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대목 맞아 ‘빅타이틀’ 출간 러시 독자들 초반 호응 다소 주춤, 순수문학보다 장르물 주도 예측도 일각 “불황 심각… 여름특수는 옛말”
소설은 여름에 강세를 보인다는 게 통설이다. 올해 ‘5말 6초’에도 어김없이 여름을 겨냥한 ‘빅 타이틀’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조남주의 ‘사하맨션’(민음사), 정유정의 ‘진이, 지니’(은행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 1·2’(열린책들), 조정래의 ‘천년의 질문’(해냄)이 연달아 선을 보였다.
하지만 초반 반응은 다소 주춤한 편이다. 온라인서점 예스24가 집계한 6월 둘째 주 종합베스트셀러 10위권에 든 작품은 ‘죽음 1·2’(2, 3위)가 유일하다. ‘진이, 지니’는 14위에 올랐으며, 오디오 북으로 독자와 먼저 만난 뒤 최근 출간한 ‘천년의 질문’은 서서히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이들의 전작들이 출간 즉시 10위권에 입성한 뒤 상당 기간 순위를 유지한 과거에 비하면 왠지 어색한 풍경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아직은 반응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지만 전작의 리커버 북이 나오면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한 출판계 관계자는 “출간 1, 2주에는 대기 독자가, 그 이후는 작품성과 입소문이 판매량을 좌우한다. 중간 마케팅이 극적으로 성공하지 않는 이상 초반 분위기를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하 맨션
811.32 조211ㅅ
진이, 지니
811.32 정67ㅈ
죽음
843.914 W484dKㅈ
천년의 질문
811.32 조73ㅊ
돌이킬 수 없는 약속
813.32 약96ㅅKㄱ
숨 (테드 창)
823.92 C532eKㄱ
사일런트 페이션트
823.914 M621sKㄴ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811.32 장11ㅈ
여름을 겨냥해 5, 6월에 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 정유정 작가의 ‘진이, 지니’, 조남주의 ‘사하맨션’, 테드 창의 ‘숨’(왼쪽부터). 맨 마지막 작품은 2017년 2월에 출간돼 지난해 8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입소문으로 역주행을 시작한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앞으로 여름 소설시장은 순수문학보다는 장르물이 주도할 거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현재 종합 10위에 오른 테드 창의 ‘숨’과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돌이킬 수 없는 약속’(야쿠마루 가쿠), 신흥 강자로 꼽히는 ‘사일런트 페이션트’(알렉스 마이클리디스) 등의 반응이 뜨겁기 때문이다. 게다가 1년 365일 최강자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에다 장강명 작가도 SF소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곧 선보인다.
사실 여름은 출판계로선 10여 년 전부터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방학과 휴가철 독서 인구를 겨냥해 대형 신작을 선보이는 게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김영준 열린책들 편집주간은 “어수선한 연초와 명절이 낀 가을을 제외하면 여름이 남는다. 특정 시기에 주력 작품을 출간하면 일하기 편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작가들의 집필 주기가 비슷하다 보니 같은 작가가 재차 맞붙기도 한다. 올해에는 3년 만에 정유정 조정래 베르베르 등이 격전을 펼치는데, 서로 좋은 자극을 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소설이 계절을 탄다는 공식은 옛말이란 의견도 상당하다. 출판계 불황이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가운데 4명이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게다가 20대에서 40대로 독자 연령대가 높아지며 ‘방학 특수’도 사라졌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40대 독자 비중은 2010년 22.7%에서 2019년 상반기 32.9%로 늘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출판 시장 분위기를 띄우기가 갈수록 힘들다. 게다가 인문 에세이가 강세를 보이며 소설이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신작을 내고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서 강연한 내용입니다. 공부 하다 쉴 때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김훈 “악다구니로 날 지새…남의 고통 공감 능력 사라졌다”
소설가 김훈, 하회마을 ‘인문캠프’ 강연 조화와 공존의 공동체가 하회마을 정신 “노동자들 죽음에 고통, 공감 느껴야” 강조
소설가 김훈이 1일 오후 경북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열린 제1회 백두대간 인문캠프에서 ‘하회마을, 비스듬히 외면한 존재의 품격’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안동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곳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가장 격렬한 독립운동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독립운동은 전통적인 유림 사대부들의 권위와 지도력에 의해 전개되었습니다. 오늘 여기 하회마을에 와서 느끼는 문제는, 과연 우리가 그런 전통의 힘으로 현실을 개혁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회마을이 우리 시대 전체에 던지는 무서운 질문이자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우리는 이 질문 앞에 봉착해 있는 것이죠.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전통과 보수의 힘 안에 우리 미래를 열어젖힐 힘의 바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힘을 우리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잊어버리고 박멸시켜 버림으로써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죠.”
소설가 김훈이 1일 오후 경북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소나무 숲을 가득 메운 700여 청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1~2일 안동과 예천에서 열린 제1회 백두대간 인문캠프 중 핵심 프로그램인 초청 강연을 위해서였다. ‘하회마을, 비스듬히 외면한 존재의 품격’을 주제로 행한 강연에서 그는 우리 사회가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가치를 잃어버린 결과 “어수선하고 천박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 거짓말로 날이 지고 샌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혓바닥을 너무 빨리 놀리며 혀가 마음껏 날뛰게 내버려 둔다”고 그는 개탄했다.강연 첫머리에서 김훈은 “하회마을은 집과 집들이 서로 비스듬하게 외면하는 듯하고, 집과 집 사이를 길들은 물이 흘러가듯 굽이쳐서 흘러간다. 또 이 마을은 물이 사람의 마을을 향해서 곧장 달려들지를 않고, 사람의 마을을 좀 어려워하는 기색으로 옆으로 빙 돌아서 나간다. 이처럼 산과 물, 물과 마을, 집과 집, 집과 길, 인간과 인간 등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관계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약간 옆으로 비켜서 가며 조화를 이루는 곳이 하회마을”이라고 설명했다.“이 마을에는 수백년 동안 양반과 상인 등 여러 계급들, 대립하는 문화들이 서로 부닥치지 않고 공존하면서 문화와 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인간이 세상으로부터 격절되지도 않고 또 세상에 매몰되지도 않고, 남과 대립하지도 않고 남에게 매몰되지도 않으면서, 인간과 인간이 연결되며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힘을 가진 곳이 하회마을입니다.”그는 “퇴계의 도산서원은 인간의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마을로부터 격절된 암자가 아니라 마을과 연결되어 있다”며 “세상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도산서원의 위치는 하회마을의 물리적 구조와 같다. 하회마을은 도산서원의 단순한 이념형을 인간의 생활 속에서 구현해 낸 구도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일 오후 경북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열린 제1회 백두대간 인문캠프 참가자들이 소설가 김훈의 강연을 듣고 있다.
김훈은 또 사고로 죽는 건설노동자들에 관해 최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는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너무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우리 나라에서 1년에 사고로 죽는 노동자가 2400명입니다. 추락, 폭발, 붕괴, 매몰, 중독 이런 것들로 해마다 2400명이 죽는 거예요. 내년에도 또 2400명이 죽어요. 2400. 생각을 해 보세요. 그건 눈에 보이게 죽는 거고, 노동 때문에 골병 들어 죽는 건 통계에 잡히지를 않아요. 그런데도 이런 일들에 대해 아무런 감수성이 없어요. 그냥, 으레 그러려니 하는 거죠. 전통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나 연민, 남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 그것을 상실하고 아주 천박하고 단명하는 잔재주의 세계로 들어온 거예요.”김훈은 “이런 오래된 마을이 수백년 동안 함양해 온 덕성과 가치를 우리는 상실해 가고 있다”며 “그런 덕성과 가치를 어떻게 현대에 접목시킬 것이냐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이 없다. 나 자신이 무슨 대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 니다. 다만, 그런 고통을 여러분과 공유할 수는 있겠고, 그것만 해도 나는 아주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연을 마무리했다.강연에 이어진 북토크에서 그는 “퇴계의 서원과 하회마을의 가르침을 개인 차원으로 치환하면 바로 ‘친절’이라 생각한다”며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게 목표고, 죽은 뒤에 친절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백두대간 인문캠프는 경상북도와 안동시, 예천군 등이 후원했는데, 이날 북토크에는 이철우 경북 지사가 깜짝 출연했다. 이 지사는 백두대간 인문캠프의 취지에 관한 질문에 “경상북도는 전통과 문화, 자연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데, 국내외적으로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경북의 문화 자산에 대한 깊이 있는 소개와 접근을 위해 이번 인문캠프와 같은 인문학적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1일 오후 경북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열린 제1회 백두대간 인문캠프에서 강연을 마친 소설가 김훈이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있다.
인문캠프 이틀째인 2일 오전에는 예천군 초간정에서 김훈 작가의 미니 강연이 이어졌다. 이 강연에서 그는 “평면적이고 납작한 아파트에 비해 전통 가옥은 인문적 깊이를 지니고 있다”며 “일상과 세상을 반성하는 태도가 바로 인문학”이라고 강조했다.인문캠프는 김훈 작가의 강연과 북토크 외에 북뮤지션 제갈인철과 테너 황남석이 꾸린 작은 음악회, 독자들이 참여한 김훈 작품 낭독회, ‘백두대간’ 4행시 백일장, 안동 병산서원과 예천 병암정, 삼강주막을 비롯한 문화유산 답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짜여졌다. 백두대간 인문캠프는 다음달 6~7일 안도현 시인, 9월 28~29일 정호승 시인, 10월 12~13일 만화가 이원복 교수 순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소설가 조정래 "축적이 아닌 분배의 시기로 진입해야"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묻는 <천년의 질문>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가 있은 이후 수천 년에 걸쳐서 되풀이되어온 질문. 그 탐험의 길을 나서야 하는 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소설가 조정래(76)는 신작 장편소설 <천년의 질문>(전3권·해냄)을 펴내며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소설 출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 세 권의 소설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의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조 작가가 3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천년의 질문>은 재벌 비자금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자, 이를 무마시키 위해 주변 인물 뿐 아니라 국회의원까지 포섭하는 재벌, 서울대 출신 수재로 재벌가의 사위가 됐지만 ‘죽어도 진골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비자금 장부를 훔쳐 잠적한 사위, 강사법 실시 이후 일자리를 잃을까봐 고뇌하는 시간강사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정경유착 실태와 비정규직 문제, 급격한 양극화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드러낸다. 원고지 3612장 분량의 소설은 한국 사회 곳곳의 자본과 권력에 의한 병폐를 파헤침과 동시에 작가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해법을 담았다.
“1976년 월남전쟁이 종식되고 있을 무렵부터 한국의 경제구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월남전 특수로 한국 기업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고, 분배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려 했지만 국무총리가 ‘지금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 축적의 시기’라고 말했고, 국민들은 침묵으로 승인했습니다. 침묵은 분배를 기다리는 세월로 쌓이기 시작했고, 정권이 교체됐지만 ‘분배의 시기로 진입한다’는 선언이 없는 채로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불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손자가 올해 스무살인데, 손자 세대 만큼은 우리 세대가 겪은 갈등과 모순을 겪지 않는 정상국가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의지로 소설을 쓰게 됐습니다.”
소설은 재벌 비자금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 장우진을 중심으로 입법·행정·사법의 국가권력과 재벌·언론의 부패를 파헤친다. 작가는 이를 위해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을 만나 심층적으로 취재해 생생한 캐릭터를 부여했다. 메모와 그림으로 이뤄진 취재노트가 130권에 달한다. 소설은 실제 사건을 연상시키는 재벌 비리, 촛불 시위 등이 등장하며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답한다.
조 작가는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라는 소설 속 국회의원의 말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이라며 “모든 권력은 부패하고 타락한다. 그것을 막는 것이 권력을 만들어준 국민의 의무이고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유럽의 선진국을 언급하며 “인권을 존중하고 복지가 제대로 갖춰진 국가가 21세기에 바람직한 국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작가가 제시하는 해법은 소설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1000만명이 매달 1000원씩 회비를 내서 100개의 시민단체를 만들고, 그 단결된 힘으로 이 나라를 완전히 뒤집어 바꾸자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평화적 혁명’ ‘1000만의 평화적 상비군’이라고 표현했다.
조 작가는 1970년 등단, 49년째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 근현대 삼부작’인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1550만부가 판매됐으며, 다른 소설까지 합하면 1800만부 이상이 독자들과 만났다. 조씨는 “2008년 태백산맥 문학관이 개관할 때 벽면에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썼다”며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정신을 이어가며 소설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북통일의 기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북핵문제 타결이 순조롭지 않은 것이 불안하다”며 “경제가 굉장히 나쁜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연간 1인당 10억원의 국민 세금을 쓰면서 파렴치하고 치졸한 말싸움만 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