루틴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일 년 안에 비수기와 성수기가 존재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과 여유 있는 나날이 있다. 오늘 그린 이 시간표는 비수기와 성수기를 적절하게 섞어낸, 어쩌면 이상적이고 어쩌면 현실적인 그림이다. 실제 나의 삶은 어떤 날은 하루종일 사무업무로 시간을 보내고, 어떤 날은 공연과 워크숍으로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또 어떤 날에는 온종일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파도타기 하듯 출렁거리는 일상에서 중심 잡기란 변화무쌍함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이 파도를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파도를 잘 타기 위해 마음을 돌보는 일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의 일상과 마음 돌보기
나의 마음 돌봄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사소한 것으로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정리하는 것, 환기를 시키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이 있다. 사소하지만 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정리된 공간과 함께 마음이 편안해지고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낀다. 하고 있는 예술 활동 대부분이 공동 작업이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의 마음 돌보기에 중요한 부분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며 휴식을 취하거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나와 대화한다.
연대하기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한 만큼 사람들과의 시간도 중요하다. 에너지와 영감을 주고받으며 이 파도타기에 ‘혼자’가 아닌 연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은 파도 타는 삶을 고독하지 않게 만든다.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파도를 즐기는 것, 너무 경직되어 바다에 빠지지 않게, 너무 들떠서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나는 오늘도 나의 마음을 돌본다.
연중무휴, 꺾이지 않는 마음의 균형
황호빈_설치미술작가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에서 가장 큰 숙제는 그 ‘자유로움’인 것 같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 일에 매일의 노력을 매진해나간다는 것은 썩 낭만스럽지만은 않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는 ‘여행’을 십수 년 동안 이어오다 보니 그 과정에는 흐르는 대로 떠다니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상황이 꽤 있었다. 그 어긋난 곳으로부터 다시 돌아와 행로에 들어서는 것에는 몇 배의 고달픈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왜 꼭 예술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매일 눈 뜨면서 스스로한테 던지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 답 없는 문제는 애초에 질문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말 그대로 답을 내리자고 하는 질문은 아니며 이 질문의 행위 자체가 원동력이 된다. 매일, 이 질문과 싸우는 재미에 ‘예술하는 삶’을 즐기는 것이다. 싸움은 지력과 체력이다.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꺾이지 않는 마음’은 확실히 중요하다.
아기자세와 커피를 위한 아침식사
지속적인 발자국을 찍어나가는 것에는 몸, 머리, 마음의 ‘균형’이 관건이다. ‘매일’에 질리지 않으려면 ‘디폴트(default)’가 필요하다. 아침에 깨어나서 매트에 기어가서 ‘아기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몸의 디폴트를 설정하여 거기서 ‘새로이 태어나’고, 살살 스트레칭 루틴을 진행하다가 눈이 떠지면 물을 끓이고 커피를 갈아 정성 들여 내린다. 공복은 위험하니 누룽지와 계란도 함께 데워 먼저 먹어준다. 몸을 달래고, 커피를 주입하기 시작하면서 머리도 새로이 태어나는데 이때 내가 태어난 이유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본다. 갓 깨어난 머리이기에 신선한 생각들이 몽글몽글 희미하게 피어오른다. 그 생각들을 붙잡아서 그림이나 글로 묶는다.
균형을 이룬 하루의 보상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창작의 만족감과 함께 카페인이 몸과 머리를 이어주며 마음이 깨어나면서 온전한 상태로 현실에 진입한다. 이제 지나간 날들이 남긴 맥락을 짚으며 메일을 체크하고 각종 프로젝트의 데드라인을 확인하며 ‘생산성’ 모드로 전환한다. 오전에 긁적인 것들을 구현하거나, 오전 내내 충분히 내면의 시간을 가진 상태라서 별로 불만 없이 생업에 가까운 – 조금은 괴로운 일들을 소화한다. 다시 생각해도 중요한 것은 균형이고, 그 균형을 이루는 각 부분의 연결성이 적절하다면 꽤 괜찮은 하루가 된다. 그렇게 하루해가 질 때쯤 보상으로 ‘일반적인’ 일과들을 즐긴다. 맛있는 식사, 자전거 타기, 반려견 산책하기 등등이다.
예술가를 연중무휴 자영업자로 상정하는 것이 위로가 된다. 예술이 유난히 낭만, 꿈, 자유 같은 것들과 연관되면서 삶의 극적인 전개를 기대하게 한다는 점이 오히려 괜한 걸림돌을 생성하는 것 같다. ‘자율적인 매일의 순환’ 속에서 적절한 즐거움을 건강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소히 만족할 수 있다면 예술은 이미 그 예술가한테 큰 선물을 준 것이리라.
김원익
사람을 좋아해 연극을 시작했고,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연극을 계속 하고 있다. 연극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영향에 대해 계속 고민하며 연극과 놀이 중이다. 현재 창작집단 “플레이풀리” 소속으로 작가와 연출로 작품을 만들며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과 사물 주변에 함께하는 것들을 들여다보고 보이지 않는 이면의 이야기들을 작업으로 풀어낸다. 개인의 숨겨진 역사성과 보이지 않는 관계들을 영상설치와 조형 작업으로 시각화하며 참여자들과 참여 가능한 예술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포함한 여러 차별적 경계들 사이,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고민 속에서 예술 작업 및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moonnine84@naver.com ▸인스타그램 @moonnine84 ▸페이스북 @moonhaejoo
송한얼(어리)
무엇이든 악기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예술 활동을 해왔다. 현재는 바디퍼커션그룹 녹녹에서 활동하며 몸을 두드려 연주하는 바디퍼커션 공연과 세대와 문화를 넘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건강한 예술 문화를 전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송한얼 @she.eori ▸바디퍼커션그룹 녹녹 인스타그램 @knockknock_bodypercussion
황호빈
회화 전공 출신의 설치미술작가로 인간의 자아 및 사회적 정체성, 개인과 집단의 상호 관계 속에서의 균형에 대해 다양한 시각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한다. 주요 전시로는 보더리스 사이트(문화역서울284, 2021), 베니스건축비엔날레(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2020), 부산비엔날레(2014) 등이 있으며 현재 문화다양성, 다원예술 등을 키워드로 창작 활동에 임하고 있다. binoh64@naver.com ▸인스타그램@hobin.h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