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3분 보고 15분 글쓰기…“향유를 넘어 치유로” 교육.기타2022. 12. 20. 10:07
그림 3분 보고 15분 글쓰기…“향유를 넘어 치유로”
‘그림으로 글쓰기 수업’하는 임지영 예술교육가
그림 3분 응시한 뒤 15분 글쓰기
아이부터 어른까지 뜨거운 반응
직관력과 창의력·공감까지 발달
“향유 넘어 치유와 통찰 얻었다”
예술교육가이자 문화예술 플랫폼 ‘즐거운예감’ 대표인 임지영씨는 “그림 한점 앞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그 특별한 눈을 지닌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자 힘이 된다”고 말했다. 사진 임지영씨 제공
방탄소년단(BTS) 리더 알엠(RM)은 유명한 예술 애호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보며 시인을 꿈꿨다고 한다. ‘미술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며 틈틈이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2년 전 다소 특이한 기부로 화제가 됐다. 그는 미술관 접근이 어려운 지역의 도서관과 학교에 그림 도록을 보내달라며 국립현대미술관에 1억원을 기부했다.
지난 17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인사동 코트’에서 만난 예술교육가 임지영씨는 이에 대해 “예술이 한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잘 알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영씨는 1994년 <아동문예>에 동시로 등단한 뒤 동시와 동화 창작을 잇는 동시에 10년간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예술교육을 기획했다. 전문가들을 초청해 강좌와 현장 탐방 등 다양한 형식의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수강생들은 프로그램을 듣는 그때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는 예술이 그들의 삶에 스며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삶이 예술을 통해 풍성해지고 행복해졌다고 믿는 그는 ‘어떻게 하면 예술이 수강생들의 삶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자신이 예술을 즐기는 방법을 그대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봤다.그것이 바로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이었다. 수업 방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림을 3분간 응시하고 나서 15분간 느낀 점을 써내려간 뒤 돌아가면서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나누는 방식이다.
평생 그림을 즐기며 살아온 그는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그림 앞에 잠시 서서 느낀 점을 ‘휘리릭’ 써왔는데, 그걸 수업 방식으로 옮겨본 것이었다.어린이부터 청소년, 성인까지 이 수업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들은 “수업이 너무 재밌어요! 기다려져요!” “이 수업을 하고 나면 어딘지 시원해요” “다른 친구들 이야기 듣는 게 너무 신기해요!”라며 수업을 계속 신청했고, 주말에 엄마 손을 이끌고 미술관에 가기도 했다.
엄마들은 “아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예술 수업인 줄 알았는데 세계관 수업 같다”라고 평가했다. 2년 전 학습공동체인 ‘숭례문학당’에서 처음 시작한 수업은 도서관, 미술관, 교육청 등에서 수업 요청이 이어지자
임씨는 문화예술 플랫폼 ‘즐거운예감’(artwith.kr)을 세워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림을 감상한 뒤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고, 만들기를 해볼 수도 있고, 토론을 할 수도 있는데, 글쓰기와 연결시킨 이유에 대해 그는 “세상에 수많은 향유와 성장의 방식이 있지만, 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단 하나의 성장 방법은 글쓰기”라며 “모든 건 결국 ‘쓰는 삶’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 한점을 들여다보며 몰입하면서 직관력, 이미지 문해력이 성장하고, 그림으로 글을 쓰면서 사고력, 창의력도 쑥쑥 커가고, 자기가 쓴 글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표현력이 극대화되고 다른 아이의 글을 들으면서 관점의 확대를 경험하게 된다”며 “무엇보다 타인의 관점을 들으면서 공감력이 커지고 좋은 삶의 태도를 배우는 게 가장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하필 왜 ‘15분 글쓰기’일까? 그는 “너무 오래 시간을 주면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 쉬운데 15분은 글을 못 쓰는 사람도 못 써도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고, 잘 쓰는 사람도 너무 잘 쓰려고 꾸밀 수 없는 마법의 시간”이라며 웃었다.수업 시간에 접하는 그림들은 자화상에서 출발해서 관계를 볼 수 있는 그림으로 이동하고, 나아가 사회와 세계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점점 더 확장되어 간다. 이에 따라 글쓰기 역시 ‘나’에 대한 이야기부터 출발해서 환경문제, 빈곤문제 등으로 확장되어 간다.
그림을 본 뒤 느낀 점을 글로 써보는 경험은 직관력과 문해력, 상상력 등을 골고루 키운다. 임지영씨 제공
원래 이 수업을 기획한 의도는 ‘예술 향유가 어렵지 않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수업을 들은 성인들 중에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미술관에 다니기 시작하고, 그림을 사서 곁에 두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기획 의도대로 예술이 삶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성인들 중에는 “향유를 넘어 치유를 받았다” “통찰과 성찰을 얻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는 “치유는 생각지도 못한 효과였다”면서 “그림 한점으로 글을 써서 읽으면서 울고 놀라워하고 후련해하는 걸 보면서 예술이 우리 마음에 구체적으로 작용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저 또한 이 수업을 통해 많이 성장했어요. 저는 원래 ‘개인 향유자’였는데 사람들과 함께 얘기하면서 사유가 확장되는 걸 느끼고, ‘함께’의 가치에 눈을 떴어요. 특히 아이들은 더욱 즉각적으로 타인의 관점에 놀라워해요.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썼나 궁금해서 귀를 쫑긋 하고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와 재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대단하다’고 감탄해줘요.”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 / 임지영 / 700.7 임79ㄱ 자연과학열람실(4층)
아이들의 변화를 경험한 엄마들, 수업에 참여해본 성인 수강생들의 요청에 ‘강사 양성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책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학교도서관저널)을 펴내 누구나 이 수업 방식으로 아이들을 이끌 수 있게 길잡이를 제시하기도 했다.
“예술은 공공재이자 복지”라고 말하는 그는 지역 문화예술단체인 ‘서초문화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지난 6년간 화가들로부터 그림을 기증받아 전국 50곳의 보육원에 그림 1천점을 전달해왔다.
그는 강원도 화천의 한 보육원에 갔을 때 만난 소년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풍선이 하늘 가득한 그림을 보육원 식당에 걸자, 덩치가 큰 한 남자 고등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여기 온 지 10년이 넘었는데요. 이 식당이 이렇게 아름다워진 건 처음이에요!” 임씨는 울컥해서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그림 한점 앞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그 특별한 눈을 지닌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자 힘이 돼요. 하지만 그건 이미 내 안에, 내 눈에 깃들어 있어요.”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그 특별한 눈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는 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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