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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현대인 위한 ‘서머리 서비스’ 인기-책·영화·뉴스…알맹이만 떠먹여준다

 

 

책·영화·드라마를 넘어 시사·교양 분야에서도 서머리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이 관심을 모은다. 지난해 12월부터 어려운 시사 뉴스를 젊은 층이 이해하기 쉬운 콘텐츠로 재가공해 서비스하는 ‘뉴닉’, 지상파 TV 프로그램 영상을 기반으로 긴 호흡의 사건·사고를 재구성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인 ‘알려줌’이 대표적이다. (뉴닉·알려줌 제공) # 모 대기업 홍보팀에서 근무하는 강민수 씨(가명)의 별명은 ‘만물박사’다. 최신 유행 영화든 드라마든 베스트셀러든, 물어만 보면 척척 대답이 막힘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 TV는 아예 안 보고 영화관에 발길을 끊은 지도 꽤 됐다.

 

비결은 스마트폰에 있다. 틈날 때마다 유튜브나 팟캐스트 방송으로 책이나 영화, 드라마 리뷰를 열심히 찾아본다. 강 씨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업무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흐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유튜브나 팟캐스트 리뷰 등 ‘서머리 콘텐츠(summary contents)’를 적극 활용한다. 서머리 콘텐츠에는 핵심 내용은 물론 놓치고 지나갈 만한 사소한 포인트들까지 상세히 정리돼 있어 오히려 실제 콘텐츠를 본 사람보다 더 말할 거리가 많은 것 같다”며 자랑했다. 현대인은 참 바쁘다. 책도 읽고 영화관도 가고 신문도 좀 넘겨가며 살고 싶건만, 도통 시간이 안 난다. 최근 ‘서머리 콘텐츠’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서머리 콘텐츠란 영어 단어 의미 그대로 ‘원래 콘텐츠를 요약정리해 재가공한 콘텐츠’를 말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의 필기노트’쯤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다만 스마트폰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영상이나 음성 콘텐츠라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1~2시간짜리 드라마나 영화는 10분 내외 동영상으로 요약된다. 한 달이 걸려도 도통 안 읽히는 두꺼운 인문 서적도 1시간짜리 방송 한 편이면 정복 가능하다. 서머리 콘텐츠만 전문으로 생산·유통하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최근 서머리 콘텐츠가 가장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분야는 ‘영화’다. 조회 수 1000만건을 넘는 영화 리뷰가 나올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보니 요새는 영화 배급사나 투자사에서 먼저 유튜버들에게 리뷰 제작 요청을 하기도 하고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시리즈물의 인기도 영화 서머리 콘텐츠 성장에 한몫했다. 올해 개봉한 ‘어벤져스 : 엔드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마블스튜디오에서 내놓은 전작 21편을 전부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연스레 세계관에 대한 요약정리 수요가 늘었다. 일례로 ‘어벤져스 모든 영화 총정리’라는 제목의 동영상 콘텐츠는 유튜브 조회 수 약 600만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구독자 수십만명을 웃도는 인기 유튜버가 이미 수두룩하다. ‘고몽’(구독자 수 97만명), ‘지무비’(82만명), ‘B-맨’(78만명), ‘백수골방’(38만명), ‘라이너의 컬쳐쇼크’(22만명) 등이 대표적이다.

유튜브 채널 ‘백수골방’을 운영하는 김시우 씨는 “기존 활자 중심 영화 평론은 디지털 문법에 익숙한 밀레니얼·Z세대에게 더 이상 반응을 얻기 힘들어졌다. 도달률도 낮아졌고 영화 전문지도 많이 폐간했다. 영화를 리뷰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 수십만 구독 자랑하는 영화 리뷰 유튜버

영화 배급사에서 먼저 리뷰 제작 요청도

영화보다 진입장벽이 높은 ‘책’에도 서머리 콘텐츠 열풍이 분다. 이른바 ‘북 리뷰’다. 활자보다는 영상에 익숙한 Z세대에게 반응이 더 좋다. TV 방송에서 한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독서 교양 프로그램이 부활한 것도 그 방증이다. tvN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는 스테디셀러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주는 콘셉트로 순항 중이다.

도서 서머리 콘텐츠 시장을 이끈 건 인터넷 라디오 방송 ‘팟캐스트’다. 팟캐스트 전문 플랫폼 팟빵에는 북 리뷰 관련 채널만 약 1200개가 있다. 최근 종방하기는 했지만 13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이동진의 빨간책방’이 간판스타다. 대형 서점들도 서머리 콘텐츠를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삼고 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는 김하나 작가와 오은 시인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책읽아웃’을, 교보문고 역시 문학평론가 허희와 영화평론가 허남웅을 내세운 ‘낭만서점’을 운영 중이다. 전자책 정기구독 서비스 ‘밀리의서재’에서는 지난 8월 새로운 방식의 도서 요약 콘텐츠인 ‘챗북’을 선보였다.

책의 주요 내용을 15분 내외 분량으로 요약해 채팅창에서 알기 쉽게 대화하듯 설명해주는 서비스다.

전자책 플랫폼 ‘리디북스’를 운영하는 리디주식회사가 지난해 스타트업 ‘디노먼트’를 인수한 배경도 서머리 콘텐츠의 힘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디노먼트가 운영하는 ‘책 끝을 접다’는 책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카드뉴스나 짧은 애니메이션 형태로 제작해 SNS에 올리는 콘텐츠 마케팅 채널이다. 책 끝을 접다에서 서머리 콘텐츠로 재가공한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페이스북에서만 600만명에게 도달, 소개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 ‘앨리스 죽이기’는 책 끝을 접다 소개 후 발간된 지 2년 만에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 역주행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매일같이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는 시사 분야도 서머리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다.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은 Z세대를 겨냥한 뉴스 메일링 서비스로 화제를 모은다. 일주일에 세 번, 엄선한 뉴스를 5분 안에 읽을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어 메일로 보내준다. 캐릭터 ‘고슴이’가 어려운 뉴스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식인데, 톡톡 튀는 어휘 선택과 신조어 활용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유엔 안보리 북핵 논의’를 요약정리한 기사의 제목은 ‘늙다리와 로켓맨’이고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을 정리한 기사는 인기 시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를 패러디한 ‘고슴이 알고 싶다’로 풀어내는 식이다. 지난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뉴닉의 구독자는 올 11월, 1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12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진행한 ‘뉴닉 굿즈 펀딩’ 역시 8시간 만에 펀딩 목표액 1000만원을 훌쩍 넘기며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동영상 콘텐츠 스타트업 ‘알려줌’은 TV 프로그램을 5분 정도로 요약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인다. 지상파 방송국의 시사·교양·보도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서머리 콘텐츠 플랫폼 ‘알지’를 1월부터 서비스한다. 단순히 특정 프로그램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분을 활용해 새로운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KBS, MBC와 IP 계약을 맺은 덕에 영상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박우성 알려줌 대표는 “시사 이슈는 짧게는 1~2주 만에 끝나기도 하지만 길게는 10년 넘게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부산저축은행 파산 사태는 2011년부터 시작됐지만 최근까지 계속 이슈화되고 있다. 이처럼 호흡이 긴 이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길 원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 Z세대 서머리 수요 급증…‘장밋빛’ 전망

서머리 콘텐츠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식에 대한 열망이 크고 트렌드에 뒤처지기 싫은 Z세대가 시장을 견인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IBM기업가치연구소에 따르면 1995년 이후 태어난 Z세대가 특정 콘텐츠에 집중하는 시간은 ‘8초’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능력은 높아졌지만 상대적으로 긴 콘텐츠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졌다는 것이다.

영화 유튜버 라이너는 “유튜브 시대가 오면서 책이든 영화든 요약해서 전달하는 콘텐츠들이 경쟁적으로 나오는 추세다. 쉽고 경제적으로 콘텐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Z세대를 비롯한 젊은 층에서는 이미 일반적인 콘텐츠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김소연 뉴닉 대표는 “서머리 콘텐츠는 단순히 길이가 짧은 것이 아니라 효율성이 높은 콘텐츠를 말한다. 아무리 길이가 짧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실패한 서머리다. 뉴닉은 고슴이 캐릭터로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Z세대가 고민해볼 만한 거리들을 계속 던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머리 콘텐츠 인기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른바 떠먹여주는 콘텐츠만 접하다 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사고력’ 자체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서머리 콘텐츠만 계속 소비할 경우 단순 지식 습득에 그치고 그 지식이 쉽게 휘발될 가능성도 높다. 서머리의 주체가 자격을 갖췄는지도 의문스럽다. 본래 창작자의 주장이나 근거, 사고방식을 모두 이해하고 난 후에야 요약정리를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출처 : 매일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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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