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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 장대한 동슬라브 종가의 고난에 찬 대서사시 / 구로카와 유지

947.7흑813ㅇKㅇ  사회과학열람실(3층)  

 

책소개

 

“우크라이나의 발견, 우크라이나의 복권”
1991년 독립까지 러시아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국가
유럽의 대국이 될 잠재력과 지정학적 중요성을 읽어내다!

동서 유럽 힘의 균형추 역할을 하는 우크라이나
·동슬라브 종가였던 이곳은 어떻게 나라를 잃고 되찾았나
·유럽의 ‘빵 바구니’였다가 극심한 기근을 겪기까지
·고대에서 현대까지 현장감 있게 담아낸 우크라이나 통사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전前 우크라이나 대사이자 니혼대학 국제관계학 교수를 지낸 저자가 쓴 ‘우크라이나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루스 카간국으로부터 키예프 대공국으로 이어진 우크라이나의 복잡하고 긴 역사를 풀어 쓰고, 근대 들어 러시아와 유럽의 틈바구니 속에서 강국들의 침략을 받은 대고난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타민족의 지배와 그로부터의 독립을 반복하면서 지금과 같은 최대 인구의 국가로 번창할 수 있었는지 그 핵심적인 계기들을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첫 출발은 루스 카간국으로, 러시아(루스)라는 이름도 원래 여기서 가져다 쓴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2세기까지 모든 견직물을 ‘루스제製’라고 불렀다. 그만큼 이 나라는 농업과 상업, 무역의 중심지였다.

저자는 중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가 큰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대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다. 우크라이나의 면적은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넓고 인구는 5000만 명으로 프랑스에 필적한다. 철광석은 유럽 최대 규모의 산지를 자랑한다. 농업은 세계의 흑토지대의 30퍼센트를 차지해 언젠가 ‘유럽의 곡창’의 지위를 회복할 것이다. 두 번째는 지정학적인 중요성이다. 유럽에서 우크라이나만큼 여러 민족이 거쳐간 곳은 없다. 우크라이나는 서유럽과 러시아, 아시아를 잇는 통로였다. 그런 까닭에 우크라이나는 세계 지도를 다시 쓴 대북방전쟁, 나폴레옹전쟁, 크림전쟁, 두 차례 세계대전의 전장이 되었고 많은 세력이 이 나라를 노렸다. 즉 우크라이나의 향방에 따라 동서 힘의 균형은 달라졌다. 이것은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 하고, 이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출판사 서평

 
 

나라가 없는 나라의 역사

대국으로서 우크라이나는 인구수가 12세기 말경 이미 700만~800만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인구가 800만 명이었다). 우크라이나는 곡창지대일 뿐 아니라 과학기술의 수준도 높아 구소련의 첨단 기술 중 SS-19, SS-21 등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우크라이나에서 제작됐다. 또 고골, 호로비츠, 니진스키, 말레비치와 같은 문화예술계의 대가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단 하나의 주제를 꼽자면 ‘나라가 없었다’는 점이다. 역사가 수브텔니는 우크라이나사의 핵심이 국가의 틀 없이 민족이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유럽의 세력 균형 속에서 우크라이나 ‘땅’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사를 풀어간다.
이 책은 두텁지 않지만 고대에서 현대 우크라이나의 독립까지 일목요연하게, 중요한 국제관계와 내분의 양상을 모두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체류했던 외교관으로서 독립국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면서 러시아와 미국·유럽 간의 관계를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찰해 큰 도움이 된다. 국내에 이렇게 종합적인 우크라이나 통사는 출간된 적이 없어 최근 러시아와의 극도의 긴장관계를 보이고 있는 진정한 이유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땅을 둘러싼 유럽의 힘겨루기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15세기만 해도 키예프 루스 공국의 지배 아래 있는 비슬라브 부족체의 연합체일 뿐이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쪽에서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근간이 된 키예프 루스 공국의 직계는 바로 자신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역사가 오마셰프스키는 현재 우크라이나 인구 90퍼센트가 거주하는 지역을 지배했던 할리치나-볼린 공국을 ‘최초의 우크라이나 국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1340년대에 볼린과 할리치나는 각각 리투아니아, 폴란드에 병합됨으로써 최초의 우크라이나 국가는 소멸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세 민족 즉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로 분화됐고 언어도 제각기 사용했다. 다만 이 시기에 ‘가장 우크라이나답다’고 할 수 있는 코사크(준군사적 자치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땅은 여러 나라가 노리는 먹잇감이 되었다. 먼저 리투아니아가 한때 볼린, 체르니히우, 키예프 지방, 드네프르강 동안까지 자신의 지배하에 두었다(특이했던 것은 언어와 문화 모두 리투아니아인들이 우크라이나화되었다는 점이다). 그다음으로 촉수를 뻗은 것은 폴란드였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자기네 문화를 강제로 심으려 한 점에서 완전히 달랐고, 이는 훗날까지 우크라이나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 지역에서 정치적 힘은 종교와 관계가 깊었다. 키예프 루스 시대에 루스 땅에는 정교가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교는 두 방향에서 문제가 생겼다. 첫째, 우크라이나 땅이 정치적으로 약해지자 정교의 중심이 키예프를 벗어났고, 모스크바 공국이 융성함에 따라 ‘키예프 부주교좌’를 그곳으로 옮겨갔다. 둘째, 폴란드의 가톨릭이 강성해지자 루스 귀족들이 정교를 떠나 폴란드에 동화돼간 점이다. 그러자 정교와 루스의 언어는 어느덧 하층계급의 것으로 전락했다.
늘 득세하는 것은 러시아였다. 모스크바 공국은 1480년 킵차크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제3의 로마’가 될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모스크바는 루스 땅을 둘러싸고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맞붙으면서 서서히 리투아니아의 영토를 도려내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1654년 페레야슬라프 보호 협정으로, 이 협정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없다. 러시아사에서 이것은 금자탑으로 평가된다. 반면 우크라이나 역사가들은 이 협정이 당시 지도자 흐멜니츠키가 동맹들과 맺은 보호 약속 중 하나일 뿐이라고 본다. 흐멜니츠키는 모스크바의 고압적인 태도에 환멸을 느껴 스웨덴 등과 동맹하려 했지만, 그 전에 사망해버렸다.
역사적인 사실관계를 검증해볼 때 저자는 우크라이나의 해석이 맞는다고 본다. 우크라이나는 자치를 지키고자 모스크바의 보호를 요청한 것일 뿐이었다. 다만 사후 맥락에서 이 협정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병합되도록 한, 파멸의 첫걸음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모스크바는 이 협정 덕에 제국의 길을 밟아간다.

세계대전이 유린한 나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 수많은 국가가 탐을 냈던 땅이다. 18세기 말 폴란드가 분할되고 튀르크가 흑해 북안에서 물러난 뒤 일차대전까지 120년간 우크라이나 영토는 80퍼센트가 러시아 제국, 20퍼센트가 오스트리아 제국에 의해 지배된다. 일차대전이 터지자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만큼 심하게 유린당한 땅도 없었다. 전쟁 후에도 사방에서 침투하는 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북쪽·동쪽은 볼셰비키 적군, 서쪽은 폴란드군, 동남쪽 돈강 방면은 반혁명의 백군, 서남쪽 드네스트르강 방면은 루마니아군, 남부 오데사 방면은 프랑스군이 간섭하고 있었다. 이처럼 1919년과 1920년의 우크라이나는 근대 유럽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무질서한 내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1922년 소연방이 성립되면서 우크라이나는 70여 년간 연방의 한 부분이 된다. 그런 와중에 1929년 빈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이 결성돼 무력 투쟁을 벌인다. 폴란드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한 이 시도는 그러나 서광도 못 본 채 이차대전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차대전에서 우크라이나는 인구의 6분의 1인 530만 명을 잃었다. 또 이 시기 소련 전체의 물질적 손해 중 40퍼센트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했는데 이는 러시아, 독일, 프랑스, 폴란드 각각이 입은 것보다 더 큰 규모였다.
이후 거의 모든 우크라이나인의 거주 지역은 소연방 체제하에 우크라이나 공화국으로 합쳐졌다. 이것은 키예프 루스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 역사상 첫 통합이었다.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의 독립

1990년 3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의 의회인 ‘최고회의(라다)’의 선거가 이뤄졌다. 소련에서는 각 공화국을 어떻게든 연방의 틀 안에 묶어두고자 고르바초프가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독립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쿠데타 사건이었다. 쿠데타는 러시아 최고회의 의장 옐친의 용감한 저항으로 맥없이 실패한다. 이로써 주도권은 고르바초프에서 옐친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누가 봐도 소련은 지속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쿠데타 실패의 여세를 몰아 8월 24일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는 거의 만장일치로 독립 선언을 채택했고, 훗날 이날은 독립기념일이 된다. 폴란드,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즉각 승인했다. 많은 우크라이나 이민자를 끌어안고 있던 캐나다도 신속히 승인했다. 미국은 12월 24일 승인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 선언은 20세기 들어 벌써 여섯 번째였다. 1918년 1월 키예프에서 중앙 라다의 ‘우크라이나 국민공화국’, 그해 11월 리비우에서 ‘서우크라이나 국민공화국’, 1919년 1월 키예프에서 디렉토리아 정부와 서우크라이나 정부가 합병한 ‘우크라이나 국민공화국’, 1939년 3월 후스트에서의 ‘카르파토 우크라이나 공화국’, 1941년 6월 리비우에서 OUN의 우크라이나 독립 선언에 이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독립 선언은 다 오래 못 가거나 상징적인 행위에 불과했다. 반면 이번 독립은 통치능력을 가진 정부가 있고 우크라이나인이 거주하는 거의 전역을 포함하며 국제적으로도 승인된 후에 이뤄진, 영속의 개연성을 지닌 독립이었다.

우크라이나 속 유대인의 역사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살펴볼 때 유대인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중세에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도시의 상인, 수공업자가 된 후 농촌에 진출하면서 귀족의 장원 관리인이 되었다. 다시 말해 유대인은 농민이 거둬들인 수익을 영주의 주머니에 넣어주는 역할을 했고, 이는 훗날 이 지역에서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나는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저자는 책에서 유대인의 폴란드·우크라이나 이주에 대해 상세히 다루는데, 그 이유는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로 훗날 러시아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손에 넣으면서 그 땅의 유대인도 끌어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카가노비치와 같은 유대인이 우크라이나 태생인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또한 유대인 음악가 오이스트라흐, 밀슈타인, 길렐스, 작가 바벨 등도 이 나라 출신이다.
19세기 말에는 러시아 제국 내에 520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했는데 이 중 200만 명이 우크라이나에 살았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도시민이어서 우크라이나 도시 인구의 53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다. 그렇다고 부자는 아니었지만, 가난한 우크라이나인 농민들에게는 유대인이 상인이나 고리대금업자로 비쳐 자신들을 착취하는 인종으로 적대시되기도 했다.
이차대전 때 우크라이나는 독일의 점령 아래 놓인 적이 있다. 이때 나치 독일의 식량과 노동력 공급원이 됐는데, 이 시기 독일은 우크라이나에서 85만~9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라는 단어와 민족 자존심

‘우크라이나’라는 단어 자체는 우크라이나인의 자존심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여태껏 러시아사를 바탕으로 한 학설에서 우크라이나는 ‘변경邊境지대’를 뜻해왔다. 하지만 변경이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서 봤을 때 그런 것일 뿐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변경이란 뜻은 없고 ‘땅’이나 ‘나라’를 의미하는 단어였다는 설이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는 『키예프 연대기』와 『할리치나-볼린 연대기』가 있다. 설령 변경이라는 의미의 단어에서 파생됐다 해도 모스크바 혹은 훗날 러시아 제국의 입장에서 본 변경의 의미는 아니었다. 12~13세기에는 모스크바 지방이 오히려 더 변경에 속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우크라이나’는 비로소 특정한 땅을 가리키게 된다. 즉 코사크의 대두와 함께 드네프르강 양안으로 펼쳐지는 코사크 지대를 일컫게 된 것이다. 19세기에 러시아 제국이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지배하에 두자 ‘우크라이나’는 현재의 우크라이나 땅 전체를 가리키는 단어가 된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를 ‘소러시아’라 불렀다.
우크라이나는 영어로 Ukraine이고 현재의 국명도 관사 없이 Ukraine으로 쓴다. 관사를 붙여 the Ukraine이 되면 보통명사인 ‘변경지대’에 정관사를 붙여 쉽게 고유명사화한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러시아의 변경지대로 얕보는 어감이 들어서인지 우크라이나 정부와 민족주의자들은 이 표기를 꺼린다. 참고로 우크라이나와 유럽, 미국의 학자가 저술한 우크라이나사는 ‘History of Ukraine’인 데 반해 러시아 관점에서 쓰인 우크라이나사는 ‘History of the Ukraine’로 표기돼 있다.
러시아 제국 내에서는 우크라이나어가 러시아어 방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따라서 진실하고 고상한 것은 러시아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출판물도 흥미로운 소재는 러시아어로, 지루한 소재는 우크라이나어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1989년에는 ‘우크라이나 언어법’이 제정되었고 우크라이나어가 국어로 채택됐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스키타이: 기마와 황금의 민족
스키타이의 등장 | 스키타이인의 건국 전설 | 건국 전설 이설異說 | 유목민 | 능란 한 기마술을 지닌 용감한 전사 | 동물 의장意匠과 황금에 대한 편애 | 그리스 세계와의 연관성 | 스키타이의 멸망

제2장 키예프 루스: 유럽의 대국
키예프 루스는 누구의 것인가 | 슬라브인의 등장 | 하자르한국 | 키예프 루스의 건국 | 볼로디미르 성공聖公과 야로슬라프 현공賢公 | 기독교로의 개종 | 모노마흐 공의 정훈 | 몽골의 정복 | 최초의 우크라이나 국가 | 키예프 루스의 사회와 문화

제3장 리투아니아-폴란드의 시대
암흑과 공백의 3세기? | 리투아니아의 확장 | 폴란드의 진출 |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연합 | 리투아니아-폴란드 지배하에 놓인 우크라이나 | 유대인의 낙원 | 우니아트의 탄생 | 모스크바 대공국과 크림한국의 대두 | 우크라이나의 어원

제4장 코사크의 영광과 좌절
코사크의 출현 | 정치적 세력으로의 성장 | 조직과 전투 방법 | 국민성과 생활 | 선구자 사하이다치니 | 흐멜니츠키의 봉기 | 헤트만 국가의 형성 | 모스크바의 보호 아래 | 흐멜니츠키의 최후 | ‘황폐’의 시대 | 헤트만 마제파 | 폴타바 전투 | 최후의 헤트만 | 러시아로의 병합 | 우안 우크라이나 | 신新러시아현

제5장 러시아ㆍ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두 제국이 지배하는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제국하의 우크라이나 | 발자크의 저택 | 데카브리스트의 난과 카미안카 | 크림전쟁 | 국민 시인 타라스 셰브첸코 | 내셔널리즘의 고양과 정당의 성립 | 오스트리아 제국하의 우크라이나 | 신대륙으로의 이민 | 곡창지대와 항구 도시 오데사 | 공업화 | 우크라이나 출생의 예술가와 학자

제6장 중앙 라다: 짧은 독립
우크라이나의 독립은 왜 유지되지 못했는가 |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 우크라이나 국민공화국 | 일본인의 키예프 방문기 | 볼셰비키의 등장 | 독일군의 꼭두각시 | 서우크라이나의 독립 | 디렉토리아 정부와 내란 | 최후의 승리자, 볼셰비키 | 재고: 독립운동은 왜 실패했는가

제7장 소련의 시대
4개국으로 갈라진 우크라이나 | 우크라이나화 정책 | 스탈린의 권력 장악 | 농업 집단화와 대기근 | 스탈린의 숙청 | 폴란드 지배하의 서우크라이나 | 일본 군부와 우크라이나 독립파의 접촉 | 제2차 세계대전 | 얄타회담 | 일본인 억류자 | 전후 처리 | UPA의 파르티잔 활동 | 흐루쇼프 시대 | 브레즈네프 시대

제8장 350년 동안 기다린 독립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 | 독립 달성 | 우크라이나의 장래성 | 우크라이나와 일본

우크라이나 역사 연표
참고문헌

 

< 내용 출처 : 교보문고 > 

 

:
Posted by sukji

 

 

달라이라마의 마지막 수업 : 내 삶의 방향키를 잃어버렸을 때 / 달라이 라마

294.3923 D136fKㅇ  추천도서(3층대출실) 

 

책소개

 

“또다시 시작된 전쟁,
달라이라마가 전하는 근본적인 해답”
삶의 작별을 앞둔 달라이라마가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위대한 꿈

또다시 전쟁이다. 러시아의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은 전 세계적 반전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며 현재 휴전 협정은 난항을 겪고 있다. 과학과 문명이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도 전쟁의 욕망은 건재하다. 우리는 인류의 이성을 믿었고 시대착오적인 전쟁이 더 이상 발발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잔인한 욕망은 우리의 섣부른 판단보다 훨씬 강했다. 달라이라마의 마지막 전언을 담고 있는 이 책에서는 기존 패러다임의 변화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직 타인을 궁휼하는 연민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단언한다. 아흔에 가까운 달라이라마는 이제 삶의 작별할 준비가 되었다며 마지막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새롭고 위대한 꿈 이야기를 전한다.

 

출판사 서평

 

또다시 발발하는 전쟁과 테러들
이 책에서는 오늘날 전쟁이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일이 되었다고 말한다. 몇몇 국가들은 의회에서 투표를 거쳐야만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 이제 전쟁에 찬성하는 낡은 이념들은 폐기되었고, 무장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세계를 대표하는 여러 도시에서 평화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지며, 화해와 인류애와 인권의 이름으로 수만 명의 군중이 결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개명천지에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인류는 어떻게 전쟁과 테러를 근절할 수 있을까? 달라이라마는 지난 부모들의 시대에 발생했던 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2017년 멘체스터 경기장 테러까지를 언급하면서, 2011년 오슬로와 우토위아섬에서 벌어진 테러 직후 발전한 민주주의와 개방과 관용으로 응답하겠다고 선언한 노르웨이 수상 옌스 스톨텐베르그의 말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러처드 무어Richard Moore의 사례를 소개한다. 리처드 무어는 열 살 때 북아일랜드의 도시 런던데리에서 고무 총탄을 얼굴에 맞아 실명했다. 그리고 며칠 후 ‘피의 일요일(1972년 1월 30일 영국군이 아일랜드계 시민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14명이 죽고 13명이 다친 사건)’에는 시민권을 얻어내기 위해 행진하던 그의 삼촌이 사망했다. 그렇지만 리처드 무어는 용서하는 데 이르렀고 심지어 자기에게 총을 쏘았던 병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어 전쟁고아를 돕는 협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연민이 인간성의 어느 정도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부의 불평등과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
전 세계 부의 절반은 단 67명의 부자들이 독점하고 있다.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는 데는 낟알 15킬로그램과 물 50리터가 필요하다. 지구상의 경작 가능한 땅 중 3분의 1이 부자 나라 사람들이 섭취할 가축을 먹이기 위해 경작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이러한 생산 방식을 범죄라고 규정한다. 모든 미국인이 단 하루만 고기 없이 지내도 1년 동안 250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연민을 통해 바꾸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요하다. 공감의 첫 단계는 인지이다. 우리가 남의 고통을 알게 되는 것이다. 2단계는 애정이다. 우리는 그 고통에 몰두하게 된다. 3단계는 의도이다. 우리는 그 고통을 위로해 주고 싶다. 4단계는 목표가 있는 주시이다. 여기서 우리는 남의 고통에 집중한 채로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5단계는 행동이다. 마침내 우리는 구체적으로 고통을 위로하는 행동에 뛰어들게 된다. 달라이라마는 우리에게 연민의 선수가 되라고 말한다. 18년간 중국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달라이라마가 있는 다람살라의 남걀 사원으로 온 로푀라 스님은 갇혀 있는 동안 아주 큰 위험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고문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가 아니라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향한 연민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로푀라 스님은 쉬지 않고 모든 존재, 그에게 고통을 가하려 애쓰는 고문자들까지 포함한 그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를 계발했다.

연민의 과학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가?
그렇다면 달라이라마가 강조하는 연민이란 무엇인가? 반은 승려이자 반은 과학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달라이라마는 최근 신경과학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연민’의 감정은 우리가 잉태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신경성 질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공격성은 뉴런 순환계의 발달을 제한하며 뇌 구조의 세포들을 파괴한다. 결국 연민은 뇌의 성장과 가소성에 핵심적인 기능을 한다. 또 어린이와 청소년의 원만한 성장 여부를 결정하며, 성인 연령에 이르면 연민이 고조되어 건강한 삶에 중요 요인이 된다. 마음속에 연민이 스며들면 스트레스 유전자가 멈추고 뇌의 생화학도 바뀌어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 사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를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고 보호하고 아끼고 돌보는 것이 인간 종의 특성이며 생존 조건이라는 객관적 증거를 대기 어려웠을 뿐이다. 2000년 초부터 신경과학자들은 반복적이고 점진적인 연습으로 뇌의 가소성, 즉 뇌의 구조와 화학적 기능을 바꿀 수 있음을 확실히 증명해 보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노력을 통해 일종의 조건 없는 연민을 얻을 수 있다. 현대물리학 역시 이타주의의 필연성을 입증한다. 전 인도 대통령이자 핵물리학자인 압둘 칼람Abdul Kalam은 모든 것이 서로 관계되어 있다는 ‘연기론’에서 양적 불확실성의 정수를 재발견했다고 말한다. 극미極微의 차원에서도 우리는 상호 의존한다는 조상들의 직관은 옳았다는 것이다. 가장 미시적인 구조에서조차 우리는 태양계와 은하계와 우주와, 심지어 상상 그 너머까지와도 상호작용한다. 태어나기 전,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육체가 죽은 다음에도 우리는 무한한 우주와 함께한다.

우주적 영성에서 뻗어 나온 환경 의식
2017년 3월 21일, 인도의 우타라칸드 주는 갠지스강과 야무나강 지역 내의 모든 강을 살아 있는 개체로 인정했다. 크고 작은 강, 개울, 시내, 폭포… 이것들이 지구 생태계 내에서 우리의 형제자매나 다름없다고 판단하여 사람에 준하는 지위와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달라이라마의 환경 의식은 이와 같은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의 의식, 더 대담하게는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의식에 기반을 둔다. 우리가 이 지구상에, 우주 한복판에 생명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것. 이것이 달라이라마의 우주적 영성을 이루는 근본적인 기초이며,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이 달라이라마 환경 의식의 출발점이다. 개인은 삶의 현실 속에서 모든 생명과 이어져 있고, 모든 생명의 안녕은 생태계의 균형에 달려 있으며, 생태계의 균형은 사람들의 인간 사회에 대한 정의에 달려 있다. 온실 효과를 내는 기체에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서 살 권리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 20분마다 식물이나 동물 종 하나가 사라지는 생태 다양성의 감소,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숲의 대량 파괴, 대양의 산성화와 산호초로 둘러싸인 그레이트베어리프의 백화 현상, 남북극의 빙산이 녹아내리는 현실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달라이라마는 환경에 대한 우주적 메시지를 전한다.

마음의 방향키를 돌려야 한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울과 공허감을 자주 체험한다.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자주 삶의 방향키를 잃어버린다. 우리는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정직한 노동의 대가보다 부동산 관리를 통한 부의 축적이 권장되는 곳이 한국 사회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마음에 난 큰 구멍을 채우기 힘들다. “우리는 이 행성의 방문자일 뿐이다. 그러나 다른 이의 행복에 기여하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달라이라마의 전언이다. 어쩌면 행복은 마음의 방향키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내 안으로만 향하는 방향키를 돌려, 사람들과 연대하며 열린 세상으로 향할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목차

 

제1부 아흔의 끝, 스물의 시작
나의 희망, 인류의 미래인 여러분에게
세상을 움직일 평화의 역동적 힘
무너진 장벽 아래의 촛불
참된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는 방법
테러와 전쟁을 대화와 비폭력으로 맞서는 용기

제2부 나는 지금도 꿈을 꿉니다
나는 작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인류애로 기후 위기에 답을 낸다면 어떠할까요?
자유·평등·박애·정의의 가치
조용한 혁명을 합시다

제3부 세상을 바꾸는 ‘우리’
뇌를 바꾸는 연민의 혁명
연민은 배움이 아니라 깨달음입니다
무엇보다 우선하는 인간이라는 카테고리
전 세계 부의 절반을 갖고 있는 67명의 부자들
감정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입니다
현대물리학이 증명한 이타주의의 필연성

제4부 나의 마지막 선물
어떻게 연민의 혁명을 할 것인가?
공감을 넘어 진정한 연민으로
미래의 인류를 위해 남겨진 일들

소피아 스트릴르베의 후기 : 지성을 넘어 우주적 영성으로
프랑스대혁명의 신봉자 달라이라마
신경과학과 불교의 만남
인더스강 변에서의 자연에 대한 명상
이타주의 혁명과 지구의 민주주의

보편적 책임 선언 요약

 
 
< 내용 출처 : 교보문고 >
:
Posted by sukji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 티머시 스나이더

320.53094 S675rKㅇ  사회과학열람실(3층) 

 

 

책소개

 

냉전 종식 후 30년, 오늘날 신권위주의는 어떻게 전 세계에 다시 확산되고 있는가?

전 세계에 확산되는 신권위주의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연대기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2011년 전체주의 사상의 귀환, 2012년 러시아 민주 정치의 붕괴, 2013년 러시아의 유럽 연합 맹공격,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과 뒤이은 러시아의 침공, 2015년 러시아, 유럽, 미국에서 정치적 허구의 확산,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 등을 치밀하게 들여다봄으로써 동구에서 서구로 확산되고 있는 권위주의 광풍을 들여다본다.

소련 해체 이후 다른 동구권 나라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러시아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했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부재한 가운데 구소련의 국가 자산을 불법적으로 차지한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oligarch)들이 재빨리 권력을 장악했고, 이들이 자신의 부와 생명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관리, 통제하기 위해서 찾아낸 새 지도자가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저자는 2012년 푸틴의 장기 집권 수립,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16년 브렉시트와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을 훑으면서 러시아가 민주주의로 가장한 신권위주의를 어떻게 부활시키는지 치밀하게 기록한다. 실제 현실과 아무 관련도 없는 대안 현실, 대안 세계를 버젓이 제시하는 것이 러시아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신권위주의를 동구에서 서구로 팽창시킨 방식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권위주의의 노련한 잠식력을, 현재를 사는 우리가 가져야 할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출판사 서평

 

푸틴의 장기 집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
이 모든 것은 민주주의로 가장한 신(新)권위주의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티머시 스나이더의 지난 저작인 《폭정》이 트럼프 당선 이후 우려되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지식인의 신속한 대응이었다면, 신작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는 전 세계에 확산되는 신권위주의에 대한 역사가로서의 깊은 통찰을 담은 연대기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매우 간명하다. ‘냉전 종식 후 30년, 오늘날 신권위주의는 어떻게 전 세계에 다시 확산되고 있는가?’
소련 붕괴 이후 냉전이 종식되면서 자유민주주의는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듯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믿음은 허상이었음이 드러났다. 푸틴이 파시즘 사상을 활용해서 부유층의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음을 깨달음에 따라 러시아에 권위주의가 부활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체주의 사상의 귀환(2011년), 러시아 민주 정치의 붕괴(2012년), 러시아의 유럽 연합 맹공격(2013년), 우크라이나 혁명과 뒤이은 러시아의 침공(2014년), 러시아, 유럽, 미국에서 정치적 허구의 확산(2015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2016년) 등을 치밀하게 들여다봄으로써 동구에서 서구로 확산되고 있는 권위주의 광풍을 들여다본다. 산재해 있는 팩트들과 역사를 퍼즐을 맞추듯 연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권위주의의 노련한 잠식력을, 현재를 사는 우리가 가져야 할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민주적인 파시즘, 정의로운 포퓰리스트, 법과 절차를 지키는 독재자
오늘의 권위주의는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온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강력 추천
*《타임》 《가디언》 《포린어페어스》 강력 추천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고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인류사회 최후의 이데올로기라고 단정했을 때만 해도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파른 경제성장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 복지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 체제, 그리고 진보와 번영이 필연적인 미래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러나 3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오늘, 경제성장은 둔화됐고 불평등이 확산됐으며 세계화의 부작용이 시민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가중되는 불안과 분노 속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은 소멸됐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결함과 취약성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권위주의 후계자들은 이를 쉽게 활용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푸틴은 어떻게 러시아를 지배할 수 있었나

소련 해체 이후 다른 동구권 나라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러시아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했다. 옐친은 소비에트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다시 투표를 거치지 않은 채 러시아 대통령이 되었다. 그냥 러시아가 독립된 뒤에 계속 대통령직을 유지한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부재한 가운데 구소련의 국가 자산을 불법적으로 차지한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oligarch)’들이 재빨리 권력을 장악했다. 이들이 자신의 부와 생명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관리, 통제’하기 위해서 찾아낸 새 지도자가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이다(75~76쪽).
구소련 정보기관 요원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보좌관 시절에 벼락부자가 된 푸틴의 지지율은 1999년 당시 2퍼센트에 불과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올리가르히들은 테러를 연출하고 그것을 진압하는 영웅으로 푸틴을 등장시킨다. 이와 더불어 압도적인 텔레비전 등장 횟수, 투표 조작, 테러와 전쟁의 분위기를 풍긴 덕분에 2000년 3월 푸틴은 손쉽게 권력을 승계받는다(77~78쪽). 올리가르히들은 위의 방법을 2000년 선거는 물론 2004년 재선에도 써먹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러시아 헌법에 따르면, 푸틴은 법적으로 2008년에 3선에 도전할 수 없었기에 대신 무명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후계자로 선택됐다. 메드베데프 치하에서 러시아 헌법이 개정되어 대통령 임기가 6년으로 늘어난 뒤, 2012년에 치러진 외관상 민주적인 선거로 푸틴은 대통령직 복귀에 성공한다.
그러나 투표 조작에 관한 의혹과 증거는 도처에 널려 있었다. 이에 항의하는 러시아 시민의 시위 또한 연일 계속됐다. 푸틴과 올리가르히들의 계획은 2012년,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해 최소 20년간 집권하는 것이었기에 타계책이 필요했다. 첫째로 개헌과 부정선거로 승계 원리는 사라졌으므로 푸틴에게는 이를 뒷받침해주고 국민을 통합할 만한 이데올로기가 시급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반세기 전에 죽은 파시즘 철학자 이반 일린(Ivan Ilyin)이다. 푸틴은 ‘교육 받은 상층 계급이 무지한 하층 계급을 영적으로 인도하는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유의 그의 사상을 과두제를 공고히하는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는다(54~56쪽).
둘째는 현재의 통치 체제에 불만을 품은 시위대들이 미국 같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사주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외부의 적이 러시아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계획은 ‘유라시아 구상’으로 옛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이 유럽 연합에 합류하는 것을 막고 다시 한 번 러시아 제국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계획의 시작점이자 교두보인 우크라이나가 유럽 연합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신(新)권위주의의 부활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목차

옮긴이의 말 7
프롤로그 23

CHAPTER ONE 개인주의인가 전체주의인가 39
이반 일린, 부활하다 43 | 전체주의의 도래 46 | 순결한 러시아 48 |적을 만들라 51 | 대속자라는 환상 54 | 필연과 영원 사이 57’

CHAPTER TWO 계승인가 실패인가 67
볼셰비키에서 러시아 연방까지 68 | 정치가가 쓴 소설 74 | 민주적 부정 선거 77 | 영웅과 파괴자 81 | 콘돔과 원숭이 84 | 유럽 연합과 미국을 겨냥하다 88 | 복종과 반역 90 | 외부자의 잘못 92 | 영원한 동거 95 | 영원의 환상을 조성하다 99

CHAPTER THREE 통합인가 제국인가 103
유럽 통합과 러시아 108 | 민족의 대속자 116 | 러시아가 꿈꾸는 유럽의 모습 120 | 유라시아주의 123 | 알렉산드르 두긴 128 | 이즈보르스크클럽 132 | 러시아의 대외 정책 140 | 후원자들 142 | 협력자들 148 | 필연인가 영원인가 153

CHAPTER FOUR 새로움인가 영원인가 155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것 164 | 마이단 광장 168 | 품위와 용기 171 | 법률을 따르라 175 | 본질을 흐리는 방법 180 | 꼭두각시 세우기 182 | 시위대를 향한 폭력 184 | 크림반도의 바람 188 | 스키조파시즘 196 | 진짜 파시스트 200 | 이후의 풍경들 203 | 가려진 진실 208

CHAPTER FIVE 진실인가 거짓인가 213
그럴듯하지 않은 부인 217 | 노보로시야를 위하여 222 | 동결된 분쟁 228 | 죄책감을 덜다 234 | 텔레비전의 역할 237 | 항공기 격추 사건 238 | 오토바이 공연 243 | 전투와 휴전 248 | 새로운 형태의 전쟁 256 | 사실성을 파괴하라 258 | 승리인가 패배인가 260 | 독일의 문제 262 | 폴란드 이야기 267 | 주목받지 못한 경고 275

CHAPTER SIX 평등인가 과두제인가 285
성공한 사업가 287 | 트럼프타워에서 일어나는 일 288 | 허구의 승자 291 | 이제 미국이다 293 | 미국 주권, 공격받다 298 | 알려진 이야기들 307 | 가짜 뉴스의 홍수 321 | 미국을 무너뜨리는 방법 328 | 러시아식 과두제 337 | 위대했던 시절의 향수 340 | 오피오이드 드림 345 |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349 | 러시아라는 거울 앞에 선 미국 350

에필로그 362
감사의 말 366
주 370
찾아보기 444

 

 

< 내용 출처 : 교보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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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kji