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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번역서] 책은 다리가 되어 과거와 미래를 잇고

 

한반도에 봄 기운이 넘쳤다. 남북의 만남은 북미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추위는 어김없이 닥쳤다.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새벽 홀로 순찰을 돌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책은 우리가 발딛고 선 곳을 진실하게 마주하도록 이끈다. <한겨레>는 올해도 국내서 10권, 번역서 10권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서영인 문학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등 5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한겨레 책지성팀 구성원들이 선정했다.

 

 

 세계사 갈증, 이 책으로 채운다 / 909 G389AKㅈ(전2권) / 사회과학열람실(3층)

1870~1945,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
책임 편집 에밀리 S. 로젠버그, 조행복 이순호 옮김/민음사·5만8000원

1945 이후, 서로 의존하는 세계
책임 편집 이리에 아키라, 이동기 조행복 전지현 옮김/민음사·5만3000원

세계사는 한국 출판에서 공백 상태였다. 특정 주제로 세계사를 정리한 책은 넘쳤지만, 야심차게 세계사를 써보겠다는 시도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곰브리치 세계사>나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 등 80여년 전에 쓰여진 책들이 아직도 가장 많이 읽히는 세계사 책이었을 정도니 말이다. 미국 하버드대 출판부와 독일의 체하베크출판사가 함께 내는 6권짜리 대기획 <세계사>로 이런 공백이 메워졌다. ‘초국적 역사’라는 역사학계의 새 관점을 기반으로 서구 중심의 서술을 극복하고, 이주, 젠더, 생태, 문화 등 그동안 세계사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못한 주제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회적 조건이 삶과 죽음을 가른다

폭염사회-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 / 363.3492 K65hKㅎ/ 사회과학열람실(3층)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홍경탁 옮김/글항아리·2만2000원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에서 40도를 넘는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돼, 평소보다 700여명이 더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참사를 가혹한 기상 조건의 결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폭염사회>는 기상학이나 의학적 부검, 역학 조사가 찾아내지 못하는 참사의 ‘사회적 병인’이 무엇인지 드러냈다. 많은 사람들이 ‘홀로’ 죽어갔으며, 빈곤과 불평등, 약화된 공동체, 민영화에 따른 공적 지원 네트워크의 부재 등 여러 사회적 조건의 차이가 삶과 죽음을 갈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과학이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또 할 수 있는지 제시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올해 가장 뜨거운 논쟁 불러일으킨 칸트 번역

비판기 이전 저작 Ⅱ(1755~1763)
임마누엘 칸트 지음, 김상봉 이남원 김상현 옮김/한길사·3만5000원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모든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김재호 옮김/한길사·3만2000원

도덕형이상학
이충진 김수배 옮김/한길사·3만5000원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칸트 전집은 올해 학계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칸트 전집을 번역해 내오던 백종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학회 번역자들과 출판사가 사용한 ‘정본’ ‘공인’ ‘가독성’ 등의 표현을 문제 삼아 번역자들의 학회 탈퇴를 요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특히 칸트 철학의 핵심 개념인 ‘transzendental’ ‘a priori’의 번역어를 두고 백 교수와 칸트학회장 이충진 교수만이 아닌 칸트 전문가 김상봉, 후설 번역자 이종훈, 철학자 전대호, 전 헤겔학회 부회장 백훈승 등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번역이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 작업인지 일깨웠다.

 

 만물 관통하는 법칙 찾아가는 야심찬 시도

스케일-생물·도시·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 법칙

303.44 W517sKㅇ/ 사회과학열람실(3층)
프리 웨스트 지음, 이한음 옮김/김영사·3만원

‘크기가 만물을 결정한다.’ 이론물리학자이면서 복잡계 과학의 선구자가 된 제프리 웨스트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가 쓴 <스케일>은 동식물, 도시, 기업, 인간의 행동 등 다양한 영역을 관통하는 일반법칙을 밝히는 과학책이다. 이 책은 생명체를 지배하는 ‘4분의 1 지수 스케일링 법칙’, 사회경제 영역을 지배하는 ‘15% 스케일링 법칙’ 등 ‘크기’라는 관점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알려준다. 정부 정책, 도시 계획, 기업 전략 등 과학과 분리돼 존재할 수 있는 분야가 이젠 거의 남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적지 않은 책이다. 문제는, 인류의 크기가 인류의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의 최전선

숲은 생각한다-숲의 눈으로 인간을.. / 996.6 K79hKㅊ/ 사회과학열람실(3층) 
에두아르도 콘 지음, 차은정 옮김/사월의책·2만3000원

캐나다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50)은 1996년부터 4년 동안 아마존강 상류의 아빌라 마을에서 루나족과 함께 먹고 자고 사냥하며 현장 연구를 했다. 그 관찰과 사색의 결과물인 <숲은 생각한다>는 학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인간은 사고가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재규어에게 ‘엎드린 몸뚱이’가 공격해도 좋은 ‘고기’를 표상하듯, 의미를 만들고 그것을 파악하는 ‘기호과정’은 모든 생명의 본질이며 기호의 그물망은 인간을 포함한 숲의 모든 존재들에 걸쳐 있다. 제목 그대로 “숲은 생각한다.” 인간-동물이라는 이원론적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을 만들어가는 사유의 최전선에 놓인 책이다.

 

 개인’으로부터 ‘사람’으로 이행

부족의 시대-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개인주의의 쇠퇴

/ 302.5 M187tKㅂ / 사회과학열람실(3층)
미셸 마페졸리 지음, 박정호·신지은 옮김/문학동네·2만2000원

오랫동안 서구 근대는 개인을 중심에 놓고 합리적으로 조직된 ‘사회적인 것’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74)는 <부족의 시대>에서 개인이 아니라 ‘부족’이야말로 오늘날 ‘사회적 삶’의 중심에 있다고 주장했다.

후기 근대에 이르러, 소규모 사회집단, 집합적인 감정과 감성, 디오니소스적인 관능과 흥분 등 그동안 근대가 ‘탈주술화’ 과정에서 억눌러왔던 ‘작은 야만인들’이 회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신부족주의’를 공연히 두려워하고 악마화하기보다, ‘지금-여기’의 그 부글거림 자체를 직시하라고 충고한다. 초판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책이 품은 메시지는 여전히 현재적이다.

 

 신경과학의 오만함에 제동을 걸다

는 뇌가 아니다 / 128.2 G118iKㅈ / 인문과학열람실(3층)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열린책들·1만8000원

인공지능, 빅데이터, 뇌과학, 트랜스휴머니즘…. 무섭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예상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논하는 것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된 것만 같다. 이런 성과에 도취된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것을 과학이 설명해낼 수 있다고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신예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 예나대 교수는 이런 오만함에 제동을 건다. 그는 <나는 뇌가 아니다>에서 인간을 뇌로 치환시키고, 뇌의 작동원리를 알면 인간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신경과학’의 주장이 어떤 점에서 오류인지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짚어나간다. 해독제 같은 책이다.

 

 72년 만의 원전 번역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유재원 옮김/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한국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아 왔다. 매력적인 주인공 조르바의 생각과 행동은 많은 이의 세계관을 형성하거나 바꾸는 데 큰 구실을 했다. 한국에서 이 소설의 수용은 작고한 이윤기의 번역에 결정적으로 빚을 졌지만, 영어를 거친 중역이라는 사실은 아쉬움을 낳았다.

그리스어 전문가 유재원이 영어의 도움을 받지 않은 원전 번역 <그리스인 조르바>를 내놓은 것은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유 교수는 작가 이름 ‘카잔차키스’를 ‘카잔자키스’로 바꾼 것을 비롯해 적잖은 오류를 바로잡아 완성도 높은 번역본을 선보였다. 원전 출간 72년 만의 일이다.

 

 ‘올해의 발견’ 플래너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 823.914 F583nKㄱ / / 인문과학열람실(3층)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문학동네·1만5500원

2014년 맨부커상 수상작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과 또 다른 장편 <굴드의 물고기 책>이 연초에 번역 소개되면서 리처드 플래너건은 ‘올해의 발견’이 되었다. 장편에 어울리는 규모와 무게를 지니면서 동시에 단편을 방불케 하는 문장의 밀도를 지닌 소설. 그것이 플래너건이다.

그가 오스트레일리아 부속 섬 태즈메이니어 출신 작가라는 점도 흥미롭다. 2차대전 중 일본군 포로가 되어 철도 건설 공사에 동원된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 이야기인 <먼 북…>, 그리고 19세기 초 태즈메이니어의 식민 감옥을 무대로 삼은 <…물고기 책>에서 보듯, 플래너건은 자신의 고향 섬과 조국의 역사를 자신만의 틀과 어법에 담아 독자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여성들이여 침묵하지 말라. 분노하라.”

시스터 아웃사이더 / 824.92 L867sKㅈ/ 인문과학열람실(3층)
오드리 로드 지음, 주해연·박미선 옮김/후마니타스·1만8000원

페미니즘 열풍의 강력한 소용돌이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수많은 페미니즘 고전들을 뒤늦게 상륙시켰다. 그런 고전들 중 일부는 ‘백인 중산층 여성의 시각과 경험만 반영됐다’는 한계를 지적받았지만, 흑인이자 레즈비언 여성이었던 ‘3중 소수자’ 오드리 로드에겐 그런 아쉬움은 없었다.

벨 훅스, 애드리언 리치 등 수많은 페미니스트에게 영감을 줬던 로드의 저서가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분노해야 한다고, 다른 대의를 위해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했던 1984년의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메시지가 지금도 유효한 것은 서글프지만, 절망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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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