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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를 향한 국제사회의 움직임

2023 유네스코 다자회담 리뷰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유네스코와 국제사회 관계자들의 굵직한 논의는 2006년으로 거슬러 간다. 제1회 유네스코 세계예술교육대회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렸고 ‘예술교육 로드맵’이 결과물로 도출되었다. 이후 2010년에 서울에서 제2회 대회가 개최되었고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서울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가 그 결과물이었다. 이후 비교적 잠잠했던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다시금 급부상하고 있다. 현재 기준으로 2023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제3차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동시대 사회문화 등 변화에 발맞춰 그간의 어젠다를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로 개정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다양한 층위의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섹터와 교육섹터가 협력하는 유례없는 움직임인 만큼 어젠다 세팅 과정과 방식,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 2023 유네스코 다자회담(프랑스 파리) 

프레임워크 개정과 한국의 적극적 기여

 

서울어젠다가 제3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을 기념하며 매년 5월 넷째 주를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으로 선포 후 국제적으로 혹은 국가별로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옹호하고 축하하고 있다. 한국도 그간 11회의 주간을 기념하며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의 성과를 국내외로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시행해 왔다. 올해 주간행사 기간에 한국은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 개정 작업 과정의 일환으로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유네스코 다자회담’에 참여했다. 유네스코가 공개한 제3차 세계대회와 프레임워크 완성까지의 여정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 2022년 주간행사 기간 서울에서 프레임워크 개정 초기 단계인 국제 전문가 회의를 지원했고, 올해 초 지역별 전문가 회의 중 아시아 태평양 그룹에 참여했다. 지난 5월에는 다자회담에 참석하여, 문화체육관광부의 개막식 환영사를 시작으로 이틀간 회담 내 핵심 주제 세션 발제, 한국 세션 및 한국 주도 리셉션,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의 성과를 알리는 홍보부스 운영 등 각 주요 요소별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기여하였다.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중장기 비전·전략,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이 프레임워크 주요 흐름과 결이 다르지 않고, 2000년대 초반부터 문화예술교육 선도국으로서 입지를 다져왔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공동의 어젠다 세팅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 참여에 거는 기대가 크다.

 
 

프레임워크 10대 핵심 주제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는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고려하여 10개 주제를 아우르며 논의되고 있다. 이번 다자회담에서는 다음과 같이 핵심 주제를 추려 동시다발 세션으로 분야별 전문가의 견해를 들었고 과제와 성찰 지점을 정리해 프레임워크 초안이 마련될 예정이다: ▲접근과 포용 ▲맥락적 학습 ▲창의성과 창조경제 ▲회복과 웰빙 ▲평생학습 ▲교사와 교육자 ▲디지털 기술과 AI ▲파트너십 ▲정책과 시스템 ▲옹호, 지식공유, 연구.

 

한국은 포괄적으로 펼쳐진 10개의 주제 중에서 ‘디지털 기술과 AI’ 세션을 중심으로 발언을 이어갔고, <미래세대를 위한 창의적 행동: 디지털 AI, 혁신>이라는 주제로 별도의 세션을 마련해 다양한 사례와 도전과제를 논의했다. 용어의 정의나 개념별 범주를 해석하는 데는 국가나 지역별 차이가 존재했지만, 다자회담에 참석한 200여 명의 문화예술교육 이해관계자들은 제시된 10개 주제는 상호 연계하여 논의하지 않을 수 없고, 중요도나 우선순위 없이 문화예술교육을 논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은 틀림없다는 점에 동의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 이후 18여 년간 창의성, 치유와 웰빙, 회복과 돌봄, 디지털과 융합 등을 주제로 학교-사회-지역을 연결하고 ‘모든 국민이 전 생애에 걸쳐 누리는’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다양한 거버넌스와 기반을 구축하며 노력해 왔다. 정부-시민사회-민간과의 다차원적인 거버넌스 구축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었다. 문화예술교육자의 양성, 지식공유와 연구, 그리고 국내외 옹호 활동 등 기반 구축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개진해 왔다.

 

앞으로 미래 문화예술교육의 방향과 국제사회의 새로운 어젠다에 조응하며 한국에서 열리게 될 다양한 주제별 논의의 결과가 주목된다. 한국의 성과와 과제, 경험과 통찰들이 국제사회로 공유될 기회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직접 적용될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한국이 그간의 성과와 과제들을 공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다.

 
  • 박은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원장의 유네스코
    다자회담 주제 세션 발제
  •  
    한국 주도 리셉션에서 선보인
    꿈의 댄스팀 <으라차찬>
  •  

새로운 국제사회의 움직임, 문화예술교육의 역할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 개정과 더불어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내 ‘문화’를 포함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 또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SDGs는 2015년 UN에서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설정한 인류 공동의 목표 17개다. 교육은 목표 4번에 있으나 현재 문화는 부재하다. 2025년을 기점으로 2030년 이후 SDGs 개정 버전에 문화를 삽입하기 위해 유네스코를 포함한 주요 관계자들이 힘쓰고 있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후변화와 같이 위기에 대응하는 창의적 행동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미래세대를 위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그 중추적 역할을 문화예술교육에서 찾고자 하는 국제사회의 행보에 어느 때보다도 문화예술교육의 근본적 가치와 영향력을 공감하는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다. 프레임워크를 기점으로 다시 한번 새롭게 펼쳐질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들의 활약과 문화예술교육의 실질적인 행동에서 펼쳐지는 사회적 가치 발현을 기대해 본다.

 

< 출처 : 아르떼 365 > 
:
Posted by sukji

 

냉전의 지구사 : 미국과 소련 그리고 제3세계 / 오드 아르네 배스타

909.825 W522gKㅇ  사회과학열람실(3층)

 

책소개

 

현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옥스퍼드대학교의 고전학자 재스퍼 그리핀은 “우리가 역사를 들여다보는 데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나는 과거를 알기 위한 호기심으로 우리는 무엇이 일어났으며 누가 무엇을 왜 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또 다른 동기는 현재를 이해하려는 희망이다. 역사 공부의 이유는 우리의 시간과 경험을 해석하고 이를 통해 미래의 희망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장 좋은 현대사 공부는 이 두 가지 동기에서 진행된다. 역사를 과거의 관점 그리고 현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동기 말이다. 그리핀 교수의 격언에 비유하자면 『냉전의 지구사』는 오늘날의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기 위한 글이다.

제3세계에 개입하는 주체는 냉전기의 두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다. 18세기부터 1960년대까지를 다루는 이 책의 전반부는 미국과 소련 중심의 지구사에 집중한다. 요컨대 지금까지 많은 연구들이 냉전의 주체로서 미국과 소련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정하고 두 나라가 유럽에서 경쟁하는 것을 다루어왔다면, 이 책은 미국과 소련의 역사를 먼저 서술한다. 베스타는 미국과 소련을 유럽사의 확장판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자유와 정의)를 담보한 ‘제국’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냉전이 단순히 유럽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힘의 패권이 교체되는 시기가 아니라 제국주의가 제국 간 경쟁으로 바뀌는 시대 자체의 변화이며, 미국과 소련이라는 특수한 나라가 국제 정치를 이끌어갔기에 냉전이 비로소 지구화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 책 후반부는 제3세계가 어떻게 미국과 소련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가 어떻게 역동적으로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베스타는 미국과 소련의 제3세계 개입 과정에 제3세계 엘리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꼼꼼한 외교 문서 분석을 통해 살피고 있다.

 

출판사 서평

 

옥스퍼드대학교의 고전학자 재스퍼 그리핀은 “우리가 역사를 들여다보는 데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나는 과거를 알기 위한 호기심으로 우리는 무엇이 일어났으며 누가 무엇을 왜 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또 다른 동기는 현재를 이해하려는 희망이다. 역사 공부의 이유는 우리의 시간과 경험을 해석하고 이를 통해 미래의 희망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장 좋은 현대사 공부는 이 두 가지 동기에서 진행된다. 역사를 과거의 관점 그리고 현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동기 말이다. 그리핀 교수의 격언에 비유하자면 이 책은 오늘날의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기 위한 글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세계는 어떤 시대인가? 1990년대부터 이 책의 제목과도 연관이 있는 ‘지구화’ 또는 ‘세계화’라는 개념이, 더 정확하게는 ‘미국화’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특히 금융 시장을 비롯해 전 세계적 시장은 홀로 남은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확장하는 자본주의 세계와 밀착했다. 소비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이 개념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그 이유를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그 앞선 시대를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앞선 시대란 이른바 ‘냉전’이라고 지칭하는 시대다. 이 시대는 넓게 보면 세계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세계로 분열하기 시작한 약 100년간을 의미하고, 좀더 엄격하게 말하면 미·소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0년경을 일컫는다.

영어 ‘Cold War’의 번역어인 ‘냉전’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차가운(冷) 전쟁(戰)’을 뜻한다. 개념은 이를 활용하는 이들의 인식 틀을 규정한다. 냉전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긴장 상태이지만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떠올린다. 냉전기 유럽은 이와 같은 개념이 잘 부합하는 사례다.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고 서유럽과 동유럽이 분열했지만, 미국이 이끄는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소련이 이끄는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직접적 군사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각지에 스파이가 암약하고 핵전쟁의 공포가 만연했으나 유럽의 냉전은 사실상 ‘차가운 평화’ 상태였다. 냉전 개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은연중에 유럽의 경험을 특권화하고, ‘유럽식’ 개념을 중심으로 냉전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냉전이라는 시간대의 공간적 범위는 전 지구에 걸쳐 있었다. 유럽식 냉전 개념만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현상이 무척 많다. 유럽 바깥 지역의 냉전 경험은 ‘차가운 평화’는커녕 ‘뜨거운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스타는 기존의 협소한 냉전 개념이 유럽 중심적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뜨거운 전쟁’까지 포괄하는 ‘글로벌 냉전(Global Cold War)’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냉전을 단순히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형성한 시대로 이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냉전은 어떻게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을까. 이는 이 책 원서의 부제인 ‘제3세계의 개입과 현대의 형성(Third World Interventions and the Making of Our Times)’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제3세계에 개입하는 주체는 냉전기의 두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다. 18세기부터 1960년대까지를 다루는 이 책의 전반부는 미국과 소련 중심의 지구사에 집중한다. 요컨대 지금까지 많은 연구들이 냉전의 주체로서 미국과 소련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정하고 두 나라가 유럽에서 경쟁하는 것을 다루어왔다면, 이 책은 미국과 소련의 역사를 먼저 서술한다. 베스타는 미국과 소련을 유럽사의 확장판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자유와 정의)를 담보한 ‘제국’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냉전이 단순히 유럽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힘의 패권이 교체되는 시기가 아니라 제국주의가 제국 간 경쟁으로 바뀌는 시대 자체의 변화이며, 미국과 소련이라는 특수한 나라가 국제 정치를 이끌어갔기에 냉전이 비로소 지구화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유럽 제국주의는 위기에 봉착했다. 유럽이 위기에 빠지자 비유럽 지역에서 탈식민 독립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 미국과 소련이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미국은 ‘자유’라는 가치에 의거해 유럽의 식민 지배를 부정적으로 인식했으며, 소련은 ‘정의’라는 관점에서 유럽 중심의 기존 질서를 혁파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탈식민 독립 운동가들에게도 미국과 소련은 매력적인 존재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다시금 식민 질서를 복원하려 하자 탈식민 독립 운동은 이에 맞서 저항했고, 미국과 소련은 적어도 유럽 제국주의 편에 서지는 않았다. 또한 미국과 소련은 제3세계 지역을 직접 지배하지 않았다. 다만 제3세계의 정치·사회적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냉전기 비유럽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과 내전은 미국과 소련의 개입과 함께 봐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제3세계 개입만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미국사와 소련사에 대한 저자의 독창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학문적 명성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Third World Interventions’의 뜻은 ‘제3세계에 대한 개입’이기도 하지만 ‘제3세계의 개입’을 뜻하기도 한다. 이 책 후반부는 제3세계가 어떻게 미국과 소련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가 어떻게 역동적으로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베스타는 미국과 소련의 제3세계 개입 과정에 제3세계 엘리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꼼꼼한 외교 문서 분석을 통해 살피고 있다. 냉전기 제3세계의 집권자나 반대파 모두 미국과 소련이라는 동맹국을 선택할 수 있었다. 적의 적은 나의 편이라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통용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국과 소련의 세력 균형이 유지되더라도 제3세계는 자주 내전과 혁명에 돌입했고, 제3세계의 판도 변화에 따라 미국과 소련의 세력 균형이 흔들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이와 같은 관점 아래 냉전은 점점 더 미국과 소련만의 이야기를 넘어선다. 중화인민공화국, 쿠바, 베트남이 등장하고 냉전을 다루는 베스타의 시선은 한층 넓어진다. 앙골라 내전과 에티오피아 혁명을 돌아보고,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일련의 위기가 미국과 소련의 데탕트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본다.
베스타가 특히 주목하는 시기는 1970년대다. 이때 제3세계는 각기 민족주의, 사회주의, 이슬람주의라는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하거나 이 중 몇 가지를 조합하는 선택을 내린다. 그리고 1970년대의 선택이 남긴 성공과 실패의 유산이 미국과 소련뿐 아니라 제3세계를 포괄하는 현대 세계를 형성했다고 본다. 그 결과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수렁에 빠져 몰락의 길로 들어섰고, 레이건 행정부의 선택은 제3세계의 여러 국가를 무너뜨리고 이어 소련의 변화와 몰락에도 영향을 주었다.
냉전기에 직면했던 이와 같은 문제는 소련의 해체 이후 완전히 끝났을까?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미국의 개입주의와 제3세계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략 그리고 이후의 이슬람 국가 등장, 현재까지 계속되는 미국-이란의 갈등 등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여전히 제3세계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전과 같은 제3세계주의의 깃발은 존재하지 않지만, 난민 문제를 비롯해 제3세계에서 출발한 여러 문제는 이제 다시금 미국과 유럽 그리고 동아시아라는 중심부에도 일종의 되먹임(feedback)을 주고 있다. 여전히 제3세계의 ‘개입’은 끝나지 않았다.

냉전은 왜 한반도에서 더욱 가혹했을까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냉전은 다른 그 어떤 지역보다도 한반도에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한반도만큼 냉전의 영향이 심하고 파괴적인 곳은 없었다. 냉전으로 인해 조국을 황폐화한 전쟁이 발발했고, 적어도 250만 명의 한반도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냉전이 한반도에서 이토록 파괴적이었던 두 가지 주요 원인을 밝힌다. 첫째, 1890년대부터 본격화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일본의 점령 및 식민화가 한반도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1940년대부터 국제 체제가 냉전 체제로 재편되면서 미국과 소련이 남과 북의 단독 정부 수립을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는 중국의 여러 제국과 관계를 맺어왔지만 오랫동안 독립성을 유지했다. 조선은 19세기 후반부터 제국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청 제국은 기존의 전통적인 조선-청 관계를 폐기하고, 새로운 형태의 종속 관계를 수립하고자 했다.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의 개국을 원했고, 이를 통해 통상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또 근대화를 급속히 진행하던 일본 제국은 조선에서 청과 서구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한편, 조선을 일본의 관리하에 두고 일본식 근대화를 강요하려 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모두 승리한 일본은 1910년 한반도를 일본 제국의 일부로 병합했다.
한반도가 일본 제국에 불법적이고 잔인하게 병합되기 이전에, 한반도에는 새로운 형태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이 나타났다. 이는 외국 제국주의와의 조우를 통해서였다. 당대 조선인 엘리트 대부분은 어떻게 그들만의 방법으로 근대화를 이루고, 조국의 부국강병을 성취할 수 있을지 고심했다. 몇몇 인사는 일본과 협력하면 이와 같은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다른 이들은 독립을 강하게 추구하며 이를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해 이루고자 했다. 망명 상태로 독립 운동을 하던 조선인들이 주로 선택한 방향은 바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였다. 20세기 초 지구의 모든 지역에서 전개된 사회주의자와 그 반대자들 사이의 투쟁이 그러했듯 조선인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대립은 매우 격렬했고, 이 둘은 서로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1940년대 일본 제국이 미국 및 소련과 대립하는 길(일본 제국은 이 두 나라를 상대로 승리할 수 없었다)을 택하자, 조선 독립 운동가들이 조국의 미래를 두고 자신들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조선인의 이데올로기적 분열과 1940년대 국제 체제가 지구적 차원의 냉전으로 전환되면서 한반도에는 두 분단 정권이 등장했다. 한반도의 냉전적 분단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벌어진 한국전쟁으로 고착화했고, 남한과 북한은 격렬히 대립하는 두 국제 동맹 체제하에 편입되었다. 지구적 차원의 냉전이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종식되었지만, 한반도인의 노력에도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한반도에서 냉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어판 서문)

책의 의의와 결론

물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은 냉전을 두 초강대국이 군사력과 전략적 통제를 둘러싸고 대부분 유럽 지역에서 벌인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런 기존의 시각과 달리 냉전에서 가장 중요한 국면은 군사나 전략, 유럽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대개 제3세계의 정치·사회적 발전과 관련이 있었다고 본다. 탈식민지화와 제3세계의 급진화는 냉전의 직접적 산물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 냉전의 영향을 받았다. 이 두 가지 과정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많은 부분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냉전의 영향 중 일부는 단순한 우연이었지만, 그중 많은 부분은 초강대국의 직접 개입을 통해 형성되었다. 냉전기 혁명과 개입은 오늘날의 파국적 결과로 이어진 범유럽 국가와 세계 다른 지역과의 관계 유형을 형성했다.
역사적으로, 특히 남반구의 시각에서 보면 냉전은 방법을 조금 달리한 식민주의의 연장이었다. 충돌의 과정에서 보면 냉전은 주로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통제와 지배에 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초강대국과 현지 동맹국이 취한 방법은 유럽 식민주의의 최종 국면에서 나타난 양상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거대한 사회·경제 사업으로 지지자에게는 근대성을 약속하고, 반대자나 그 진보의 길에 방해가 되는 자들에게는 죽음을 선사하는 방식 말이다. 제3세계 입장에서 볼 때, 냉전은 식민지 시기와 하나의 연속체라 할 수 있었다. 냉전의 시작은 1945년 또는 1917년이 아니라, 유럽 제국주의 국가끼리 아프리카를 분할한 1884년 베를린 회의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에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한 1415년을 기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지속된 유럽의 지배라는 관점에서 보면, 초강대국의 대립이나 이데올로기의 대립 역시 새로운 현상은 아니었다. 냉전 이전에도 제3세계에 개입한 강대국들은 자주 충돌하곤 했으며, 때때로 이런 충돌은 경쟁하는 관념의 산물이었다.
냉전사의 비극은 제3세계와 초강대국이 서로 얽혔을 때, 본질적으로 반식민주의라는 출발점을 공유했던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역사적 기획이 지배의 형태 면에서 옛 식민주의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해졌다는 점에 있다. 여기에는 충돌의 강도, 이해관계의 대립, 상대가 이겼을 경우 예상되는 결과를 둘러싼 묵시록에 가까운 공포가 영향을 주었다. 비록 냉전기 내내 미국과 소련이 식민주의라는 형식에 반대해왔지만, 이 두 국가가 자국의 근대성을 제3세계에 부과하는 방식은 이전의 유럽 제국, 특히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의 영국과 프랑스 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의 방법은 제3세계 사회의 문화·인구·생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고, 저항하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군사적 조치가 뒤따랐다.

“우리의 미래는 장차 발생할지도 모르는 폭력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성찰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냉전의 큰 교훈 중 하나는 일방적 군사 개입은 이점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국경의 개방, 문화적 상호 작용과 공정한 경제 교환이 모두에게 이점을 준다는 사실이다. 한편 저자는 공격받았을 때의 자위권을 강력하게 옹호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더욱더 다양해지고 있으며 소통이 우리를 더 가까이 만들고 있다고 강조한다. 충돌을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행동을 국제적으로 조직하고, 필요하다면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다자적 차원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점이다. 냉전은 지구적 개입을 주도했던 체제가 정확히 이 반대 방향으로 행동한 비극적 사례였음을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모두 깨달을 것이다.

 

목차

지도 목록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글

서론
01 자유의 제국: 미국 이데올로기와 대외 개입
02 정의의 제국: 소련 이데올로기와 대외 개입
03 혁명가들: 반식민주의 정치와 그 변환
04 제3세계의 형성: 혁명과 대립하는 미국
05 쿠바와 베트남의 도전
06 탈식민지화의 위기: 남부 아프리카
07 사회주의의 전망: 에티오피아와 아프리카의 뿔
08 이슬람주의자의 도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09 1980년대: 레이건의 공세
10 고르바초프의 철수 결정과 냉전 종식
결론: 혁명, 개입 그리고 초강대국의 붕괴

약어표

옮긴이의 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 내용 출처 : 교보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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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