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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겨레 선정 올해의 책-국내서] 코로나 시대, 부조리와 차별 넘는 용기를 읽다

 

전염병 탓에 통째로 소거된 듯한 2020년. 그래도 우리는 살아갔고 사랑했고 슬퍼했고 분노했다. 사회 부조리와 모순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며, 굳어 움직이지 않는 현실에 끊임없이 작은 돌멩이를 던졌다. 그렇게 우리는 가까스로 한 걸음을 나아갔다. <한겨레> ‘책&생각’은 2020년과 작별하며 ‘올해의 책’을 국내서와 번역서 각 10권씩 꼽았다. ‘책&생각’ 필진과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책지성팀이 선정했다. 추천작 전체는 <한겨레> 누리집 ‘책&생각’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책 순서는 가나다순)

 

‘김지은들’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지은입니다 / 김지은 / 봄알람 /  364.153 김79ㄱ  사회과학열람실(3층)

 

<김지은입니다>는 권력이 자행한 성폭력과 사회가 가한 2차 폭력에 맞서 “살아서 증명한” 여성노동자 김지은의 기록이다. 김지은이 오랜 시간 당한 폭력, 이에 맞서온 투쟁의 시간이 침착하게 서술돼 있다. 김지은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이지만, 이 땅의 ‘김지은들’이기도 하다. 김지은들은 고빗길마다 이 책을 서로 권하여 함께 읽음으로써 연대하고 살아남았다. 안희정은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차 가해는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김지은들의 연대는 더욱 공고하여 권력의 폭력을 막아서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김지은이 왜 ‘피해 생존자’인지, ‘피해자 중심주의’는 왜 그토록 중요하며 필요한 것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필독서다.

 

윤지오를 매장한 군중혐오 해부

까판의 문법 / 조정환 / 갈무리 / 301.0951 조73ㄲ 사회과학열람실(3층)

 

장자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던 ‘용기 있는 의인’ 윤지오가 어느날 갑자기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윤지오의 증언 준비를 돕던 김아무개 작가의 ‘폭로’ 직후다. 윤지오에게 향하던 대중의 환호는 저주와 비난으로 뒤바뀌었다. ‘다중지성’을 연구해온 철학자 조정환은 윤지오를 맹공격하는 군중의 혐오 현상을 ‘다중지성의 범죄화’로 규정한다. 조정환이 <까판의 문법>과 <증언혐오>를 나란히 써낸 이유다. 이 책에서 조정환은 윤지오에게 씌워진 사기꾼이라는 누명을 벗기고 가해자중심주의 시각으로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유지해온 한국 사회를 비판한다. 진영 논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인권연대는 이 책을 올해의 인권책으로 뽑았다.

 

공감과 연대로 써내려간 검찰 고발장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 이연주 / 포르체 / 341.5101 이64ㄴ  사회과학열람실(3층)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십수년 전 검사 경력 1년’이나 ‘크로스체크가 필요한 사실들’을 주로 걸고 넘어진다. 1년이라 해도 검사 경력이 없는 이보다 검사 출신 법조인이 더 모를 리 없다. 기자의 취재 과정이 크로스체크이듯, 저자의 집필 과정 역시 사실 확인이 수반된다. 과거 기사화되었으나 금세 시야에서 사라진 검찰의 치부가 더 자세히, 이면까지, 기자들이 취재하지 않고 쓰지 않은 이후 이야기까지 서술돼 있다. 책을 읽으면 눈 녹듯 의구심이 사라질 텐데, 불편해서 또는 편견 탓에 멀리하는 이들도 적잖을 것이다. 책 말미에 담긴 집필 동기는 마음을 움직인다. 공감과 연대의 의지로 두려움을 이겨낸, 올해 가장 용기 있는 책이다.

 

성매매, 금융으로 다시 읽다

레이디 크레딧  / 김주희 / 현실문화 / 306.742 김77ㄹ 사회과학열람실(3층)

 

가해-피해의 구도 속에서 정치·도덕의 문제로만 다뤄지던 성매매 산업을 ‘금융’의 관점으로 새롭게 접근했다. 반성매매 단체에서 일했던 활동가 출신 연구자 김주희는 20대부터 70대까지 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 15명, 성구매자·업소 관리자·사채업자 등 성매매 산업 관계자 10인을 심층 인터뷰해 성매매 산업의 변화를 추적했다. 지은이는 300만원으로 시작한 선불금이 2억원까지 늘어나 성매매에 속박되는 다혜(가명)씨의 목소리를 전하면서 ‘부채 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오늘날 성산업의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또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오늘날의 성매매 산업을 작동시키는 원동력이며, 성매매 여성들은 이 구조의 밑바닥에서 착취·수탈 당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배달 노동자가 온몸으로 부딪친 현실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 박정훈 / 빨간소금 / 331.1 박73ㅂ 사회과학열람실(3층) 

 

4년차 배달 라이더가 온몸으로 파악한 플랫폼 노동의 실태.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인 지은이 박정훈은 플랫폼 기업이 빅데이터 독점을 바탕으로 식당 주인과 배달 라이더를 양방향으로 쥐어 짜는 메커니즘을 독자에게 ‘배달’한다. 식당 주인에게는 ‘디지털 임대료’를 받고, 배달 라이더에게는 빅데이터를 근거로 더 가혹한 노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주문 수, 라이더 수, 날씨 등 다양한 변인에 따라 실시간으로 다르게 책정되는 노동 조건(배달료), 배달 라이더가 어디에 있는지 중계돼 소비자에게 “노동 과정 감시자이자 사용자”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점 등 플랫폼 노동의 전반적 특징도 짚었다. 코로나19로 여느 때보다 배달 서비스와 가까워졌던 올해, 배달에 대한 사유를 넓히도록 안내한 책이다.

 

 

백낙청 교수의 50년 로런스 연구 총결산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  / 백낙청 / 창비 / 823.09 백211ㅅ  인문과학열람실(3층)

 

영문학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학문적 거점은 영국 소설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다.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는 50년에 이르는 지은이의 로런스 연구를 총결산하는 저작이다. 지은이는 마르크스부터 바디우까지 서양의 사상가들을 등장시켜 로런스와 대비시킴으로써 로런스 사상의 독창성을 부각한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려고 분투한 로런스를 개벽사상가로 주목한 대목이다. 로런스 사상을 19세기 이래 한반도 후천개벽 사상과 회통시킨다는 지은이의 뜻은 책 제목에서부터 번득인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로런스 사유의 핵심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로런스를 토대 삼아 형성된 백낙청 사유의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 일깨우는 어른의 자세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 사계절 / 정리 중

 

독서 교실을 운영하는 김소영 작가가 책을 읽으며 어린이와 나눈 이야기, 어린이에 관한 생각을 담았다. 어른들이 기다려준다면 신발 끈을 혼자 묶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현성이, “신수성찬”이라며 틀린 사자성어를 당당히 말하는 다은이 등 당차고 귀여운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세심하고 따뜻한 마음이 글의 바탕을 이룬다. 작가는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좋은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어린이들이 행복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다.

 

‘46년생 순자’가 거쳐 온 간난신고

연년세세  / 황정은 / 창비 / 811.32 황73ㅇ  인문과학열람실(3층)

 

황정은의 <연년세세>는 네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소설의 중심 인물은 46년생 ‘순자’. 돌림병과 전쟁으로 고아가 된 순자는 괴팍한 외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뒤 일찍 결혼해서는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 순자의 둘째딸 세진이 어머니를 모시고 철원에 있는 순자 외조부 묘를 파묘하러 다녀오는 연작 첫 작품 ‘파묘’는 한 인간의 한과 슬픔에 대한 공명의 필요성을 알려준다. ‘무명’(無名)에서는 순자의 호적 이름이 사실은 ‘순일’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겪었던 “그 숱하고 징그러운 이야기”들이 세세하게 회고된다.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말은 종종 오해와 실망을 낳는데, 그렇게 잘못 전송된 말이 초래하는 상처와 그에 대한 후회 및 용서 같은 감정의 문제도 소설에서는 섬세하게 그려진다.

 

 

노년에 절감하는 삶의 기쁨과 보람

오늘 하루만이라도  / 황동규 / 문학과지성사 /  811.15 황225ㅇ  인문과학열람실(3층)

 

시인 스스로 ‘마지막’일 수도 있다며 내놓은 신작 시집. 노화에 따른 불편과 죽음에 대한 의식 속에서도 뜻밖에 씩씩하고 명랑한 어조가 인상적이다.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 결사적으로 아름답다”(‘오늘 하루만이라도’)는 시구대로, 시인은 말년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기쁨과 보람 그리고 여유와 해학으로 독서를 즐겁게 한다. 시 속에서 시적 자아의 실존적 갱신이 벌어지는 ‘극서정시’는 황동규 시인 득의의 장르이자 방법론인 셈인데, 이번 시집에서도 그런 거듭남은 여전하다. “그래, 아직 저물 때가 아니다”(‘아직 저물 때가 아니다’), “그래, 다시 하루다”(‘삶의 앞쪽’)처럼 반전을 수반하는 긍정의 감탄사 ‘그래’가 시집 전체의 기조를 대변한다.

 

 

역사학자 이이화가 남긴 동학혁명의 유산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2·3 / 이이화 / 교유서가 / 951.591 이69ㅇ  사회과학열람실(3층)

 

민중사학을 개척하고 역사 대중화를 이끈 이이화(1937∼2020) 선생의 마지막 저서. 50여 년 넘게 연구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책 세 권에 담았다. 19세기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해 전파한 때부터 21세기 동학농민혁명이 재평가받기까지 120여 년을 기록했다. 흩어져 있는 사료를 모으고 동학농민군이 싸웠던 현장을 답사하고 후손들의 증언을 수집하며 쌓은 것들이다. 그는 1894년 반봉건과 반부패를 외쳤던 동학농민혁명을 “한국 근대사를 밝히는 상징”으로 평가한다. 그 혁명의 정신이 “‘3·1혁명’으로 이어졌고 반독재 민주화운동, 촛불혁명까지 영향을 끼쳤다.” 책은 민주주의 뿌리가 된 동학농민혁명의 자유, 평등, 인간 존중 사상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한겨레> ‘책&생각’이 ‘올해의 책’을 선정하며, 가장 아쉬웠던 작품은 두 편이다. 고공농성 노동자에서 시작해 1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서사를 담아낸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창비), 구순의 어머니를 돌아가시기 전까지 간병하며 적어나간 박희병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엄마의 마지막 말들>(창비)이다. 올해 유독 창비에서 좋은 책이 많이 나왔지만 출판사 편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김영옥 등, 봄날의책) <죽은 자의 집 청소>(김영사)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강성현, 푸른역사) <진리의 발견>(마리아 포포바, 다른) <타인에 대한 연민>(마사 누스바움, RHK) <팬데믹 패닉>(슬라보예 지젝, 북하우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호프 자런, 김영사) <정치적 부족주의>(에이미 추아, 부키)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주디스 버틀러, 창비)도 아깝게 선정되지 못했다. ‘전태일 공동 프로젝트’로 출간된 책 10권 중 한 권만 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역사에 남을 위대한 기획이었음을 여기 기록해둔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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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