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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의미도 좋지만…제3의 ‘좋은 삶’, ‘심리적 풍요’서 온다

 

다양한 경험은 관점 변화시켜
행복·의미 추구 일변도 벗어나
마음이 풍요로운 삶에 주목을

 

행복만이 좋은 삶은 아니다. 픽사베이

 

좋은 시간, 좋은 하루, 좋은 시절, 좋은 인생…. 좋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

 

화목한 가정, 안정된 직장, 건강한 신체, 즐거운 경험, 풍요로운 생활, 일의 보람 등등 저마다 누리고 싶은 삶의 형태는 다양하다. 심리학계에선 통상 이를 행복과 의미(또는 가치)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눠 본다. 서양철학에서 행복론의 원조라 할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자를 헤도닉(쾌락), 후자를 에우다이모닉(좋은 영혼)으로 규정하고, 후자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사회 봉사, 환경 활동 등 세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는 도덕적 삶을 최고의 선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이는 목적론적 인생관에 기반한 엘리트주의적 행복관(서은국 <행복의 기원>)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기존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제3의 ‘좋은 삶’은 없는 걸까?미국 버지니아대 오이시 시게히로 교수와 플로리다대 에린 웨스트게이트 교수가 좋은 삶의 새로운 프리즘으로 ‘마음이 풍요로운 삶’을 제안했다.연구진이 최근 미국심리학회가 발행하는 ‘심리학 리뷰’(Psychological Review)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마음이 풍요로운 삶이란 ‘관점의 변화를 동반하는 참신하고 다채로운 경험’으로 가득찬 삶을 말한다.예컨대 해외유학은 대학생들이 흔히 자신의 삶에서 심리적 풍요를 경험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유학을 통해 낯선 나라의 관습과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유학생들은 모국 사회와 문화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고 도전적인 예술에 몰입하는 것, 학습, 창작, 돌봄 등도 심리적 풍요를 더해주는 경험들이다. 새로운 경험들이 꼭 재밌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업, 자연 재해처럼 견디기 힘들고 불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조차도 자신과 주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연구진은 주장했다.웨스트게이트 교수는 “삶에 도전과 고난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심리적 풍요를 ‘좋은 삶’에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불편한 경험이라도 경험을 하는 것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좋은 삶의 개념을 기존의 쾌락이나 가치있는 삶에 한정한다면,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나쁜 삶을 사는 것으로 치부하게 된다. 이는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과 그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_______진보적일수록 심리적 풍요 중시...행복 추구형은 현상 유지 선호

 

행복과 의미, 심리적 풍요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을까?연구진은 3자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나은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웨스트게이트는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은 한 가지가 아닌 여러 측면에서 좋은 삶을 영위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즉 행복하면서도 목표가 뚜렷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경험으로 가득찬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물론 사람에 따라선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삶을 살기도 한다. 예컨대 연구진은 여러 국적의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세 가지 유형의 삶이 각각 ‘빅5 성격 특성’ 중 어느 것과 상관관계가 있는지 분석했다. 빅5 테스트는 사람들의 성격을 성실성, 경험에 대한 개방성, 신경증, 외향성, 친화성이라는 5가지로 분류하는 것을 말한다.분석 결과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이 심리적 풍요의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란 상상력, 예술적 감수성, 유연한 행동, 지적 호기심, 틀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등을 특징으로 한다. 예술적이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변화무쌍한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행복과 의미에 치중한 삶은 단조롭고 쳇바퀴 같은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행복이나 의미만으로는 삶의 동기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연구진은 “행복은 빅5 특성 중 외향성과 가장 강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선 빅5 특성이 꽤 고르게 나뉘어 있는 편”이라고 밝혔다.흥미로운 건 심리적 풍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좀 더 진보적이고 사회 변화에 긍정적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호기심이 더 많고 전체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반면 행복이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나라별로 응답자의 14~38%는 사회 봉사 같은 의미 있는 삶을 제1의 가치로 내세웠다. 픽사베이

 

_______한국인, ‘행복 추구하는 삶’ 선택 비율 가장 높아

그렇다면 심리적 풍요의 삶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치일까?만약 심리적 풍요라는 가치가 혹시나 고학력 고소득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서구 선진국 사회, 즉 위어드(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and democratic) 사회나 특권층에서 원하는 것이라면 좋은 삶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그러나 연구진이 조사한 결과, 심리적 풍요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서구사회나 고소득국에서 더 인기가 없었다. 또 사회경제적 지위와 행복 사이엔 상관관계가 있었지만, 소득과 심리적 풍요, 의미 있는 삶 사이엔 유의미한 연관성이 없었다.사람들은 세 가지 중 어떤 삶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을까?연구진이 지난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한국을 포함한 9개국 3728명에게 ‘한 가지만 고를 경우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 물어본 결과, 전체 1위는 역시 행복이었다. 절반 이상이 행복한 삶(49.7%~69.9%)을 택했다. 그 다음은 의미 있는 삶(14.2%~38.5%)이 차지했다. 그러나 심리적 풍요를 선택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일본(16%), 한국(16%), 인도(16%), 독일(17%)에서 그 비율이 가장 높았고 싱가포르(7%)에서 비율이 가장 낮았다.한국인은 제1의 가치로 행복을 선택한 비율이 69.9%로 가장 높은 반면, 의미있는 삶을 선택한 비율은 14.4%로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웨스트게이트는 나라별 차이가 나는 원인은 알지 못하지만 응답자들의 나이가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경험이나 탐험을 우선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행복감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도전적인 경험을 우선하는 대신 친숙한 것을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나이가 들면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와 주로 어울린다. 이는 행복감을 높이지만 심리적 풍요는 덜해진다.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아보는 간접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삶에서 피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연구진은 미국인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것을 묻고, 만약 상황을 이전 상태나 반대 상황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삶이 더 행복해질지, 의미가 있게 될지, 심리적으로 풍요로워질지 물어봤다. 그 결과 셋 중 하나(미국인의 28%, 한국인의 35%)는 그런 상황이 된다면 심리적으로 풍요로워졌을 것이라고 답했다. 예컨대 한 응답자는 4년제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이 후회되며 인생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놓친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염병 대응의 최전선에 있는 필수 노동자와 의료 종사자에게는 의미와 심리적 풍요에 초점을 맞추는 삶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픽사베이

 

_______팬데믹 상황에서 의미있는 ‘좋은 삶’은?

코로나 팬데믹은 ‘좋은 삶’을 설계하는 데 큰 제약 요인이다. 사람과 어울리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 탓이다.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삶의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 좋을까?연구진은 전염병 대응의 최전선에 있는 필수 노동자와 의료 종사자에게는 “의미와 심리적 풍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이 힘들고 극적인 시기는 심리적 풍요와 연관돼 있고, 그들이 지금 하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연구진은 “심리적 풍요는 우리가 일상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잣대와 함께,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제시해준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이번 작업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개념화한 쾌락과 에우다이모니아라는 해묵은 이분법을 넘어, ‘심리적 풍요’를 좋은 삶의 또 다른 영역으로 초대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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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