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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이 된 한의학…7개 센서로 맥 짚어낸다 

 

한의학연, 2008년부터 맥진기 개발
맥 세기·깊이·너비 등 지수화 성공
주관적 판단을 객관적 수치로 표현
전통의서의 ‘긴맥’ 측정지표도 개발

월경통 환자들 대상 임상시험 결과
“깊이 얕고 가압 작고 긴장도 높아”
정상인그룹과 맥파 지표 차이 확인

 

 

 

한국한의학연구원 미래의학부 실험실에서 전영주 책임연구원이 맥진기로 임상시험 피험자의 맥을 측정하며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각종 맥파를 확인하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제공

해마다 10월에 노벨상 시상식을 앞두고 노벨상에 빗대어 기발한 연구에 수여되는 이그노벨상의 2015년 생리학상 수상은 150종의 곤충에게 물려서 곤충마다 아픈 정도를 고통지수로 정리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저스틴 슈미트 박사와 곤충에게 어디를 공격 당하면 가장 아픈지 한 달 넘게 200번 이상 온몸에 벌침을 맞아가며 연구한 코넬대 대학원생 마이클 스미스에게 돌아갔다. 슈미트는 1983년 총알개미에게 물리면 벌한테 물린 것보다 150배 더 아프다고 발표했다. 스미스는 슈미트가 정의한 ‘슈미트 곤충 침 고통 지수’를 사용해 벌침에 쏘였을 때 느끼는 통증을 수치로 기록한 뒤 통계를 내어 인체에서 벌침에 쏘였을 때 가장 아픈 부위는 콧구멍, 윗입술, 성기 순이고, 가장 아프지 않은 곳은 정수리, 팔뚝, 가운뎃발가락이라고 밝혀내어, 2014년 생물 의학 분야 개방형 액세스 저널인 <피어제이>에 논문을 발표했다.

 

스미스가 실험에 적용한 ‘슈미트 곤충 침 고통 지수’는 병원에서 의사들이 일반적으로 환자의 통증을 수치로 표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치평가척도(NRS)나 시각아날로그평가척도(VAS)와 유사한 방식이다. 엔아르에스는 통증 없음을 0으로, 참을 수 없는 통증을 10으로 놓고 환자한테 자신의 고통이 어디쯤 해당하는지를 물어 통증 지수를 정하는 방식이다. 바스는 100㎜짜리 척도에서 환자가 자신의 통증 위치를 정하도록 해 그 길이로 좀 더 정밀하게 통증을 측정하는 방법을 말한다. 두 방식 모두 통증을 정량화하려는 노력이지만 환자의 주관적 판단이라는 한계가 있다.한국한의학연구원 연구팀은 월경통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통증으로 인한 맥의 긴장 정도를 지수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맥진이라는 한의사의 주관적 판단을 맥진기를 통한 공학적 방법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팀 논문은 네이처 출판그룹이 발간하는 온라인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에 실렸다. 한의학연구원 의료연구본부의 박정환 한의사는 “맥이란 바다에서 파도가 치면 물결이 해안까지 밀려오듯이 심장이 뛰면 혈액이 돌며 말초 부분까지 박동이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혈액이 돌면서 우리 몸의 장부와 관련된 증상들이 맥으로 나오고 맥을 짚어 장부의 정상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맥진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맥진은 한의학의 네가지 진단법 곧 망진(눈으로 보는 것), 문진(듣는 것), 문진(묻는 것), 절진(만지는 것) 등 사진 가운데 절진의 하나로,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방법이다. 우리 몸에는 12경락이 있는데 몸속의 6장6부와 연결돼 있어 장부에 문제가 있으면 경락에 나타난다는 것이 한의학의 요체이다. 문제는 맥진이 맥을 짚은 주관적 느낌으로 진단을 하기에 통증지수와 마찬가지로 객관화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한의사가 환자의 손목 특정 부위를 손가락으로 짚어 맥을 진단하고 있다. 맥진은 한의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진단방법이지만 주관적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맥진기 등 현대의학 기술로 맥진의 객관적 정량화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제공

 

 

전영주 한의학연구원 미래의학부 책임연구원은 “한의학연구원은 2008년께부터 맥진기를 개발해 맥진 결과를 객관화, 정량화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맥의 세기, 깊이, 너비 등을 지수화해 한의사한테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개발된 맥진기에는 7개의 센서가 달려 있다. 실제 손가락의 세포 센서 민감도는 수십배 높지만 7개 센서의 채널에서 측정되는 파형들로도 의미 있는 결과들이 나온다.연구팀은 한의학에서 맥학의 ‘바이블’로 여기는 <빈호맥학>에서 “긴맥(緊脈)은 한사(寒邪)가 원인이 되어 모든 통증을 주재하니”라는 문구에 주목했다. 맥을 짚어 나오는 28가지 맥상 가운데 긴장된 맥과 통증의 관계를 서술해놓은 부분이다. 연구팀은 긴맥과 통증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기 위해 월경통이 있는 20대 환자 24명과 월경통이 없는 대조군 24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했다. 임상시험에서 피험자들은 한의학연구원이 개발한 ‘키옴-파스’라는 맥진기로 월경기-난포기-황체가-월경기 등 월경주기에 따라 4번의 맥파 신호를 측정했다. 논문 제1저자인 배장한 선임연구원은 “기존에 개발된 맥의 깊이, 맥의 세기, 최적 가압 외에 긴장도라는 지표를 새로 정의해 정량화한 결과 월경기 때 환자군과 대조군 사이에 맥파 지표들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연구팀은 맥 깊이의 경우 맥진기로 맥을 짚은 손목 부위(요골동맥)에 천천히 같은 속도로 압력을 가할 때 센서가 접촉한 시점부터 압맥파가 최대로 나타날 때까지의 모터 이동거리로 정의했다. 맥의 세기는 최대 압맥파의 크기를, 최적 가압은 최대 압맥파가 나타날 때까지의 가압 크기를 말한다. 여기에 맥이 얼마나 긴장돼 있는지는 가압에 대해 저항력이 얼마나 큰지로 판단하는 방법을 썼다. 곧 긴장된 맥파는 말하자면 딴딴해져 있는 상태라서 압력을 일정하게 증가시킬 때 최대 압맥파가 나타나는 시간이 짧아지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연구팀은 가압에 따른 맥파의 저항 구간을 긴장도 지표로 정의했다.연구 결과 월경기 환자군의 맥은 대조군의 맥보다 긴장도가 높고 맥의 깊이는 얕으며 최적 가압 값은 더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월경기 이외의 난포기, 황체기 때는 두 그룹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월경통이 나타나는 시기에만 맥의 긴장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경희대한방병원과 함께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3명의 한의사는 맥진기 측정과 동시에 환자들의 변증을 진단했다. 변증이란 한의학에서 환자의 병의 위치와 원인을 살펴 진단하는 과정을 말한다. 진단 결과 환자군 24명 가운데 1명을 제외한 96%가 ‘기체어혈’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정환 한의사는 “기체어혈은 외부 한기로 인해 자연스러운 기와 혈의 흐름이 정체돼 천천히 흐르거나 혈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배장한 연구원은 “기체어혈로 진단된 통증 환자가 긴장된 맥의 특성을 보인다는 전통의학 고서 속의 이론을 맥의 긴장도라는 지표를 개발해 현대의학적 관점으로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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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