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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주목해야 할 ‘이머징 이슈’ 9가지 

 

국회미래연구원, 보고서·학술지 등 분석해 선정
코로나19 영향으로 주거·이동 부문서 다수 등장

이머징 이슈의 한 사례로 거론되는 1969년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알파넷(ARPANET) 모식도. 1990년대 인터넷의 시초다. 국회미래연구원 박성원 혁신성장그룹장 제공

1969년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연구원 릭라이더(J.C.R. Licklider)는 동료들에게 컴퓨터를 연결한 네트워크 그림을 보여주고, 이 네트워크에 알파넷(ARPA Network)이란 이름을 붙였다. 당시 그가 고안한 알파넷은 20년 후 등장한 1990년대 인터넷의 기원이 됐다.이렇게 훗날 사회적으로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킬 아이디어나 기술 등을 통칭해 ‘이머징 이슈’(emerging issue)라고 한다. 이머징 이슈들 가운데 어떤 것은 사람들의 외면 속에 점차 사라지고, 어떤 것은 ‘이머징 트렌드’로 발전해 사회 변화의 한 흐름을 형성한다.국회미래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퓨처스 브리프’(Futures Brief)에서 미래 관련 국제 연구기관과 학술지 등의 자료를 토대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주거와 이동, 사회 안전, 혁신 기술, 환경 부문에서 주목해야 할 ‘이머징 이슈’ 9가지를 가려 뽑아 소개했다.

인도 델리의 상징 조형물 ‘인디아 게이트’ 앞 거리. 지난해 봄 전국 이동제한 조처 이전(왼쪽)과 이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뉴델리/AP 신화 연합뉴스

_______신조어가 된 ‘앤스로포즈’와 온라인 공간의 ‘소셜 버블’

 

이에 따르면 무엇보다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 넣은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주거와 이동 부문에서 다수의 이머징 이슈들이 등장한 것이 눈에 띈다.우선 앤스로포즈(Anthropause, 인간멈춤) 현상이다. 앤스로포즈는 인류를 뜻하는 앤스로(Anthro)와 멈춤을 뜻하는 포즈(pause)를 합친 말이다. 인류가 멈췄다는 얘기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사람들의 이동과 활동이 멈춰버린 상황을 가리킨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2020년 신조어로도 선정한 이 단어는 IT 전문지 ‘와이어드’(2020년 6월호)와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 및 진화’(2020년 9월호)에서도 주목을 했다.

앤스로포즈의 이미지를 표지에 실은 ‘네이처 생태 및 진화’ 2020년 9월호.

인간이 이동을 멈추면서 우리는 하늘이 맑아지고 야생동물이 도시에 출현하는가 하면, 떠났던 어류가 하천에 돌아오는 모습을 목격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의 행동 변화가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셈이다. 이번 연구를 이끈 박성원 혁신성장그룹장은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던 인류의 문화에서 갑작스러운 멈춤이 어떤 새로운 변화를 불러올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안전을 위해 물리적 활동을 멈추는 대신 새로운 행동 방식을 개발했다. 바로 ‘소셜 버블’(Social bubbles)이다.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끼리 정서적 유대를 찾아 ‘버블’ 같은 방어막을 치고 모인다는 뜻이다. 온라인에 모여 퀴즈 놀이를 하거나 각자의 공간에서 누군가 틀어주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등 온라인 소셜 버블이 주류다. 놀이 차원을 떠나 가치관이나 이념,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정치적 세력화를 꾀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소셜 버블’의 특징은 가치나 처지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모임이라는 배타성이다. ‘소셜 버블’ 이슈는 초분열 사회의 도래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미 국가정보위원회(NIC)는 ‘2040 글로벌 트렌드’ 보고서에서 ‘소셜 버블’에 의한 사회 집단간 갈등과 반목의 심화를 예상했다.

스키 여행지로 유명한 미국 콜로라도 아스펜은 재택근무자들이 몰려 들면서 줌타운으로 부상하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_______재택근무로 주목받는 ‘줌 타운’

 

온라인의 소셜 버블이 오프라인으로 확장되면 ‘줌 타운’(Zoom Towns)이 나타날 수 있다. 줌타운은 원래 줌(인터넷 화상회의 도구)을 이용해 재택근무하는 사람들이 평소에 살고 싶은 곳으로 이사해 사는 곳을 뜻한다. 코로나19로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 줌타운을 주도하는 계층은 198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이다. 미국에선 이들이 교외로 옮겨가면서 뉴욕 맨해튼 인근 킹스턴(Kingston) 등 인기 지역의 주택 임대료가 상승하고 있다.‘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도 이머징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이 있는 모든 공간에 센서가 있고, 이 센서들이 만드는 정보를 모아서 처리하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이런 공간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데이터를 이용한 관리 시스템이다. 패스트푸드점 네트워크의 실시간 소비자 행동 분석 시스템을 이용한 재고 조정, 상품 개발이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공간 컴퓨팅 기술을 구현하려는 엔지니어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개입 없이 독립적으로 센서 정보를 해석하도록 컴퓨터를 설계한다. 인간은 인공지능이 내놓는 조언과 충고, 제안에 기반해 결정하고 행동한다.‘스프린터넷’(Splinternet) 움직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은 연결을 뜻하지만, 스프린터넷은 세계와 연결이 분리된 인터넷을 가리킨다. 코로나는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방역 계획을 세우고 일관성 있게 수행하기 위해서다. 국가의 역할 강화는 온라인 통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은 코로나와 관련한 비난을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검열을 강화했고, 최근에는 러시아가 데이터와 정보 유입에 개입하는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고 연구원은 밝혔다.

_______인간은 물론 모든 생물을 감시하는 체계로

사회 안전 부문에서는 생명 감시 체제의 등장을 뜻하는 ‘생물감시 정권’(Bio-surveillance Regime)이 이슈로 떠올랐다.국회미래연구원은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부터 코로나19 감염병에 이르까지 어떤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는지 탐색한 결과, 생물감시라는 단어가 2009년부터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생물감시란 인수공통감염병의 증가로 어떤 생물체에서 어떤 바이러스가 옮겨올지 모르니 인간까지 포함한 모든 생물체를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논리다. 바이러스를 무기로 악용할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뜻도 있다. 휴대폰 추적, 홍채 인식 시스템 등이 생물감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도구들이다. 연구원은 “생물감시 이슈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생물감시라는 단어에 레짐(regime, 정권)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이 주목된다”며 앞으로 정부와 은행, 군사와 여행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게놈합성 기술은 2020년 세계경제포럼에서 10대 이머징 기술로 뽑혔다. 언스플래시

_______오래된 이슈 순환경제, 기후위기에 다시 수면 위로

 

혁신 기술 부문에선 2가지가 꼽혔다.먼저 ‘바이오디지털 융합’(Biodigital Convergence)이다. 바이오 기술과 디지털 기술이 융합다는 뜻이다. 예컨대, 특정 생체조직을 프린터로 생산하는 기술(바이오프린터), 이전에는 없던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합성생물학 등 매우 다양한 기술을 포괄한다. 기술이 공개되고 장치들이 저렴해지고 있는 추세를 고려하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바이오디지털 융합의 주체가 될 수 있다.‘전체 게놈 합성’(Whole-Genome Synthesis)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에서 10대 이머징 기술로 소개된 기술이다. 생명정보와 구성요소를 바탕으로 기존 생명체를 모방해 변형시키는 기술이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예컨대 나무의 유전자를 다시 프로그래밍해서 나무를 아예 목조 건축물 형태로 자라도록 하는 기술이다.환경 부문에선 ‘순환경제의 귀환’(Return of Circular Economy)이 꼽혔다. 기존의 자원, 부품, 제품을 재사용하자는 순환경제는 사실 오래된 이슈다. 하지만 최근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다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머징 이슈로 선정됐다.연구원은 “이머징 이슈는 그 자체보다 그 이슈가 등장한 사회적 맥락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순환경제가 재등장한 데는 최근 신흥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와 원자재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맥락이 있다. 일본 문부성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NISTEP)의 추산에 따르면 지금 추세라면 2030년에는 전 세계에서 약 80억톤의 천연자원이 부족할 전망이다. 순환경제가 다시 주목받는 또 하나의 맥락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에서 1회용품 사용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지난해 발표한 ‘신순환경제’ 행동계획에서 탄소중립과 자원효율을 향상하는 순환경제 시대를 선포했다.

연구원은 이머징 이슈는 사회 변화 흐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사업과 제품 개발의 계기를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는 발판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특히 “이머징 이슈는 사람에의 해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만큼,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제기됐는지도 들여다보고 문제는 없는지 미리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출처 : 한겨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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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

“위기는 순환의 일부… 코로나로 인한 변화, 긍정효과 올것”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개미’ ‘심판’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매년 가을이면 정기적으로 소설을 한 권씩 출간한다. 희곡은 소설 작업 중 휴식 개념으로 동시에 쓰기도 한다. 그는 “글쓰기에서 엄청난 기쁨과 희열을 느낀다”며 “쓰는 과정을 통해서만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열린책들 제공

 

작가의 존재는 작품으로 증명된다. 올해만 해도 장편소설 ‘기억’과 희곡 ‘심판’까지 두 권의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려놓은 이 작가가 물리적 거리와 달리 한국 독자에게 유독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59)는 독창적인 발상과 지적 탐구가 융합된 흡인력 높은 작품을 선보여온 한국인의 ‘최애작가’ 중 한 명이다. 전 세계에서 팔린 그의 책 2300만 부 중 절반이 국내에서 팔렸다. 작가 역시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지적인 독자”라고 추켜세웠다. 1993년 데뷔작 ‘개미’ 이후 30년 가까이 한국 독자 특유의 왕성한 호기심과 두터운 팬심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건 자기관리의 ‘끝판왕’이라 할 만큼 철저한 글쓰기 습관 덕분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거의 매년 한두 권의 신간을 내면서도 “출간을 기다리는 다른 초고가 항상 준비돼 있다”고 귀띔한다. 장르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천국의 법정에서 벌어진 판결을 유쾌하게 그려낸 ‘심판’(프랑스에서는 2015년 출간)은 “신선하고 흥미롭다”는 평 속에 국내에서 7만 부가 팔렸다. 여러 장르의 글을 독특한 발상과 예측 불허 전개라는 ‘베르베르 전용’ 거푸집에서 쉼 없이 주조해내는 그의 ‘비법’을 e메일 인터뷰로 들어봤다.

―  데뷔 이후 한 해 평균 1.5권의 책을 썼다. 철저한 글쓰기 습관은 어떤 방식인지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16세 때부터 매일 오전 8시∼낮 12시 반에 10페이지를 썼다. 이런 리듬으로 매년 두 권을 써서 한 권은 출간하고 나머지는 컴퓨터에 저장해둔다. 물론 오전 8시부터 글이 술술 써지진 않는다. 카페에 앉아 전날 작업한 내용을 다시 읽고 뼈대를 정교하게 만들 궁리를 하다 보면 오전 11시쯤 글쓰기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예열이 끝난 기계 엔진처럼 말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예술 창작자들은 엄격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영감이 오기만 기다리거나 여유 있게 집중할 시간을 찾으려다 보면 방만해지기 쉽다.”

―  지속적인 글쓰기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마라톤에 임하는 자세다. 일단 일정한 페이스에 도달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한다.”

매일 규칙적인 시간대에 이뤄져온 ‘글쓰기 리듬’을 40년 넘게 유지하는 그에게 글은 단순히 노동이 아니다. 글쓰기는 “매일 같은 시간 이뤄지는 즐거운 만남” 같은 것이며 “하루의 약속이자 삶의 지표”다. 베르베르는 “글을 쓰지 않고 지나가는 하루는 막막함과 허전함뿐일 것이며 그런 날이 며칠 이어지면 우울함이 밀려올 것 같다”며 “아마 나는 책을 내줄 출판사나 읽어 줄 독자가 없는 무인도에 혼자 살더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스케일과 분량이 방대한 작품이 많다. 아이디어와 구상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나.


“보통 단편을 쓰고 장편으로 확장시킨다. 10페이지 내외 단편을 매일 초저녁에 하나씩 쓴 적도 있다. 거칠게라도 아이디어를 던져놓고 천천히 발전시킨다. 단편이 장편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셈이다. 장편을 쓰다 도저히 그 안에 다 담을 수 없다 싶으면 연작을 시도한다. ‘개미’ ‘신’ ‘제3인류’ 3부작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소설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아서 자신이 원하는 길이와 크기를 일러준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  ‘기억’은 최면을 통한 신비주의적인 전생 탐험을, ‘심판’은 천국에서의 일을 다룬다. 특히 최근작에서 죽음이나 전생, 사후세계 등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엿보이는데….

“인간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 즉 영성(靈性)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독자들을 그 질문에 동참시키고 싶었다. 나는 과학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 영성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게 됐다. 전직 과학기자인 내가 소설가로서 하는 작업은 진실이나 확신의 영역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려는 소망의 일환이다.”

과학잡지에서 7년간 기자로 일한 그는 기술, 미래 등에 대한 공상과학(SF)적 상상력으로 ‘뇌’ ‘나무’ 등을 썼다. 하지만 이후 관심사가 영혼, 영성 같은 신비주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최근엔 최면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는 “삶에 대한 나의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 더 열심히 쓴다”고 했다.

―  희곡은 소설 쓸 때와는 어떻게 다른가.


“어떤 면에서 희곡은 창작자에게 소설보다 더 큰 재미를 준다. 공이 왔다 갔다 하는 탁구를 연상시키는 등장인물 간의 대화를 쓸 때 소설 속 대화와는 다른 차원의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인물들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하다 보니 창의성을 시험받게 되는데, 좋은 훈련 기회가 되는 것 같다. 내게 희곡 집필은 소설 사이에 부담 없이 즐기는 휴식 같은 시간이기도 하다. 길이가 비교적 짧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고.”

―  태어나기 전, 우리가 부모부터 자신의 재능 같은 모든 환경을 골랐다는 ‘심판’의 설정이 흥미롭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환경을 더 긍정하기를 원하나.

“세상이 불공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부당하다며 불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불교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주어진 삶의 조건을 수용하는 순간 남에 대한 질투와 자기 폄훼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체념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포커에 비유하자면 나쁜 패를 쥐고도 얼마든지 게임에서 이길 수 있고, 좋은 패를 쥐고도 언제든 질 수도 있다. 게임의 방식이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  작품 속 유머가 가독성을 높인다. 소설 ‘죽음’에서 “좋은 책은 결국 한마디의 멋진 농담 같은 거 아니겠나”라고도 했다. 유머는 얼마나 중요한가.

“프랑스어에서 영성(spiritualit´e)이라는 단어는 유머러스함을 표현할 때도, 기도와 명상, 종교와 관련된 표현에도 쓰인다. 유머는 정신의 놀이이자 구도의 한 방식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나 환생 같은 소재를 다룰 때 자칫 경직되고 진지하게만 접근하기 쉽다. 하지만 유머의 존재는 겸허한 태도와 거리 두기를 가능하게 한다.”

―  소설의 소재를 찾을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다른 작가들이 아직 다루지 않았고 나 역시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소재를 찾아내는 것을 가장 고민한다. 새롭고 참신한 소재와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늘 긴장한다. 며칠 후 프랑스에서 출간되는 ‘고양이’ 3부작의 마지막 편은 인류의 종말과 다른 종으로의 지식 전수를 다룬다. 요즘은 ‘기억’의 후속편도 구상 중이다. 퇴행최면이란 소재를 통해 독창적 역사소설을 선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작가로서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나.

“내 작품이 아직은 알 수 없는 모종의 복잡하고 원대한 계획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지런히 산을 오르고 있으나 정작 그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는 상태라고 할까. 산 정상에 도달하고 나야 비로소 그 모든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지상은 무지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곳”이란 대사가 시의성이 있다. 삶의 속성도 그렇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으로 더욱 이해하지 못하는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프랑스에서 올봄 발표한 단편에서 ‘3주 만에 끝난다고 했던 상황이 3년 동안 지속됐다’라고 썼다. 그 말이 진실이 돼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록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페스트가 창궐했을 땐 이보다 더한 고통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상황은 우리에게 기존의 관습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늘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최악이 아닐까. 누군가는 코로나로 인해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누군가는 노동 방식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당장은 이런 변화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사망자도 많이 발생하지만 지금의 위기가 긍정적인 효과 또한 발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삶의 순환을 위해서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위기는 순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이런 시기 한국 독자를 위한 조언을 건넨다면….

“자신의 삶의 의미를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프랑스에서는 명상을 하는 사람이 전보다 많이 늘어났다. 요리나 그림에 관심을 갖거나 새롭게 취미로 삼을 만한 것을 찾는 사람도 부쩍 많아졌다.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뭔가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출처 : 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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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