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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잠시 멈추는 순간 : 뇌과학이 알려 준 좋은 쉼의 조건

 

 

뇌가 진짜 하는 일

 

강연할 때마다 청중들에게 질문하곤 한다. “뇌는 무슨 일을 할까요?” 그러면 열에 아홉은 ‘생각’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나는 또 이렇게 말한다. “뇌는 생각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랍니다.” 청중들은 잠깐 술렁이다가 이내 ‘뇌가 없는 사람’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면 뇌가 진짜 하는 일은 무엇일까? 현대 뇌과학이 발견한 생명, 사람, 삶에 대한 새로운 생각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생명이 지속되려면 무엇보다 심장이 잘 뛰어야 하고 숨을 잘 쉬어야 한다. 또 외부에서 영양과 에너지-칼로리를 섭취해야 하고 이를 분해 흡수해야 한다. 동물의 슬픈 운명이다. 식물은 외부에서 흡수하는 아주 적은 에너지만으로도 살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면역 시스템도 잘 작동해야 한다. 뇌는 이 모든 것을 총괄한다. ‘내’가 의식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뇌’는 주변의 조건에 적응하면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신체 예산을 배분하고 조절한다. 이게 뇌가 진짜 하는 일이다. 이 과정은 대부분 ‘나’의 의식, 생각과는 무관하게 이뤄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인류는 독특한 진화의 부산물을 얻었다. 발성기관을 잘 활용해 단어와 문장을 구사하고 뇌에 빚어진 고도로 복잡한 언어체계를 표현하고 주변의 나 아닌 다른 존재와 이야기 한다. 메타인지 수준의 복잡한 생각, 의식도 갖게 되었다. 마음도 복잡해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서부터 하늘의 무수한 천체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고귀하고 위대한 기술을 터득했다.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고 근대 이원론은 이 토대 위에서 작동했다. 그런데 현대 뇌과학은 이를 뒤집었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는 이렇게 수정되었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도 한다.’

 

스트레스, 살아있음의 증거

 

흔히들 말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없애야 한다고. 스트레스가 나쁘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진화학의 설명은 좀 다르다. ‘우리는 모두 스트레스를 잘 활용해 살아남은 조상의 후손’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사고 실험을 해보자. 먼 옛날 인류의 조상 한 분이 산길을 가다가 호랑이와 마주치는 비상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1. 호랑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서 도망친다, 2. 호랑이보다 더 힘이 세져서 호랑이를 때려잡는다,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런데 호랑이보다 더 빠르거나 더 힘이 세지려면 특별한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 순식간에 힘이 세지는 마법 같은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야 한다. 이때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코르티졸’이 활약(?)한다. 마치 공습경보 사이렌을 울리듯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비상! 비상!’을 외친다.

 

평소에 심장은 뇌, 소화기관 등으로 많은 혈액을 공급한다. 그런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비상 상황이 되면 뇌는 평소의 시스템을 뒤집어서 근육으로 더 많은 혈액을 공급한다. 만약 스트레스, 코로티졸의 활약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호랑이와 마주쳤던 먼 옛날 인류의 조상들은 느긋하게 호랑이의 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반면, 스트레스를 잘 활용해 생존의 확률을 높인 조상님들은 더 많은 후손을 남겼고 우성 유전자로 새겨졌다. 스트레스는 생존 확률을 높이는 유용한 적응이었다. 인류는 이 ‘스트레스’라는 선물(?)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다른 동물에겐 없는 문화와 문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스트레스는 생명의 에너지, 생명의 자원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다. 사랑에 빠지거나 설레거나 행복에 겨워 마구 흥분하거나 혹은 두렵거나 불안하거나 고통에 빠졌을 때 모두 마찬가지다. 살아있음은 늘 스트레스와 함께 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없애겠다고 달려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쉬는 순간에도 뇌는 쉬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허하라!” ‘멍때리기 대회’라는 야릇한 퍼포먼스의 슬로건이다. 지난해 유럽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어떤 청년이 무려 60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잘 때려서 우승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대회의 규정을 보면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하게 된다. 졸아도 안 되고 웃어도 안 되고 대화도 안 되며 휴대폰을 보거나 시간을 확인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바로 탈락이다. 그리고 15분마다 심박수를 측정해서 가장 안정적인 심박수를 유지한 사람이 우승하게 된다. 흥미로운 퍼포먼스가 아닐 수 없다.

 

‘멍때리기 대회’를 소개한 이런저런 영상을 보면서 뇌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한 가지 궁금한게 생겼다. 참가자들의 뇌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뇌를 스캔해 보면 어떤 반응들이 관찰될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인지언어학을 창시했다고 알려진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언어학을 미국의 현실정치에 적용한 책의 제목이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제목은 기억하고 이야기할 만큼 유명한 문구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는 순간 우리 뇌는 언어의 프레임에 갇혀서 끊임없이 코끼리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이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실제로 뇌에서는 분주히 코끼리가 맴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는 ‘나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뇌에서 벌어지는 이 현상은 ‘쉼’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라고 말하는 순간, 더 나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집착하는 순간, 우리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인가를 열심히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자, 이쯤 되면 그러면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짜증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과학자들이 그렇게 무책임하지는 않으니까.

 

좋은 쉼이란 무엇인가

 

많은 뇌과학자는 ‘명상(Meditation)에 주목한다. 잠깐, 그렇다고 ‘당장 요가나 명상수련을 시작하세요. 과학으로는 넘볼 수 없는 무념무상의 경지, 종교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겠어요’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명상할 때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살펴보면 좋은 ‘쉼’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뇌과학자들이 명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뇌에서 일어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라는 상태 때문이다. 비유하면 휴대폰이나 컴퓨터의 초기화 모드에 해당한다. 뇌는 쉬는 상태, 잠자는 상태에서도 쉬지 않고 잠들지 않고 끊임없이 일한다. 이는 뇌가 감각이라는 생명의 통로로 얻은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계속 처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살아있는 한 이 현상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뇌는 특별한 선물을 얻었다.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외부의 정보가 뇌에 전해지는 통로 즉 감각 정보가 단순해졌을 때 뇌의 이 네트워크는 오히려 활성화된다. 이 역시 뇌의 활발한 활동이다. 정보의 유입이 적어지면서 불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지우기도 하는 등 뇌 안에 여유 공간을 확보한다. 많은 뇌과학자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 의해 확보된 이 여유 공간을 통찰력과 창의성의 생물학적 원천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정보의 유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는 등 모든 감각 기관을 잠시 쉬게 하는 것이다. 뇌과학이 알려 주는 좋은 쉼의 조건은 바로 이것이다.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를 깨워라!’

 

뇌의 기본값을 깨우기

 

‘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좋은 쉼은 일상과는 뚝 떨어진 작위적인 행위, 또는 특별한 장소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많은 뇌과학자가 우리 뇌를 ‘근육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근육은 꾸준한 운동을 통해 강화된다. 반면 운동을 게을리하면 강화됐던 근육은 도로 약해진다. 살아있는 한 우리 뇌도 강화되고 약해지기를 반복한다. 언어, 지능, 마음, 자아도 마찬가지다. 유전자에 새겨져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한번 정해지면 끝까지 계속 가는 것도 아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굳이 특별한 행위, 이벤트를 벌이지 않아도, 어떤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얼마든지 좋은 ‘쉼’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한 시간에 한 번, 단 몇 분 만이라도 눈을 감고 주변의 모든 소리를 잠재워 보자. 입으로 들어가던 모든 것을 잠시 멈춰 보자. 그리고 심장의 리듬과 들고 나는 숨결을 느껴 보자. 그러면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깨어난다. 바로 이 순간이 좋은 ‘쉼’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쉬는 순간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당신의 뇌를 응원한다.

 

 

 

신성욱(전)다큐멘터리 PD 겸 작가로 60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카이스트에서 과학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지금은 저술,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농업인이자 건설기계 굴착기 조종사이다. 지은 책으로 『뇌가좋은아이』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가 있다.
thelabgoodbrain@gmail.com    신성욱_과학커뮤니케이터·농업인·굴착기 조종사

 

 

< 출처 : 아르떼 365 >

:
Posted by sukji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  너무 많은 생각이 당신을 망가뜨린다 / 닐스 비루바우머

612.82 B617dKㅇ

자연과학열람실(4층)

 

 

 

 

책소개

 

이제껏 뇌과학이 말하지 않은 뇌 비우기의 비밀!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 최고의 뇌과학자 닐스 비르바우머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인간의 두뇌를 이야기하는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뇌는 텅 빈 상태를 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뇌가 텅 빈 상태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물론, 텅 빈 상태에 이르는 메커니즘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텅 빈 상태’나 ‘텅 빈 뇌’라는 말은 단순히 복잡한 머리를 식히는 휴식의 개념이 아니다. 수 초간 혹은 수 시간 동안이라도 사고와 감각이 멈춰서는 ‘무(無)’의 상태를 접하는 일을 말한다. 이는 마치 전력에 과부하가 걸려 불꽃이 튀고 퓨즈가 나갔을 때 일단 두꺼비집부터 내리는 행위를 비유로 들 수도 있겠다. 이때 두꺼비집을 내리는 행위가 바로 뇌를 텅 비우는 시도와 연결된다.

저자는 일상에서의 체험뿐만 아니라 더욱 급진적인 상황까지 이 주제에 대입시킨다. 바로 텅 빈 상태라는 질병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다름 아닌 뇌전증(간질), 우울증, 루게릭병, 치매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당연히 치명적으로 인식되는 이들 질환이 사실은 생각만큼 극단의 좌절을 겪을 병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질환을 앓는 환자는 결국 자아를 망각하고 텅 빈 상태에 이르는데, 이 상태가 전혀 두렵거나 괴롭지 않으며 오히려 평온과 고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견 거센 반박과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뇌과학자인 저자는 실제 감금증후군 환자(루게릭병으로 인한 전신마비 환자)의 뇌에 측정 칩을 장착했다. 그러고는 그에게서 평온과 행복감이 들 때 방출되는 뇌파와 전류의 변화를 발견하며 이 사실을 증명해냈다.

 

 

출판사 서평

 

우리 뇌는 왜 텅 빈 상태를 원하는가?
이제껏 뇌과학이 말하지 않은 뇌 비우기의 비밀

우리가 인간의 두뇌에 대해 논하거나, 전문가들이 연구하는 뇌과학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은 당연히 ‘무궁무진한 뇌의 능력’이다. 머리를 굴릴수록 잠재된 플러스 알파까지 끄집어낼 수 있다거나, 뇌가 알고 보면 엄청나게 유연하고 가소성 있는 기관임을 강조한다. 회복 탄력성이라는 놀라운 복원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독일의 대표적인 뇌과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닐스 비르바우머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인간의 두뇌를 이야기한다. 바로 “우리 뇌는 텅 빈 상태를 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텅 빈 상태’나 ‘텅 빈 뇌’라는 말은 단순히 복잡한 머리를 식히는 휴식의 개념이 아니다. 수 초간 혹은 수 시간 동안이라도 사고와 감각이 멈춰서는 ‘무(無)’의 상태를 접하는 일을 말한다. 이는 마치 전력에 과부하가 걸려 불꽃이 튀고 퓨즈가 나갔을 때 일단 두꺼비집부터 내리는 행위를 비유로 들 수도 있겠다. 이때 두꺼비집을 내리는 행위가 바로 뇌를 텅 비우는 시도와 연결된다.

다소 애매하게 여겨지는 ‘뇌를 비우다’라는 표현은, 이 책의 저자가 카운슬러나 심리학자가 아닌 뇌과학자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단순한 ‘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뉴런이 활성화되면 특정한 뇌파 패턴이 형성되는데, 이때 8~12헤르츠의 알파파(정상적인 성인이 긴장을 풀고 쉬는 상태에서 활성화되는 뇌파의 하나)가 발생하면서 텅 빈 상태의 최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를테면 피곤한 상태에서 머릿속으로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누워 있을 때를 떠올리면 알파파가 방출되는 것과 같다.
물론 알파파가 발생할 때만 텅 빈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선불교에서 ‘공(空)의 상태에 이르는 훈련’이라 일컫는 깊은 명상의 수준에 이를 때에는 30~100헤르츠의 감마파(극도로 긴장하거나 복잡한 정신 활동을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 뇌파의 하나)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뇌파가 느려야만 텅 빈 상태에 이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이 책의 저자도 고백하기를, ‘텅 빈 상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다고 한다. 두 저자 역시 텅 빈 뇌의 상태를 정의내리기 위해 수많은 토의를 거치면서 서로의 생각과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이것이다’라는 정의까지는 내리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욕조에 몸을 담근 최적의 휴식이나 수면을 통해 ‘텅 빈 상태’를 만날 수도 있지만, 명상이나 섹스, 스카이다이빙 같은 스포츠나 특정한 리듬이 만들어내는 재즈연주 등 흔히 말하는 무아지경의 상태에서도 일순간 ‘텅 빔’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텅 비우기의 경험은 인간에게 생각보다 무해하지 않고, 오히려 휴식과 치유, 창의력과 에너지를 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여러 실험과 데이터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멍 때리기 혹은 몰입과 자극으로
텅 빈 상태를 만날 수 있다?

할리우드 배우 제프 브리지스, 비틀스의 존 레논, 육상선수 칼 루이스 등 이들에게는 공통된 휴식 방법이 있었다. ‘부유탱크’가 그것이다. 사람 한 명이 몸을 누이면 꽉 들어찰 만한 견과류 모양의 탱크인데, 이 탱크에 사해(死海)처럼 사람이 떠 있을 수 있을 농도의 소금물을 체온과 비슷한 수온으로 채워 넣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둥둥 떠 있게 하는 것이다. 일단 이곳에 들어가면 청각, 시각, 촉각 외에도 자기 몸에 대한 고유 감각이 줄어들어 기분이 꽤 좋아지거나 긴장이 풀리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실제 테스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감각이 풀어진’ 상태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보고했다.
연구진은 명상을 할 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렇듯 텅 빈 상태가 되면 뇌파의 바다에서 절대적이고 무관심한, 즉 집중력이라는 바위가 불쑥 튀어나온다. 뇌에서 약한 고주파의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뇌파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멍 때리기’라는 다소 희화적인 표현으로 ‘아무 생각 없음’을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멍 때리기의 시간을 얼마나 완전무결하게 뇌 비우기의 시간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참된 휴식과 에너지 충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특히 ‘텅 빈 상태’를 만들기 위한 또 하나의 종류로 몰입과 자극을 강조한다. 인간의 일상 가운데 무아지경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순간들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라. 절정을 체험하는 섹스, 수많은 군인들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발맞추어 걷는 동보(同步) 행진, 단순한 멜로디라도 리듬과 비트가 강한 재즈나 록 음악을 듣는 일 등 몰입 혹은 자극의 순간이 오면 뉴런이 저주파 알파파나 세타파 패턴으로 발사된다. 이 패턴은 긴장이 풀린 각성 상태나 잠들기 직전의 몽롱한 단계에서 나타나는 패턴이기도 하다.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은 뇌가 텅 빈 상태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물론, 텅 빈 상태에 이르는 메커니즘을 상세히 설명한다. 하지만 위에 적은 일상에서의 체험뿐만 아니라 저자는 더욱 급진적인 상황까지 이 주제에 대입시킨다. 바로 텅 빈 상태라는 질병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다름 아닌 뇌전증(간질), 우울증, 루게릭병, 치매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당연히 치명적으로 인식되는 이들 질환이 사실은 생각만큼 극단의 좌절을 겪을 병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질환을 앓는 환자는 결국 자아를 망각하고 텅 빈 상태에 이르는데, 이 상태가 전혀 두렵거나 괴롭지 않으며 오히려 평온과 고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견 거센 반박과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뇌과학자인 저자는 실제 감금증후군 환자(루게릭병으로 인한 전신마비 환자)의 뇌에 측정 칩을 장착했다. 그러고는 그에게서 평온과 행복감이 들 때 방출되는 뇌파와 전류의 변화를 발견하며 이 사실을 증명해냈다.

너무 과대평가된 뇌의 능력,
하지만 뇌는 잠시라도 멈춰 있길 원한다


이 책의 독일어판 원서 제목은 《뇌는 과대평가되었다(Denken wird ?bersch?tzt)》이다. 뇌의 영역과 구조, 여러 기관의 고유 기능, 뇌파와 호르몬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부분을 읽다 보면 저명한 이 뇌과학자가 일반 독자들이 읽는 과학 교양서에 이토록 전문적인 설명을 애써 곁들인 이유가 무얼까 되짚어보게 된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원서 제목처럼 그동안 우리가 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너무나 과대평가해왔으며, 기대 이상의 잠재력을 요구하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각을 비워라”라는 조언이 아니라, 뇌와 정신의 정확한 메커니즘을 알려줌으로써(혹은 증명함으로써) 뇌의 기능을 과신하지 말라는 저자의 간절한 주문이다.
뇌 또한 인체의 한 부분이기에 장시간 전류를 차단한 채 로그아웃 되어 있는 시간이 절실하다. 또는 무력해지고 손상된 근육을 물리치료 받는 것처럼, 자극과 몰입의 뇌파를 만듦으로써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텅 빈 뇌’는 바로 그 지점을 말하고 있다.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이 다루는 분야는 과학만이 아니다. 뇌과학은 물론 철학, 종교, 심리학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과학과 인문학이 이상적으로 결합되어, 인간의 두뇌에 대한 ‘통섭’의 시각으로 텅 빈 뇌에 대해 다룰 수 있는 모든 면을 두루 거론한다.
세계적인 뇌과학자 닐스 비르바우머와 과학저술가인 외르크 치틀라우, 이 두 저자는 전작인 《뇌는 탄력적이다》라는 책도 함께 저술하여 뇌과학을 더욱 종합적인 사고로 다룰 수 있는 내공을 증명하였다. 뇌의 가소성과 복원력 등 우리 뇌가 어디까지 진화하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 전작과 달리, 이 책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은 원제대로 ‘생각은 과대평가’되었으며, 텅 빈 상태야말로 인간의 삶의 기원이자 마지막이라는 점을 적극 강조한다.

뇌를 비운다는 개념과 표현은 정통 뇌과학에서 그간 잘 다뤄오지 않은 문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저자들 자신조차도 텅 빈 뇌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다만 생각하고 감각으로 느끼는 평상시의 의식에서 벗어난 백지 상태, 혹은 극한의 몰입과 자극의 상태를 ‘텅 빈 뇌’의 도착점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추상적이면서 난해하기까지 한 주제를 저자들은 방대하고 정교한 실험 데이터를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하면서 설득력을 얻는다. 그리고 그 끝에는 삶과 죽음이 언급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삶과 죽음이 공통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출생은 무에서 나오고 죽음은 무로 돌아간다는 것,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했다. 죽음에 임박했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난 여러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심장이 멈춘 순간 평화와 쾌적함에 사로잡혔고 더 나아가 극도의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저자가 이 책의 맺음말에서 내는 결론 또한 마찬가지다. 텅 빈 상태의 완전무결한 마무리인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텅 빈 상태의 긍정성을 생각하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이 말은, 우리의 삶 또한 고통과 번민에 사로잡혀 보낼 필요가 없다는 말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만만치 않은 철학과 전문적인 뇌과학 이론이 수시로 등장하기에 독자들은 계속 머리를 굴리며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누구나 ‘그래, 생각에 집착하지 말자. 때로는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비우며 현실적인 고통에서 떠나보는 연습을 하자’라는 마음을 먹게 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저자가 원하는 결론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너무 많은 생각이 우리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목차

 

머리말 | 낙하산을 타고 텅 빈 상태로 뛰어들다

1장 무언가 항상 움직여야 한다
: 왜 인간은 텅 빈 상태를 삶에서 몰아냈을까?

2장 마침내 자유로워지다
: 철학자들, 텅 빈 상태를 성찰한 선구자

3장 긍정적인 자극을 찾아서
: 텅 빈 상태에서의 뇌파

4장 방어체계에서 빠져나오다
: 생각을 비우게 하는 뇌의 영역

5장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 자동 조종 장치를 켠 뇌

6장 무의미가 행복이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7장 텅 빈 상태에 이르려면 어떻게 훈련할까?
: 섬엽의 활성화, 그리고 선 명상

8장 무아지경을 향한 욕망
: 섹스, 종교, 뇌전증의 공통점

9장 리듬 혹은 그루브의 미학
: 음악은 우리를 어떻게 이끌까

10장 텅 빈 상태라는 질병
: 그리고 이 질병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11장 잘못된 몸에 깃든 올바른 삶
: 감금증후군 환자의 행복

맺음말 | 텅 빈 상태는 삶의 처음이자 끝이다
옮긴이의 말 | ‘텅 빔’을 향한 도발적인 뇌과학서
주석

 

< 내용 출처 : 교보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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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