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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전쟁, 참사…긴 터널 속 10권의 길잡이 ① 국내서

 

 

그래픽 동혜원 hwd@hani.co.kr, 게티이미지뱅크
 

‘역대 최악의 대선’과 정치의 실종,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팬데믹, ‘세월호’를 겪고도 또다시 마주한 사회적 참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꺾어놓은 세계 평화와 공존의 비전,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는 미중 갈등과 언제 내려앉을지 몰라 위태로운 세계 경제, 코앞에 닥친 기후 위기에도 끝없이 유예되는 대응….

여지껏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듯합니다. 문제는 고개를 돌려봐도 그 터널이 여전히 우리 앞으로 뻗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간절한 바람과 달리 ‘전환’은 그리 쉽게 오지 않을 듯합니다. 터널의 한가운데, 2022년 끄트머리에 서서 ‘올해의 책’ 스무 권을 꼽아봅니다.

 

한 해 동안 <한겨레> 책지성팀이 여러분께 소개하기 위해 꾸역꾸역 읽어낸 책들 가운데 국내서 10권과 번역서 10권을 골랐습니다. 저 끝에서 손짓하는 불빛까지는 못 되겠지만, 터널을 지나는 여러분의 머리에는 냉기를, 가슴에는 온기를 불어넣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봅니다.

 

불평등은 세대를 가로지른다

 

그런 세대는 없다 :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 / 신진욱 /개마고원

305.2 신79ㄱ  사회과학열람실(3층)

 

586, 엠제트(MZ), 이대남 등 손쉬운 세대론이 난무하는 시기, 사회학자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기성세대 대 청년’이라는 세대불평등 담론의 허구성을 작심하고 파헤쳤다. 청년과 기성세대의 현실,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 등을 깊이 들여다본 지은이는 같은 세대라 해도 결코 동일한 속성을 공유하지 않으며, 핵심 문제는 ‘세대 간 불평등’이 아니라 ‘세대 내 불평등’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세대를 가로질러 발생하는 불평등의 실체를 호도하여 세대 사이의 불평등인 양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누구인가? “대립의 담론이 지워버린 현실의 삶들”을 직시하기 위한 길을 열어준다. 

 

성명미상의 삶을 아프게, 웃기게, 놀랍게

 

이중 작가 초롱  / 이미상 /  문학동네

811.32 이39ㅇ  인문과학열람실(3층)

 

올해 ‘단 하나의 소설책’으로 꼽을 만하다. 성명미상의 사람들을 서사 복판에 세운다는 의지의 필명으로, 2018년 문단에 내놓은 첫 단편 ‘하긴’(2019년 젊은작가상)부터 올 상반기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까지 전체 8편을 엮은 이미상 작가의 첫 소설집.

386세대의 허위, 좌절 따위를 자식세대와의 관계를 통해 통렬히 은유하고, 이른바 엠제트(MZ)세대가 중층적 분절적으로 겪는 실존, 윤리의 무게 등을 ‘리드미컬’하게 다뤄낸다.

‘하긴’의 첫 단락엔 “이름이 거하면 인생이 이름에 잡아먹힌다”는 문장이 박혀 있다. 전체 주제를 추리자니 거해졌을 뿐, 작가적 명분이 아닌 이름 없는 자들의 실체적 형상을 이미상은 웃기게, 아프게, 빗대고 내치듯 그린다. 이 소설들이 과연 온전히 국외번역될 수 있을까. 

 

한국 정신사 ‘화쟁 전통’ 세운 원효의 진면목

 
 

원효의 발견  / 남동신 /  사회평론아카데미  / 구입 중

 

남동신 서울대 교수가 쓴 <원효의 발견>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불교사상가로 꼽히는 원효의 생애와 저술과 사상을 두루 깊숙이 파헤쳐 들여다본 책이다. 지은이는 새로운 시각으로 본 원효상을 과감하고도 면밀하게 그려낸다.

이 책이 공들여 구명하는 것은 원효의 핵심 사상인 ‘일심’과 ‘화쟁’의 본뜻이다. <대승기신론 소‧별기>와 <금강삼매경론> 같은 대표 저술에서 원효는 중관사상에 머무르지 않고 유식사상을 끌어들여 서로 회통시켰다. 이때 회통의 근거가 된 것이 ‘일심’이다.

원효는 7세기 후반 동아시아를 휩쓴 신역‧구역 갈등을 일심 사상으로 극복함으로써 한국 정신사의 화쟁 전통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빨치산’ 아버지의 보편성 부각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 창비

811.32 정79ㅇ  인문과학열람실(3층)

 

정지아는 빨치산 출신 부모와 자신의 이야기를 쓴 ‘실록’ <빨치산의 딸>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신춘문예로 등단하기 한참 전이었다. 등단 뒤에도 중단편소설들에서 부모 이야기를 꾸준히 썼던 그가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장례식 사흘을 배경으로 아버지의 지난 삶과 그가 관계 맺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뭉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들려줘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작가는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이 소설을 두고 “가벼워지니 널리 보이고, 널리 보이니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빨치산’이라는 특수성보다 ‘아버지’라는 보편성이 더 중요한 소설”이라고 자평했다. 

 

‘선공후사’ 헌걸찬 정신 돋보여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  / 정수일 /  아르테  / 구입 중

 

 

‘간첩 깐수’로 세상을 놀래킨 문명사가 정수일이 미수(88살)를 맞아 통일과 문명교류학 정립에 바친 평생을 회고록으로 풀어냈다. 얄팍하고 각박하기만 한 시절, ‘나’보다는 시대와 역사, 민족을 앞세우는 선공후사의 정신이 돋보인다.

신생 중국의 전도유망한 외교관 자리를 박차고 통일 사업에 몸 바치겠다며 ‘환국’을 결단한 일에서부터, 간첩 활동으로 들어간 감옥에서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곳을 연구실 삼아 책을 읽고 원고 집필에 매진한 기개, 출옥 뒤 지구 곳곳을 누비며 실크로드학과 문명교류학의 현장을 확인한 실증 정신, 북과 남 두 부인과 딸들에 얽힌 개인적 회한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 낱낱이 파헤치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동아시아 냉전과 식민지‧전쟁범죄의 청산  / 김영호 외 / 메디치미디어

950 김64ㅅ  사회과학열람실(3층)

 

올해는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구축된 지 70년 되는 해였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란 전범국 일본이 미국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성립한 체제를 말한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는 이 조약에 내장된 문제들과 이 체제가 일으킨 문제들을 낱낱이 밝힌다. 조약 체결로 일본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 됐고 전쟁범죄자 대다수가 면죄부를 받았다.

역사 문제와 영토 문제를 묻어버림으로써 심대한 후유증을 낳은 것은 더 큰 문제다. 이 책은 한‧중‧일 시민이 힘을 모아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낳은 시대 역행을 저지하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시대에 빛 던지는 ‘주역 강해’

도올 주역 강해  /  김용옥 / 통나무

181.211 김66ㄷ  인문과학열람실(3층)

 

<도올 주역 강해>는 철학자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가 쓴 <주역> 해설서다. 지은이는 지난 2천여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탄생한 주요한 <주역> 해석을 바탕에 깔고서 이 난해한 책을 오늘의 언어로 바꾸어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데 빛을 주는 책으로 빚어낸다.

<주역>은 우주 만물과 인간 세계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책이자 그 변화를 점치는 책이다. <주역>에는 깊은 ‘우환의식’이 배어 있다.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그 실존의 한계상황에서 하늘에 뜻을 묻는 것이 점이었다. 사사로움을 넘어선 물음이었기에 역에 대한 해석을 통해 윤리학적‧형이상학적 사유가 자라날 수 있었다. 

 

‘사랑의 윤회’를 믿는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 진은영 /  문학과지성사

811.15 진68ㄴ  인문과학열람실(3층)

 

진은영 시인이 10년 만에 내놓은 네번째 시집. “사랑의 윤회를 믿는” 시인은 이전 시집들에서도 줄기차게 사랑을 노래해왔다. 다소 난해할 수도 있는 그의 시들이 그럼에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다 하겠다.

시집 제목에서 보듯, 그는 새 시집에서도 매력적인 사랑의 노래를 들려준다. 또한 이 시집은 2014년 세월호 충격 이후 그가 처음 내놓는 것이어서, 그 참사가 남긴 상흔과 그것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려는 안간힘 역시 시집에는 역력하다.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그날 이후’)이라 아빠에게 말하는 예은이의 생일시는 많은 독자를 울렸다. 

 

깻잎 한 장에 담긴 이야기

 

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 우춘희 / 교양인

331.544 우817ㄲ  사회과학열람실(3층)

 

크고 작은 제조업체는 물론 농업과 어업 같은 1차산업 현장에서도 이주노동자의 존재가 필수적이게 된 지도 벌써 오래다. 2020년 겨울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사건은 그런 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 책은 사회학자인 지은이가 참여 관찰 방식으로 기록한 최초의 농업 이주노동자 연구서다. 지은이는 크메르어를 배우고 캄보디아 현장 연구를 거쳐 직접 깻잎 밭에서 일하며 이주노동자들과 ‘사업주’인 농민들을 만났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인권침해, 농촌의 변화, 고용허가제의 불합리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밥상 위 깻잎 한 장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0원살이’ 2년이 알려준 자유

 

0원으로 사는 삶 : 나의 작은 혁명 이야기 /  박정미 / 들녘

811.4 박73ㅇ  인문과학열람실(3층)

 

온통 돈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쓰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이 책의 지은이는 그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더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시작은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워킹 홀리데이로 떠난 영국에서 해고를 당하고 빈털털이가 된 뒤 고민 끝에 ‘0원 살이’를 결심했다. 유기농 농장에서 일을 하며 자급자족하는 ‘우핑’과 더 엄격한 노동 공동체 등을 거쳐, 런던의 빈 배와 빈 건물에서 지내며 대형 마트의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재고 음식물로 배를 채웠다.

히치하이킹으로 유럽 각국과 인도까지 여행하면서 돈이 아닌 사람에게 의존하는 삶을 깨우친 그는 지금 지리산의 빈집에서 살고 있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
Posted by sukji

 

 

[올해의 책-국내서] 때로는 더디고, 때로는 아플지라도

한반도에 봄 기운이 넘쳤다. 남북의 만남은 북미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추위는 어김없이 닥쳤다.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새벽 홀로 순찰을 돌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책은 우리가 발딛고 선 곳을 진실하게 마주하도록 이끈다. <한겨레>는 올해도 국내서 10권, 번역서 10권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서영인 문학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등 5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한겨레 책지성팀 구성원들이 선정했다.

 

 

 

슬픔 공부의 첩경, 문학에 길을 묻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811.4 신94ㅅ(인문실)
신형철 지음/한겨레출판·1만6000원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소설도 1만부 판매가 쉽지 않은 세태에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불과 석 달 만에 4만부 가까이 팔렸다. 올해 작고한 선배 비평가 황현산처럼 신형철 역시 문학의 경계를 넘어 다수 독자를 열성 팬으로 확보했다는 방증이겠다.

슬픔의 수미쌍관. ‘슬픔’을 앞뒤에 거느린 책 제목은, 슬픔 공부의 절박한 필요성과 그 어려움을 요령껏 갈무리한다. 숱한 죽음과 폭력으로 사회 전체가 휘청거릴 때, 그중에서도 약한 이들과 착한 이들에게 슬픔과 아픔이 쏠릴 때, 신형철은 자주 탄식하고 때로 원망도 하지만, 주로는 책을 읽고 생각을 정돈한다. 문학이 그에게는 슬픔 공부의 첩경이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묻는 ‘두 고기 이야기’

고기로 태어나서-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636.0832 한58ㄱ(자연실)
한승태 지음/시대의창·1만6800원

고기로 태어난 건 마찬가지인데, ‘힘쓰는 고기’(노동하는 인간)와 ‘맛있는 고기’(닭·돼지·개)는 왜 다른가?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닭·돼지와 개 사이에는 구분이 없는가?

<고기로 태어나서>는 르포 작가 한승태가 4년 동안 식용 동물농장 9곳에서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고기’들의 고통을 동력으로 삼아 돌아가는 축산 산업의 한복판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에 서 있는 온갖 경계들을 의심한다. 의심하지 않으면 정당화되고, 그것은 결국 괴물이 된다. 지은이가 멱살을 쥐고 데려간 현장을 경험해본 뒤에, “당신과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혐오표현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잡다

말이 칼이 될 때-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 323.4 홍53ㅁ (사회실)
홍성수 지음/어크로스·1만4000원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 혐오표현은 우리 사회 문제의 핵심부로 진입했다. 일베 등이 사용하는 극단적인 혐오표현부터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된장녀’ ‘홍어’ ‘흑형’ 등이 끊임없이 기삿거리를 만들어냈다.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할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란 대의를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할지는 답을 쉽게 내리기 어려운 문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나라들처럼 혐오표현을 규제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는 소중하다. 그는 이 책으로 당대의 문제에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지식인의 한 모범을 보여줬다.

 

 거인의 두 발은 과연 어디를 딛고 있나

아틀라스의 발-포스트식민 상황에서 부르디외 읽기 ? /

617.522 천19ㄱ2Kㅅ(자연실) 이상길 지음/문학과지성사·2만9000원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90년대부터 한국 지식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하비투스’, ‘장(場) 이론’ 등 그의 이론과 개념들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상길 연세대 교수는 과연 우리가 부르디외를 제대로 ‘써먹고’ 있는지 묻는다.

부르디외와 그의 이론, 그리고 그를 둘러싼 우리의 수용까지 폭넓게 조명하는 <아틀라스의 발>은 무엇보다 “대상이자 방법으로서 부르디외”에 주목한다. “부르디외는 자신의 사회학까지 들어올릴 수 있는 학문적 지렛대의 받침점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포스트 식민’ 상황에서 어떻게 학문을 할 것이냐 하는 운명 같은 물음에 치열하고 성실한 ‘되물음’을 제출한, 흔치 않은 연구서다.

 

 삶과 사상, 예술에 대한 총체적 연구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1, 2
박희병 지음/돌베개·전권 20만원

18세기 조선의 선비화가 능호관 이인상(1710~1760)은 그림·글씨·시 분야에서 삼절(三絶)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태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서 단행본 한 권 없었다.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은 한문학자 박희병(62) 서울대 교수가 20여년 동안의 노력을 들여 그의 삶과 사상,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대작이다.

새 문헌을 발굴하고 금석문의 현장 탁본을 뜨고 경매에서 작품을 사서 연구하는 등 지은이가 기울인 치열한 노력은, 조선의 보수 지식인이 어떻게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열게 됐는지 새롭게 밝혀줄 뿐 아니라 기존 미술사학계의 연구 풍토에 통렬한 비판을 던진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을 말한다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페미니스트 크리틱 / 305.42 김68ㄷ (사회실)
김은실 엮음/휴머니스트·1만4000원

올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단어가 있다면 단연 ‘미투’(#metoo)가 아닐까. 미투 운동과 그 전의 문단 내 성폭력 등 젠더 문제가 발생해 사람들을 각성시키면, 페미니즘 책들은 역사와 이론과 공감으로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을 단단하게 뿌리내리게 했다.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는 김은실, 권김현영, 정희진 등 국내의 여성학자 9명이 미투 운동과 탈코르셋 운동, 여성 입대 논쟁, 저출산 담론 등 지금 가장 뜨거운 페미니즘 주제들을 논한 책이다. 사건에 대한 즉물적 반응에 멈추지 않고, 더 심층으로 들어가 벌이는 논쟁이 페미니즘을 계속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서 날리는 로빙슛, 러빙슛!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796.334 김95ㅇ (자연실)
김혼비 지음/민음사·1만4800원

“기절할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30대 직장여성 김혼비(필명)가 들려주는, 유쾌하고 박진감 넘치는 축구 사랑 에세이. 한국의 아마추어 축구에는 어쩐지 ‘아저씨 냄새’가 난다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다. 지은이는 책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첫 책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맛깔스런 글솜씨를 축구공 삼아, ‘맨스플레인’을 일삼는 남성과 세상의 편견에 맞서, 경쾌한 드리블과 페이크와 정면돌파로 짜릿한 슈팅을 날린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이 (사회적) ‘운동’이 되는 순간”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정적으로 축구를 즐기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킥킥’ 웃음과 울컥한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가 화상경험자들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화상경험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811.8 송96ㄴ (인문실)
송효정·박희정·유해정·홍세미·홍은전 지음/온다프레스·1만6000원

여러 사람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화상 경험자들이 용기를 냈다. 중증 화상을 겪은 일곱 사람과 가족이 사고의 기억과 고통, 절망 그리고 다시 ‘나’를 찾는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치료와 수술, 생활고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이들이 많다. 힘겨운 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곁에 있는 다른 환자들을 만나 위로를 받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함을 직시하고 자신을 긍정했다. “있는 그 모습.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봐줘야 해.” 화상 경험자들에게 응원을 보내야 함을 느끼고 깨닫게 하는 책이다.

 

 한 사회가 장애를 대하는 태도를 묻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362.4 김67ㅅ (사회실)
김원영 지음/사계절·1만6000원

선천성 지체장애인 김원영(37) 변호사가 자신의 경험과 국내외 사례 및 이론 연구를 토대로 장애인, 소수자, 나아가 인간 존엄성의 참뜻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아냈다. 존엄을 위한 퍼포먼스, 품격과 실격, 잘못된 삶 소송, 인위적 장애 선택 등 생소하고 불편하기까지 한 개념과 논쟁 사례들을 제시하며, 한 사회가 장애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실존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서로 존중하는 사람들의 일상적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의 결핍을 수용하는 윤리적 결단과 권리의 발명”을 강조한다. 이는 “예의바른 무관심, 섬세한 도움, 긴 시간을 들여 상대의 ‘초상화’를 그려보려는 실천”에서 가능하다.

 

 그 시대, 훌륭한 판검사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법률가들-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 340.092 김227ㅂ (사회실)
김두식 지음/창비·3만원

일제강점기와 극한의 이념 대결을 통과해온 한국 근현대사의 규정력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 법조계의 문제들을 드러내왔던 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법률가들>에서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법조계의 어두운 기원을 파헤쳤다.

3년 동안 수많은 자료를 뒤져 해방 뒤의 법률가 3000여명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인 만큼, 신선한 ‘팩트’들이 빼곡하다. ‘불멸의 신성가족’의 기원에는, 식민지의 잔재와 ‘관제 빨갱이’를 만들어내면서까지 출세를 쫓았던 이들, 시험도 보지 않고 법관이 된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어두운 기원을 직시하고 반성할 용기가 과연 있는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정면으로 묻는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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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