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캠퍼스가 '현실'이 되고 있다. 그래픽으로 대학 내 주요 건물과 시설을 재현한 디지털 공간에서 학생과 교수들이 아바타로 소통하며 입학식이나 축제는 물론, 강의까지 진행하는 사례가 늘면서다.
순천향대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후 온라인으로 진행하던 '피닉스 열린 강좌'라는 교양 강의를 6월 말부터 메타버스로 개설한다. 해당 강의는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매주 연사로 초청하는 15주짜리 특강 수업이다. 진행을 위해 SK텔레콤 '점프VR' 플랫폼에 계단식으로 의자가 놓인 원형 강의실 형태로 콘퍼런스룸을 꾸밀 예정이다. 학생들이 각자 이름의 아바타로 출석체크를 하고 강의를 들으며 궁금한 내용은 질문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강의가 이뤄진다. 메타버스 강의는 지난해 말 순천향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가상과 현실 캠퍼스를 융합하겠다는 비전으로 수립한 '열정캠퍼스 플랫폼' 계획의 일환이다.
순천향대는 이미 그 첫 프로젝트로서 메타버스 입학식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순천향대 관계자는 "입학식 때 개설된 학과 공간을 활용해 학생들이 동아리·MT 등 자율활동을 하도록 하고, 향후 고등학생 대상 입시설명회를 포함한 각종 세미나와 경진대회도 메타버스로 구현하도록 플랫폼을 개발 중에 있다"고 했다.
대면 개최가 어려워진 축제도 마찬가지다. 건국대는 지난 17일부터 3일간 봄 축제를 VR게임 기업 플레이파크와 함께 정교하게 구현한 '건국 유니버스'에서 진행했다. 포켓몬고처럼 랜덤으로 출현하는 길고양이·거위·자라 같은 학교 명물을 발견해 인증하는 이벤트, 가상 학생회관에서 퀴즈를 푸는 방탈출게임 등이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보상으로 주어진 캠퍼스 머니로 옷이나 액세서리를 구매해 각자 아바타도 꾸밀 수 있게 했고, 실시간 채팅으로 학생 간 교류를 도왔다. 진승민 총학생회 행사기획국장은 "20일 기준 누적 가입자 수가 5500명으로 재학생 3명 중 한 명은 축제에 참여한 셈"이라며 "이 정도면 비대면 축제 중 최고가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숭실대도 20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축제에 메타버스 플랫폼 '개더(Gather)'를 활용했다. 개더는 공간을 꾸미고, 캐릭터를 만들어 서로 대화하도록 한 실리콘밸리의 가상공간 영상회의 솔루션이다. 이를 통해 공학관, 중앙분수 등 학내 주요 시설과 단과대·동아리별 홍보 부스를 구현했다. 학생들의 아바타가 서로 마주하면 캠과 마이크를 통해 실시간 영상 대화가 가능하다. 김채수 숭실대 총학생회장은 "기존에 유튜브 생중계로만 진행하던 온라인 행사를 넘어, 학교에 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직접 캠퍼스를 돌아다니고 서로 상호작용하며 놀 수 있도록 메타버스 축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백신 임상시험을 실제 사람이 아닌 가상의 아바타를 통해 할 수 있다면? 비행기가 항공유 대신 전기로 날고, 햇빛을 이용해 온실가스를 유용한 다른 물질로 바꿀 수 있다면? 센서가 모퉁이 저 너머에서 오고 있는 자동차까지도 볼 수 있게 해준다면?
아마도 수많은 생명이 뜻하지 않은 질병과 사고로부터 목숨을 구하고 인류를 위협하는 지구온난화 속도도 훨씬 더뎌질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일과 교류, 생활 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세기 후반 디지털 시대가 열린 이후 기술 혁신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영향력이 훨씬 더 커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2020년에도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기술 혁신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는 어떤 기술들이 희망의 메시지를 들고 나왔을까?스위스에 본부를 둔 세계경제포럼(WEF)과 미국의 유서 깊은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전 세계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2020년 새롭게 부상한 `10대 신흥 기술'을 선정해 발표했다. 기존 기술보다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사회와 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3~5년 안에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한 기술들이다. 1차로 75개 후보 기술을 고른 뒤 온라인 회의를 통해 최종 평가 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전문가 선정단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고려해 세계 보건 및 기후변화 해법과 관련한 기술을 특히 관심있게 살펴봤다. '올해의 10대 신흥 기술'을 두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미세바늘과 일반 바늘의 크기 비교. 위키미디어 코먼스
_______ 통증 없는 주사·검사 가능한 마이크로니들 의료 분야에선 3가지 기술이 선정됐다. 우선 통증 없는 주사와 혈액 검사가 가능한 마이크로니들(미세바늘) 기술이 주목을 받았다. 마이크로니들은 길이 50~2000마이크론(종이 1장 두께), 너비 1~100마이크론(사람 머리카락 굵기)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새로운 약물전달장치다. 주사기나 패치에 부착해 사용한다. 말단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미세바늘 주사기와 패치 제품이 백신 접종에 사용되고 있다. 당뇨, 암, 신경통 치료에서도 임상시험 중이다. 이러한 장치는 약물을 표피 또는 진피에 직접 삽입하기 때문에 기존 패치제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올해는 피부 건선, 사마귀, 일부 암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미세바늘이 개발돼 나왔다. 선정단은 미세 바늘은 특히 값비싼 장비나 교육이 필요하지 않아 의료 서비스가 열악한 지역에서 특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물론 미세바늘에도 단점은 있다. 다량의 약물이 필요한 경우엔 미세바늘로는 충분히 약물 성분을 투여할 수 없다. 모든 약물이 미세 바늘을 통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정단은 그럼에도 무통 주사 및 검사는 약물 전달과 진단의 범위를 크게 확장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클라우드 기반의 하트플로우 시스템으로 관상동맥 질환을 판별하고 있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_______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만든 가상 장기 컴퓨터가 환자를 대신할 수 있는 가상환자 기술도 유망 기술로 꼽혔다. 일종의 시뮬레이션 기술이다. 예컨대 환자의 장기를 고해상도로 촬영한 뒤, 여기서 도출한 해부학적 데이터를 해당 장기의 메카니즘을 구현하는 수학 모델에 집어넣고 컴퓨터 알고리즘을 돌리면 실제 장기처럼 작동하는 가상의 장기가 만들어진다. 이런 가상 모델을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임상시험에 활용할 수 있다면 백신 개발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비용도 절감될 것이다. 백신 부작용에 따른 임상시험 참가자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물론 임상시험 마지막 단계에선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약효 시험이 필요하지만 초기 안전성 및 효능 평가에선 유용한 방법이다. 선정단은 가상의 임상 실험은 이미 실용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새로운 유방 조영술 시스템 평가에 사람 대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이 기관이 발표한 약물 및 장치 시험 설계 지침에는 가상 환자도 포함돼 있다. 진단과 치료 계획 수립에도 가상 환자 모델을 이용할 수 있다. 미 식품의약국이 승인한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하트플로우 분석'(HeartFlow Analysis) 시스템은 환자 심장의 시티(CT, 컴퓨터 단층촬영) 영상을 기반으로 혈액의 흐름에 대한유체 역학 모델을 구축해 관상 동맥 질환 여부와 그 정도를 식별할 수 있다. 이 기술이 없다면 번거로운 혈관 조영술을 실시해야 한다. 선정단은 “이같은 방식은 개인별 맞춤형 치료에 유용하다”며 “당뇨 치료에서 이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식품의약국이 승인한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 앱 '리셋' 화면.
_______ 센서가 든 알약, 디지털 치료 앱…비대면시대 큰 활약 기대기존 치료법의 효과를 높이고 의료시설 접근이 어려운 환자들을 돕는 소프트웨어, 즉 디지털의약품도 주목받았다. 대표적인 것으로 마이크로생체전자칩, 즉 센서가 든 알약이 있다. 이 디지털 알약을 삼키면 미생물이 체내에서 배출하는 가스나 위출혈, 체내 온도, 산소 농도 등을 센서가 체내에서 측정해 곧바로 앱에 전송한다.다양한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기 위해 고안된 소프트웨어도 있다. 디지털치료제로 불리는 이 소프트웨어는 모바일 앱이나 게임, 가상현실 등의 형태로 이용할 수 있다. 2017년 미 식품의약국으로부터 최초로 디지털 치료제 승인을 받은 피어 테라퓨틱스의 약물 중독 치료용 앱 `리셋'은 환자에게 약물 중독 대처법을 훈련시키는 소프트웨어다. 임상시험 결과 앱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치료 효과가 두배 이상 좋게 나왔다. 이 회사는 2020년 3월엔 불면증 치료 앱 '솜리스트(Somryst)'도 디지털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지난 6월엔 아킬리 인터액티브(Akili Interactive)란 회사가 어린이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 '엔데버아르엑스(EndeavorRx)'를 승인받았다. 이는 최초의 게임 방식 디지털 치료제다. 안대처럼 사용할 수 있는 약시 치료용 가상현실 앱도 나왔다.선정단은 앞으로 스마트워치가 이용자의 말과 접촉 패턴 변화를 파악한 뒤 우울증 치료 경보를 보내고, 이용자는 챗봇을 통해 상담을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대면 시대를 연 코로나19가 디지털 의약품의 중요성을 부각시켜줬다고 선정단은 지적했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전 세계 디지털 치료제 시장이 올해 20억달러에서 2025년엔 70억~8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